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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Dec 24. 2022

과민반응

20220925


오늘은 글을 쓰지 않고 차분히 책이나 읽으려 했건만 결국 노트북을 켰다. 잊을만하면 글감을 주는 감사한 손님들 덕에 염병할 에피소드가 더욱 풍성해 진다.



출근한지 10분 밖에 안됐을 때, 빨간 점퍼를 입은 아줌마가 들어와서 카스캔355ml 하나를 계산대에 올려놨다. 계산대에서 초롬이 먹일 사료를 담는 중이었어서 얼른 치웠다.



"이천백원입니다."


"고양이 밥 주시나 봐?"



내가 고양이 밥을 챙기는 것에 대해 아는 체를 하며 말을 거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워낙 흉흉한 세상이라 리액션을 신중히 할 수밖에 없다. 캣맘에게 친근히 다가가 동네 고양이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은 후 학대를 행한 사례들이 워낙 많다. 그래서 좋은 말을 해주는 거라고 해도 그 속내는 수상할지도 몰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악의가 없다 해도 듣는 나는 사실 그다지 칭찬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짓을 오래 하다보니 그런 말에 별 감흥도 없기도 하고, 나에게는 그냥 당연한 루틴이니까. 하지만 말하는 사람은 지들이 안하는 일이니까 꼭 뭐가 대단하다는 듯이 말하지. 그런게 다 불편하다.


이분은 과연 어떤 쪽으로 말을 꺼내려는지 모르겠으나, 어느쪽이든 궁금하지도 않아서 대꾸하지 않았다. 카드를 건네며,



"결제되셨어요."


"나도 고양이 키웠었는데~"



고양이를 키움 = 일단은 호의적인 방향이라 착각할 수도 있겠으나,


키웠'었다' = 과거형이니 여기서부터 왠지 쎄함이 느껴졌다.


뭔 공통 관심사라도 생긴것 마냥 혼자서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먼치킨 알죠? 먼치킨. 그거를 우리 아저씨가 취해서 사와가지고 두달을 데리고 있었는데, 나는 만지지도 못하겠더라구. 너무 예쁘긴 한데 털도 날리고 못키우겠어서 파양했다니깐."



전지적 캣맘 시점으로, 품종묘 언급에서부터 이미 파악은 끝났고 '파양'을 뱉은 순간 본격적으로 싸우자는 거였다.



"예?"


"파양했다구, 파양."


"다시 보냈다고요...?"



내가 계속 못들은 척하다가 처음으로 뭐라도 반응을 보이니 그순간 반가웠는지 눈치도 없이 떠들더라고.



"아, 사온데에 환불한 건 아니구, 키우겠다는 다른 사람한테 줬어. 털이 너무 날리길래."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털이 있는 동물이니까 털이 날리는 게 당연하죠. 그걸 모르신건 아니잖아요?"


"아저씨가 술마시고 '예뻐서' 데려왔다니까? 그렇게 예쁜데 털 생각 했겠어? 먼치킨이었다고. 고양이들 밥주는 사람이 먼치킨도 몰라? 다리 짧아서 귀여운 그거?"



나에게 먼치킨을 모르냐고 묻는 이 상황이 얼마나 코미디인지 당신은 알까. 먼치킨의 브리딩으로인한 고질적인 종특이성 유전병에 관해서 너는 알고 데려왔고?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졌다. 더 이상 말 섞을 가치도 없었다.



"...... 이런 얘기는 저한테 하실 얘기가 아닌 것 같은데요."


"아니 난 고양이 밥주길래 고양이 좋아하는 것같아서 한 얘기지, 나도 예뻐하니깐."


"아뇨, 그쪽이 고양이를 어떻게 생각하시던 저하고는 완전히 다르니까, 절대 비슷하다고도 생각 안하셨으면 좋겠네요. 고양이 밥챙기는 사람한테 고양이 버린 얘길 하시는 건 누가 들어도 아니죠."


"그게 아니라 잘 키우겠단 사람한테 보냈다니까? 버리긴 누가 버렸다고 그래?"


"그게 다른 사람한테 버린거죠, 그럴거면 애초에 데려오질 말았어야죠. 술김에 데려오셨다면서요."


"사람이 술 좀 마시면 고양이가 사고싶을 수도 있는거지,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이야!?"


"손님이 그렇게 손님 생각 말씀하시는 것처럼 저도 그냥 제 생각을 얘기하고 있는건데, 그게 그렇게 화가나실 이유인가요? 제가 한 말이 손님이 원하시는 대답이 아니어서 그냥 마음에 안드시는 거잖아요. 저한테 도대체 뭘 바라시고 그 얘길 꺼냈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대답을 뭘 어떻게 더 좋게 해 드려요, 그런말을 듣고."


"얘 웃기는 애네 진짜. 나는 좋은 마음으로 꺼낸 말을 왜 그렇게 받아들여? 왜 과민반응을 하고 그래? 뭔 말을 못하겠네."


"그럼 말씀 그만 하시고 가시면 되겠네요. 저도 알고싶지 않았으니까."


"내가 너한테 뭘 잘못한게 있다고 손님한테 이런식이야? 손님이 말하면 네~하고 그런가보다 하면 되는거지!"


"네~, 알.겠.습.니.다. 그.러.셨.군.요. 안녕히 가세요, 계산 끝나셨으니까."



아줌마는 욕을 궁시렁대며 나가더니, 하필이면 가게 옆에있는 고양이 급식소 근처에 앉았다. 그탓에 밥기다리던 초롬이가 자리를 떴다. 저년이 홧김에 애들한테 해코지 하면 안되니까 내가 참자. 초롬이는 이따 다시 불러서 먹이면 되니까.




그자리에서 사간 맥주캔을 마시다 담배를 사러 다시 들어왔다. 다른데 갈 줄 알았는데 나한테 그런 소리 듣고도 다시 온거 보면 정말 아무생각없이 사는 사람인가보다. 담배사러 왔을 때에는, 다른 언급없이 살것만 딱 사고 이번에는 현금으로 결제했다. 다시 또 급식소 자리로 가서 앉아 남은 맥주를 마시며 한참을 통화 하더라. 애 밥좀 먹이게 빨리 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시간 정도 후에 보니 드디어 가고 없길래 어질러 놓은 빈캔과 담배꽁초를 줍고, 차례로 온 초롬이와 꼬동이 밥을 주고 들어왔다.


몇분 안돼서, 간 줄 알았던 그여자가 다시 왔다.



"나 여기 카드 안놓고 갔어? 마지막으로 쓴게 여긴데 카드가 없는데?"


"놓고 가신 카드는 없으세요."


"체크카드 진짜 없어? 여기에 없으면 어딨겠어. 여기서 맥주 사고는 카드 안썼다니까?"


"카드를 놓고 가시면 저희가 모를 수가 없어요. 왔다가신 후에 다른 손님도 계속 들어왔는데 계산해드리면서 못봤을리가 없잖아요. 잃어버리신 카드가 여기서 쓴 카드가 맞는지 영수증 확인해봐 드릴게요."



영수증을 찾아서 결제할 때 사용한 카드가 비씨카드라는 걸 확인해 드렸다. 없는 카드가 비씨카드 맞냐는 질문에 자꾸 비씨카드는 안썼다고 우겨댔다. 영수증에 떡하니 찍혀있는데도. 담배 결제할 때에는 현금을 썼던 것도 확인해 드렸다. 그건 자기도 기억이 난다고 했다.


없다고 하는데도 안나가고 계속 버텼다. 그러다 뭔가 굉장한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 마냥 입을 열었다.



"아까 내가 맥주 사고나서 자기가 나한테 갑자기 시비 걸었잖아."



먼저 시비 건 적도 없지만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지.


속을 누르며 침착하게 물었다.



"그래서요?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건데요?"


"그러고서 내가 나갔는데 카드가 없는 걸 나중에 안거지."


"제가 손님카드에 손댔다는 말씀이 하고 싶으신거에요? 말다툼 잠깐 한 걸 가지고?"


"그게 꼭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상황이 그렇다는 거잖아."


"저희는 손님이 뭘 두고 가시면 뭐가 됐든 다 보관해놔요. 그리고 장사하면서 남의 물건에 손댄적 없구요.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럼 카드가 도대체 어디갔겠어!"


"여기서 쓰시고 밖에 나가서 잃어버리셨을 가능성은 생각해 보신거죠?"


"내가 지금 밖에서 다 찾아보고 온거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밖에 없다니까!"



이년이 진짜 사람 잡네. 말이 안통해서 결국 cctv를 돌렸다. 맥주를 계산하고나서 바로 지갑에 다시 넣는게 고화질로 아주 깨끗하게 시야에 걸리는 것 하나 없이 찍혔다. 대충 껴 넣은 것도 아니고 카드 수납칸에 정확하게 꽂아 넣는 것 까지 다 찍혔다.



"아니 저게 왜 없지 그럼?"



낸들 알겠냐. 날 의심한 거에 대해선 미안하다고도 안했다. 나도 딱히 사과를 바라지도 않았고, 확인시켜줬으니 빨리 나가기만을 바랬다. 그리고 다신 오지말길.



그때 그대로 나갔으면 될 걸, 자기가 나를 의심한 걸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지친다 정말.



"니가 나한테 그런말을 했으니까 내가 당연히 그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지. 그러게 왜 겨우 파양한거가지고 오바를 하고 그래?"


"그런일이 있었다고 손님카드를 훔칠거라는 생각이 도대체 어떻게 당연한 건데요? 그리고 자꾸 아까 있던 일 말씀을 꺼내시는데, 저는요, 여기서 애들 밥챙기면서, ~"


(말 끊으며) "아니! 니 개인사정 나는 일절 안궁금하니까 얘기 하지도 마!"



지금까지 잘 참다가 정확히 여기서 꼭지가 돌았다.


심호흡 크게 한번 하고,



"저기요, 그쪽이 하는 말 나도 안 궁금한데 아줌마 혼자 계속 떠들어댔잖아. 그러니까 듣기 싫어도 들으라고. 나는 당신같은 사람들이 버리는 고양이 내가 데려다가 치료해주는 그런 사람이야. 내가 당신얘기 듣고 그렇게 반응한게 과민반응이라고? 당연한거 아니고? 사람 봐 가면서 그런말을 꺼내야지. 그리고 나도 당신 개인사정 좆도 안 궁금해. 지가 카드를 잃어버리던지 말던지 내가 시발 알게뭐야. 저런것도 손님이라고 영수증에 cctv까지 뒤져가면서 도와준건 고맙지도 않지? 나는 할만큼 해줬으니까 카드는 알아서 찾으시고, 여기서 나가."


"이게 어디 손님한테 반말이야? 니가 뭔데 나가래!"


"내 가게니까 나가라고."


"여기가 무슨 니 가게야! 웃기고 있네, 니가 사장이라고!?"


"ㅇㅇ 말로 할때 빨리 나가, 경찰 부르기 전에."



역시 누구든 죄많은 것들은 '경찰'이란 단어만 꺼내면 바로 꼬리내리고 간다.



다투는 소리에 피해있던 꼬동이를 다시 불러 남은 밥을 마저 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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