나는 서른여섯에 미혼이다. 딱히 비혼주의자는 아니다.
결혼한 친구들 중 결혼식 준비를 정말 열심히 한 친구들이 있었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미리 머릿속에 그려뒀던 게 참 많은 모양이었다. 꿈꾸던 결혼식의 실현. 어쩌면 결혼보다도 결혼식이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 번 뿐인 결혼식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장담은 위험해. 누가 알겠어. 살면서 여러가지 풍파를 겪다보니 결혼식만 세 번 한 친구도 있는데.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본인피셜, 이 것도 할 수록 늘더라는 것이다. 나는 한 번을 못해 본 걸 세 번이나 한 니가 위너라며 진심으로 축하했다. 그래서 사실은 이 친구 결혼식에도 축가를 꼭 해 주고 싶었었다. 하지만 친구는 마지막 결혼식에 가족 외 지인은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정확히는 두 번째 남편과의 두 번째 결혼식이었다. 말하자면 길다. 우리는 모두 어른의 사정이 있다. 그 힘든 일들을 겪고 이제야 참 사랑을 찾았는데, 누굴 초대할 생각도 차마 못할 정도로 그 축하 한 번 받는게 이렇게 눈치를 볼 일인가. 마음이 아팠다. 너에게 Johnny Stimson의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다.
내가 결혼식의 로망을 꿈꿔 본 적이 있던가. 나는 한국의 결혼식 문화를 싫어했다. 안친하면 한 장, 친분이 좀 있다면 두 장, 짱친이면 능력 껏. 이런식의 기준으로 축하하기도 싫었고, 받은 만큼 나중에 돌려주기 위해 누가누가 얼마나 했는지 그 걸 또 기록해 놓는 것도 유치하기 짝이 없다. 부모님은 뿌린게 있으니 거두려면 니가 시집을 가야 한다고 했다. 축의를 많이 했을 땐 아무라도 더 데려가 식권으로 본전을 땡겨야 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인생을 통틀어 가장 역사적이어야 할, 성스러운 의식이 진행되어야 할 예식장이라는 장소엔 하루에도 여러팀이 결혼을 해서, 시간에 쫓기듯 우리 타임이 끝나면 식장이고 부페고 얼른 빠져줘야 한다. 사진을 찍을 때 양가 머릿수가 너무 차이나면 안되니 '하객 알바'라는 일자리가 다 생겼다. 그건 축가와 사회자도 마찬가지. '축가'라 함은 '축하하는 노래'인건데, 축가 알바를 써서라도 준비했다는 건 고용한 주체가 초면인 상대에게라도 축하를 받기위한 노래가 아닌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축하를 받고 있다는 걸 모두에게 보여주기위한 노래. 남들이 하는 거 찾아 보고 좋아 보인다 싶으면 내 결혼식에 고대로 따라하는 것도 참 우습고. 이토록 개인적인 행사를 두고 남과 경쟁할 필요가 있는가. 정작 예식장에서 결혼한 부부들의 결혼 사진은 사진 속 배경도 포즈도 다 똑같아서 나중에 앨범을 열어 봐도 별 감흥도 없을 것 같다. 죄다 틀딱인 거기서 거기.
나열한 내용 중에 '진심어린 축하'가 느껴지는 부분이 한 군데라도 있는가. 순수하게 신랑과 신부를 축복하기 위한 결혼식이기는 한가. 이게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결혼식인지 나는 모르겠거든. 아님 뭐 그냥 또 내가 빻은 거겠지.
싫으면 스몰웨딩을 하면 되지않느냐고? 스몰웨딩은 그나마 낫지. 다만 유행처럼 번진 '인스타갬성'의 보여주기식 스몰웨딩은 극혐. '스몰웨딩'이라는 단어에서부터 느껴지는 '힙'스러움 조차 어쩔 땐 역겹기까지 하다. '우린 예식비용 아껴 신혼여행에 올인하는, 실속 쩔고 개념 충만한 신혼부부임ㅇㅇ'이라는 걸 티 내고 싶어 안달이 나서 굳이 스몰웨딩을 하는 듯 주객이 전도된 그 느낌도 싫음. 그냥 졸라 싫음.
아님 뭐 그냥 또 내가 졸라 빻은 거겠지.
결손가정에서 자랐다 해서 결혼을 믿지 않는다거나 그래서 결혼식이라는 의식에 반감이 있다거나 한 게 아니다. 이거 굉장히 심각한 스테레오타입이다. 앞 피드 읽으면서 이 생각 한 사람은 진짜 반성해라. 나는 그 어떤 것보다도 사랑을 믿는다.
중학교 1학년 입학 하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엄마가 집을 나갔다. 그리고 다음 해 였던가. 엄마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그 집을 벗어나고 싶은지는 아주 오래됐었지만 오빠와 내가 너무 어리지 않은 나이가 될 때 까지 참고 기다렸던 것 뿐이고, 아빠는 더 이상 마주치고 싶지 않기에 나중에 니들이 커서 결혼할 나이가 됐을 때도 결혼식엔 올 수 없을 거라고.
맹히씨는 자기가 했던 말을 기억은 할까.
빌어먹을 나는 이걸 왜 뼈에 사무치게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없다. 어차피 안할테니까. 뭐 결혼은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결혼식은 할 생각이 없다. 왜냐면 어쩌면 살면서 가장 행복해야 할 그 날이 나한테는 그 어떤 날 보다도 불행할테니까. 아마 나는 하루종일 울겠지. 여자라면 한 번 쯤 해봤을 미래의 내 결혼식에 대한 상상에서 내가 보는 건 신부측 부모님석의 빈자리다.
반전이 있다면, 오빠가 결혼하던 날 엄마가 참석을 했었다. 맹히씨는 고민을 정말 많이 한 후 결혼식에 같이 갔다. 오빠새끼의 결혼날은 내가 살면서 겪은 가장 괴로웠던 날 중 두번째로 꼽히는 그런 날인데, 이 건 나중에 마음의 준비가 되면 썰을 풀도록 하겠다.
아무튼 그렇다 해도 마음이 바뀌지는 않았다. 결혼식을 하지 않아야겠다 마음 먹은 그 때부터 위에 언급한 결혼식을 하지말아야 할 장황한 이유들을 어떻게든 만들어 내 왔고, 그것들이 누적되다보니 이제는 변수와 상관없이 이미 마음에서 굳어졌다. 존나 정신 승리.
그리고 오빠의 결혼식에서 알았다. 단지 그 자리를 채운다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엄마가 왔다한 들, 아마 나는 또 하루종일 울겠지.
예뻐보여야 하는 날에 추하게 울고 싶지 않다. 나도 여자라고.
요즘에는 그런 생각이 들 때는 있다. 나중에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 사람이 결혼식을 너무나 원한다면? 여기서 사랑하는 사람이라 함은 나의 이런 가치관에 어느정도 부합한다는 것일테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결혼식 그 까짓거 한 번쯤은 눈 딱 감고 해 줄 수는 있을 것도 같긴 함. 하지만 나도 조건이 있다. 극딜 박는다. 에눌불가. (항목 추가됨)
1. 갈등관계가 없는 직계 가족 구성원 또는 최측근 지인들만 모일 것. 신랑 신부 당사자 포함 양측 도합 총 20명 미만. 적을 수록 오히려 좋다.
2. 예식장이 아닌 장소일 것. 실내든 실외든 상관없다. 아주 조용하거나 아주 시끄러운 곳이었으면 좋겠다. 조용한 곳을 우리가 시끄럽게 만드는 게 베스트.
3. 청첩장은 직접 색종이를 오리고 붙여 만든다. 글씨도 당연히 하나하나 자필로. 받는 사람에 따라 내용이 다 다르겠지. 작은 것 하나라도 진심이 아닌 것은 싫다. 당신이 우리의 청첩장을 받는다면, 너무 예쁘고 소중해서 아마 평생 간직하고 싶을 걸?
4. 신랑도 신부도 핑크색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으면 좋겠다. 다른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 부분은 협상 가능. 하객은 자유 복장이되 알록달록하게 한 껏 멋부려야 함. 노잼 착장 금지.
5. 결혼식의 시작부터 끝까지 빈틈없이 웃겨야 한다. 너무나도 병맛이라 도저히 슬픈 생각이라고는 잠시도 떠오르지가 않는 그런 진행. 나중에 떠올렸을 때 조차 웃겨 뒤지겠어서 요실금 올 것만 같은 그런 결혼식.
6. 축의는 당연히 필요없고, 대신 참석한 모두가 축가 한 곡 씩 뽑아야 함. 노래방 기계는 싫으니까, MR을 준비해 오는 성의를 보여야 됨. 하객들이 고심해 직접 선곡한 축가 메들리를 듣고 있는 상상을 하면 진심으로 축하받는 기분일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날은 영원히 오지 않았다고 한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