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20220830

by 김알록달록


몇 년 전 산문집을 낸 배우는 또 책을 쓸 의향이 있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단호하게 '없다'고 대답했다. 이유인 즉, 그 책을 읽은 독자들이 책에서의 정보만으로 배우 본인에 대해 굉장히 잘 안다고 착각을 하여 심지어는 초면에 친한 척까지 하더라는 것이다. 책의 내용은 본인에 관한 것이 맞지만 자신의 극히 일부일 뿐이며, 그마저도 현재의 자신이 아닌, 거의 10년 전 그 책을 썼을 당시 시점의 자신이고 그 사이에 본인은 많이 바뀌었다면서, 고작 책 한 권으로 대중이 자신을 판단하고 단정지은 것에 대한 상처를 이야기했다.



해당 배우는 그 인터뷰 이후 다시 몇 년 후의 다른 인터뷰에서 같은 질문을 받았고, 대답은 '쓸 것이다'로 바뀌게 됐다. 하지만 마음이 바뀌어서는 아니었고, 역설적이게도 '쓰지 않겠다'라고 했던 이유와 같았다. 대중에게 책 한권으로 규정지어져 버린 자신(= 책 속의 나)을 깨기 위해서는, 스스로 다시 새 책을 쓰는 방법 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배우는 박정민, 책은 [쓸 만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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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이 친절한 글이 아니라는 지적이 있었다. 글의 성격을 떠나, 어떤 것을 쓸 때 그것에 대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을 설명한다거나 부연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자세히 거론하지 않아 읽는 사람이 어림짐작하게 하는 방식을 채택했다는 것. 이게 꼭 나쁘다는 뜻이 아닌 것도 알고 있고, 어느정도는 다분한 의도가 들어간 것이 맞기도 하다. 나는 친절해 보이기 싫어하니까.


하지만 나는 사실은 친절한 사람이다. 한 사람의 상반된 두 인터뷰를 보고, 내 글을 읽은 몇 안되는 사람들도 저렇게 나를 판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은 의도적으로 조금 친절해 보려 한다.



* 나의 응어리



오프라인의 나를 마주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절대로 항상 화가 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던 내 알 바 아니라던가, 세상 모든 것에 불만을 품고 글에서 쓴 어떤 소재든 작정하고 까려고 하는 시니컬한 사람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는 걸 내가 내 글을 읽고 알았다. 그러기엔 나는 튜닝 한 번 거치지 않은 순정 ENFP형 인간이다. 나는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이 월등히 많은 사람이며, 혼자 있을 때마저 텐션이 주체가 안 될 때가 많다. 오히려 이런 흥부자인 내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더 주위 눈치를 살피곤 한다. 근무 중에 손님이 들어온 걸 모르고 틀어 둔 노래에 둠칫둠칫하다가 민망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나는 특별히 부정적인 인풋이 없다면 디폴트가 이미 '즐거움' 상태인 사람이다.


'글쓰기'라는 창작 형태를 빌려 속에 묵혀두었던 나쁜 것들을 내보내는 것은 나의 멘탈 유지에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다이어트할 때 몸 속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마시는 클렌즈 주스 같은 느낌과 비슷함. 내 글 자체가 디톡스의 산물이라 생각하면 되시겠다. = 똥이라는 뜻. 그러다보니 의도치 않게 브라운 계열의 어둡고 불쾌한 냄새가 나는 글이 대부분이지만, 나는 나의 글에서만큼 어둡기만 한 사람이 전혀 아니다. 박정민 배우의 말처럼 나의 글은 나에 대한 것이 맞지만, 나라는 사람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겨우 몇 편의 짧은 글로 나를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 가족 이야기



내 글 대부분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 '가족'이라는 소재. 아직까지 주로 나온 이야기가 맹히씨에 대한 것이라, 엄마에 대한 원망이 대단하리란 오해가 있을 것같아 해명을 하자면..



엄마와 나는 사이가 좋다. 아마 우리 네 식구 중 엄마와 나의 관계가 가장 애틋할 것이다. 아직도 조금은 철이 없는 엄마이기에 본의 아니게 일찍 철이 들 수 밖에 없었던 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인 제공자인 엄마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던 건 아니었다. 내가 중3때 쯤(엄마가 집을 떠난 후 2년차 정도), 가정주부에서 벗어나 혼자가 된 후로 여자로서 처음 맞닥들인 현실에 적응하던 엄마가 많이 힘겨워 하던 때가 있었다. 오죽했을까. 자기발로 나갔던 엄마가 스스로 다시 돌아오려 했었다. 당시 16살이었던 나는 오히려 엄마에게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말고 정신 차리라'며, '여기로 다시 오면 그 때는 정말 엄마를 보지 않겠다고, 힘내서 엄마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살으라고, 행복하고 싶다면 절대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후회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살면서 했던 말 중 가장 잘 한 말이 있다면, 그 때의 그 말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댓가는 컸지.


엄마는 지금 나름대로의 행복을 찾았고, 여전히 철이 없다. 나는 그런 엄마가 피곤하면서도 조금 귀엽다.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것들은 엄마가 만들었다기보다 엄마가 처했던 상황이 만들었던 탓이 크다는 걸 안다. 엄마는 실수가 많은 사람이지만, 한 번도 나에게 악의를 갖고 무언가를 말했던 적이 없다. 나이를 먹으면서 해가 갈 수록, 같은 여자로서의 맹히씨의 입장에 대해 더 이해하게 됐다. 나는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이 좋다.


맹히씨가 내 글을 읽는 게 두려운 이유는, 말할 수 없었던 내 생각들을 알게 됐을 때 아주 많이 속상해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이제는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제대로 된 언급을 하지 않았던 아부지('아빠'라는 단어의 친근함도, '아버지'라는 단어의 존경어린 따듯함도 어울리지 않기에 '아부지'라고 쓰기로 했다. '그 인간'보다는 낫잖아)에 대한 미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추후에 각잡고 신랄하게 까 볼 마음이 생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으로서는 별로 언급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만 한 가치가 느껴지지도 않는다. 나는 아마 평생 아부지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가족 욕은 누워서 침뱉기라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라면, 어차피 이해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나는 분하고 억울해서라도 내가 뱉은 그 침 기꺼이 온 몸으로 맞겠다.



그리고 서로의 인생에서 겨우 조연 정도의 역할일 오빠샛기. 엄마 아들. 밈으로써의 '현실 남매'보다도 못한 관계인 우리는 극도로 상반된 삶을 살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같은 환경에서 자랐다. 이 부분은 나도 아직도 이해하기가 참 어렵다. 같은 피를 물려받아 외모도 취향도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몇 마디 대화 조차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극단적으로 다른 성향이다. 어쩌면 이젠 철저한 타인이다. 아니, 오히려 남보다 못하겠지.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언제인지도 모르는 사이 오빠는 나를 언팔했다. 뭐 그 전엔 사이가 좋았어서 서로 팔로우를 하고 있던 게 아니고,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서로 노력해 보려고 하던 시점이 있긴 했다. 아마 그 때 서로 팔로우를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제는 나도 모르는새에 오빠가 나를 아예 끊어내고 있던 것 같다. 유감이었던 건, 나를 차단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걸 알고도 섭섭한 감정도 별 미련도 없던 나와 우리였다. 안 봐도 상관없는 사이. 실제로 나는 올 해 두 돌이라고 하는 생물학적 조카의 실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궁금하지가 않다. 남들처럼 조카바보니 어쩌니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건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여기까지가 최대한 친절히 설명하려 노력한 나의 가족에 대한 배경이다.



당신이 직접 겪었던 나도 '나'이고, 나의 글에서 보여지는 나 또한 '나'다. 겉으로 보여지는 부분만 보고 이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저런 사람이었네 하는 생각이 들었을 수는 있다. 모두가 글을 쓰지 않아서, 속내를 내 보일 의지가 없어서 모를 뿐이지, 세상에 양면성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보이는대로가 그 자체인 사람이 과연 있을까? 두 모습의 괴리감이 크다고 해서 이중인격인 건가? 뭐 굳이 그렇다고 하신다면, 그럼 나는 그냥 이중인격자인걸로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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