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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Dec 24. 2022

초민감자

20221009


휴학했을 때,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편두통이 심해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처음 가봤던 그곳의 분위기는 마냥 불편하고 어려웠다. 사회적으로 요새보다 그런쪽에 보수적인 분위기이기도 했고, 아무래도 처음이라서 더 그랬던 것도 있었겠다. 두통이 유발될 만한 다른 신체적 원인이 없었기에 스트레스로인한 신경성으로 판단하여 상담을 했다. 의사는 최근의 스트레스에 대해 말해 보라고 했고, 이야기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않아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다. 내 힘으로는 어쩔수 없는 상황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알바를 다니던 나에겐 상담료만으로도 큰 부담이었지만 오래 고민한 후 마음을 먹고 방문했기에 과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래서 가까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었다. 원래 그런데 가면 그래야 하는거 아닌가. 미드보니까 다 그렇던데.



의사는, 자기가 그 자리에 있으면서 여러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다보니 살면서 나보다 더한 일들을 겪는 사람도 충분히 많으니까 내가 가진 고민은 별일도 아니라고 했다. 그 한마디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면서 눈물이 뚝 그쳐졌다. 신경정신과라는 곳은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구나. 그런줄도 모르고 초면에 별 얘기를 다 했네. 몹시 당황스러워져 얼른 감정을 거두고 병원을 빠져 나왔다.


그때의 나에겐 전부였던 그 문제들을 아무일도 아닌 것으로 축소하고 주체할 수 없던 눈물까지 단숨에 마르게 하다니, 과연 명의로세.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방문이었다(아직까지는). 그 당시 병원을 잘못 찾아갔고, 잘못된 의사를 만났으리라는 것을 지금은 안다. 냉소적인 관점에서 볼때 의사의 말은 사실이긴 했지만, 그게 환자에게 해서는 안될 말이었다는 것도. 그럼에도 나름 용기내어 갔던 그곳의 첫인상이 큰 트라우마가 되어 아무리 힘들더라도 다시는 그런쪽은 찾지 않게 됐다. 꽤 무안하고 수치스러웠던 기억으로 남아 주변인에게까지도 그런 일들을 털어놓지 않아서, 학교 친구들은 내가 왜 갑자기 휴학을 했는지, 무엇으로 그 시간을 채우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방금까지는 말이지.



그 시절 나의 아부지는 본인의 갑작스런 퇴직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전화 사기라는, 그 당시엔 지금처럼 누구나 아는게 아니었던 생전 듣도보도못한 방식으로 큰 금융사기를 당해 그나마 믿는 구석이었던 퇴직금까지 하루아침에 홀라당 다 날렸다. 우리는 보이스피싱의 1세대 피해자였다. 그렇게 허무하게 잃을거였으면 그 돈으로 진즉에 나와 오빠의 학자금 대출이나 갚아줬었더라면. 어쨌거나 우리는 망했고, 경제활동을 위해 졸업을 1년 앞두고 휴학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을 직시하고 정신을 차려가던 즈음 아부지는 지인의 연락으로 큰 돈을 벌어오겠다며 그와중에 야심차게 동남아로 떠났다. 본인 나름대로는 만회해 보려 타국행이라도 감행했던 거였겠지만, 장남이라고 곱게만 키워진 아부지는 두달도 되지않아 그 생활을 못버티고 도망치듯 귀국했다. 나는 그게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한번의 깊은 실망감인, 극단적으로 상반된 감정들을 갖고 있었다. 편부모 가정이야 케이스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엔 아부지에게 '딸'임과 동시에 일종의 '와이프'같은 정서적 포지션이 있었기에 원망인지 연민인지 모를 하여간 설명하기도 어려운 복합적인 마음이었다. (지금에 와서야 부모의 잘못된 기대역할에 따른 자녀의 정체성 혼란이라고 봐야겠지만)



의사는 내가 가진 이런 고민들이 남들에 비하면 별일도 아니라고 했던거다. 살면서 훨씬 더한 일들을 겪는 사람도 많다고 이정도도 못 이겨내냐며.


그래, 나도 안다. 하지만 겨우 그 얘기나 듣자고 돈내고 정신과씩이나 간 건 아니었다.



얼마 되지않아 두통에서 시작된 신경통은 몸 구석구석에서 증상을 보였고, 당시의 나는 결국 다섯가지의 병원(치과, 피부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내과)을 동시에 다녔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내가 힘든 건 그탓이 컸다.



그리고 심리와 뇌과학에 관련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초민감자(empath)'라는 것에 대해 알게됐다. 학계에서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 용어는 단순히 '예민한 사람'보다는 좀 더 세부적으로 구분되는 개념이었다. 강한 공감 능력으로 사람 뿐만아니라 동물, 사물에게서까지 긍정/부정의 에너지들을 흡수하며, 시각/청각/후각 등에 민감하여 매 순간 긴장상태로 신경의 소모성이 크고, 이런 내적 고갈로 인해 혼자만의 시간이 늘 필요하다. 이건 간략한 설명이고, 관심이 있다면 검색으로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상황 파악이 빠른 것, 동식물들과 잘 소통하는 것, 감수성이 예민한 것, 엄살이 심했던 것(모든 감각이 더 강하게 입력되므로 고통도 더 크게 받아들인다고 함. 작년에 발가락을 다쳤을 때 말그대로 기절했었다), 체력의 소진 속도에 비해 충전의 시간이 배로 필요한 것, 촉이 좋은 것, 스트레스에 취약한 것 모두 내가 '초민감자'였기때문이란걸 알았다.



그때 그 의사가, 크던 작던 모든 문제를 받아들이는 일은 누구에게든 지극히 상대적이라는 것을 말해 주었다면. 어떠한 일이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어차피 힘들 수 밖에 없다는 걸 알려주었다면. 그리고 그것들이 내 의지로 되는 것도, 내 탓도 아니라는 걸 알려주었다면 적어도 상담비가 아깝진 않았을텐데. 그 돈을 잃은 대신 이렇게 책값으로 뽕을 뽑는구나.



아이러니하게도 최근의 잦은 번아웃은 이런 책들을 읽은 이래로 시작되었다. 관련 정보를 찾아볼수록 과거에서 비롯된 나의 모든게 설명이 되어 다소 충격이었다. 초민감자의 성향은 의외로 후천적인데(물론 선천적인 예민함이 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이걸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가정환경이었다. 책에서 나온 사례들은 나에게 대입되는 정도가 아니라 뭔 시발 꼭 내 자서전을 써 놓은 것만 같았다. 나열된 모든 원인들이 과거를 회상하게 해, 한단락 한단락 읽기가 너무나 힘이 들었다. 다시 떠오른 감정들을 느끼고, 추스리고, 진정하며 읽다가 또 다시 맞닥드리고 하다보니 당연히 진도를 나아가기가 더뎠다. 그게 [예민함이라는 선물]을 읽으며 더 예민해진 이유였다. 프롤로그 부분부터도 거의 오열을 하면서 읽었다. 누가 읽으라고 시킨것도 아니니 힘들면 그만 읽어도 되는데도 나의 이 예민함을 책제목처럼 '선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악착같이 계속 읽어나가고 있다.


역시나 두통은 별책부록.





그래도 긍정적인 것은, 처음 정신과를 찾았을 때의 그 시점으로 부터 1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의 시간동안 아무런 도움없이도 나 혼자 나름대로의 극복과 적응을 해 나아가고 있었다는 것과, 책을 읽으면서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내가 쓴 글을 보며 생긴 고민들 중 하나는 '내가 나 스스로를 너무 가여워 하고 있나'였다. 의사양반 말대로 더 힘든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겨우 고작 나샛기가 복에 겨워서 배부른 소리를 하며 신세한탄을 해 왔는가.


초민감자의 개념을 떠나서, 심리학적 관점에서의 (마음의)병에 대한 치료는 "자기연민"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책들은 말하고 있었다. 이런 책을 접하기 전부터 갖고 있던 고민이었기에 이 부분은 특히나 나에게 큰 위로로 다가왔다. 가만생각해보니 어쩌면 나의 자기연민은 나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가엾은 나'를 나 스스로라도 더 챙기기 시작했고, 괴롭게 했던 외부로부터 반발해 내가 내 편이 되어 지키기 시작했다. 물론 그 부작용(?)으로 지금은 좀 흑화(!)되기도 했지만,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들은 나의 이 의미있는 '흑화'에 대해 의외로 긍정적인 반응들이었다. 달라진 나로 인해 내가 불편해진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책의 내용대로라면 이들은 아마 '에너지 뱀파이어'라는 용어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을것이다. 말 그대로 기를 빨아먹는 존재를 지칭하는 실제 심리학 용어라고 하는데, 직관적인 단어 표현이 참 재미있다. 포터헤드인 나에게는 '디멘터'같은 존재 정도 되겠다. 그도 그럴만한게, 이들은 타인의 긍정적인 기운을 빼앗아 지치게 만들며, 그 타겟으로 초민감자를 알아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내가 많이 기빨려 본 바로는, 이 과정은 에너지 뱀파이어 당사자의 무의식 중에도(악의가 전혀 없이도) 빈번히 일어나며, 생각보다 주위에 은근히 많다. 그럴땐 외쳐보자.



"익스펙토 페트로눔!"



'초민감자'라는게 생각하는 것만큼 아주 극소수의 특정한 사람들인 것은 아닌듯하다. 인구 5명 중 1명 꼴은 예민한 사람들이라고 하며, 그 안에서도 초민감자로 구분되는 것은 민감도와 성향같은 세부사항의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당신일 수도 있다는 말. 여기까지 읽은 누구들 중에도 예민한 사람있다면,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힘들어 왔을 당신이, 여기, 나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해서 써본 글. 그게 아니라면 님은 머글.



당분간 글을 쉰다는 말을 바로 어제 적었는데, 오늘은 또 쓰고 싶어지더라.


변덕두 참.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나는 '유난히 감정이 요동치는' 초민감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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