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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Dec 24. 2022

언더커버 보스

20220924


가게를 시작한건 2015년 11월 28일. 당시 스물아홉이었다.


오픈 날짜 2주 전, 알바 면접을 보러 천안으로 내려왔었다. 아마 토요일이었을 거다. 타지인 수원에서 온 거였기에 단 하루동안 여러명을 면접보고 그 안에서 3명을 뽑아야 했다. 해서 면접 스케줄을 꼼꼼히 짜고, 우리 가게는 아직 시공 중이었어서 근처 카페로 장소를 정했다.



가장 먼저 뵌 분이 이모님이었다. 편의점 경력이 짧지만 있었고, 인상도 푸근하시고 무엇보다 말씀을 나눠보니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 좋았다. 단점은 명절엔 꼭 쉬셔야 한다는 것. 종가집 맏며느리셨다. 다 좋았지만 업무적으로는 꽤 큰 단점이기에, 결국은 뽑지 않고 그 타임은 다른 애기엄마 언니로 정했다. 이모님께는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죄송하다고 했다.



오픈 하루전, 그 언니에게 연락이 왔는데 갑자기 못하겠다 하더라. 아무래도 면접을 여러군데 본 모양이고, 더 가까운 곳에서 연락을 받았겠지. 난감했다. 당장 내일인데. 혹시 몰라 이모님 이력서를 찾아 연락을 드려봤다. 사정을 말씀드리면서, 번복해서 너무 죄송하지만 내일부터 가능하시냐고 여쭈었다. 다행히 뒤끝없이 흔쾌히 받아주셨다.


그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오픈 때부터 현재까지 쭉 같이 일하고 있다. 이모님도 나도, 서로 이렇게 오래 함께 할 줄 그때는 몰랐지. 우려한 것처럼 매년 명절에는 쉬셨지만 다행히 다른 근무자들로 보충이 가능했다. 그래도 그 부분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있으셨는지 다른 타임이 급하게 빌 때마다 늘 메꿔주셨다.



이모님이 맡으신 시간대는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 외부 활동이 활발한 시간이라 이모님의 고객 노출 빈도가 큰 편이기도 했고 누가봐도 연세가 있으시니, 동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당연하게도 이모님이 사장이고 나는 알바 혹은 이모님의 딸 정도일거라고 자기들 마음대로 추측했다. 고정관념이 낳은 오해였다. 하지만 이모님과 나는 그 부분을 매우 재미있어 했다. 그래서 굳이 부인하거나 해명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가게 시작하기 전만해도 나역시 다른 곳에서 알바를 했던 위치였으니까, 나를 알바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딱히 자존심이 상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때로는, 차라리 이렇게 된김에 이모님이 사장님인 척하고 나를 숨기는게 영업면에서 더 유리한 순간도 있었다. 거래처 사람들은 점주가 초짜에 어리기까지하면 우습게 보고 가르치려드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럴때에는 이모님이 센스있게 나 대신 나서주셨다.



이모님은 이 일을 하기 두어해 전, 동네에서 잘나가는 보쌈집을 운영하셨었다. 장사가 잘 될수록 건강이 악화되어 접으실 수밖에 없었다고. 그때의 장사 짬으로 모든게 처음이었던 나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참 많이 주셨다. 부모에게서도 느끼지 못했던 든든함이었다. 이모님께는 내 또래의 따님이 있어 딸 같은 마음에 내게 더 잘해주셨던 것도 있겠지. 화목한 가정에서 오냐오냐 키워져 부족한 것 없이 자란 본인의 딸과는 달리 가정환경상 일찍이 철이 들수밖에 없었던 나를 보시며 진심어린 응원과 격려를 해주셨다.



여기서, 이모님이 승승장구했던 생업을 포기하고도 부담없이 알바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모님은 사실 천안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곳의 건물주다. 이동네에 원룸도 여러채 갖고계신다. 편의점에서 알바를 할게 아니라 본인의 편의점을 몇개라도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신 분. 그럼에도 직접 운영을 하시지 않는 이유는 자영업에 따른 책임감과 거기서 유래할 스트레스를 이미 겪어 아시기에 나빠진 건강을 회복하는게 우선이셨다고. 어차피 노후는 이미 준비가 넉넉히 다 되어있기 때문에, 이곳에도 용돈을 벌러 나오시는게 아니라 소소한 운동삼아 나오시는 것 뿐. 다른 '있는 집 싸모님'들처럼 백화점에 쇼핑을 다니거나 문화센터에 뭘 배우러다니거나 하며 편하게 지내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분은 달랐다. 아직도 이모님은 나에게 "이 나이에 어디다 이력서를 내도 아무도 안받아 주는데, 나는 지은씨가 나한테 할수있는 '일'을 줘서 그게 항상 너무 고마워."라고 하시는 분이다. 자수성가로 성공하신 분의 삶에 대한 건강한 태도와 가치관을 옆에서 보고 배울수 있다는 것에 오히려 내가 덕을 본게 감사하다. 이게 다 인복이다.



그러니 편견을 버리시라.


겨우 월세사는 내가 무려 건물주인 직원을 고용하고, 본인의 건물에 많은 세입자를 거느리고 계신 분이 이 작은 편의점에서 다른 어떤 직원보다도 열심히 일한다는 사실.



세상은 요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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