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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Dec 24. 2022

참죽나무 필통

20221011


* 네,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김알록달록님 맞으시죠?



* 앗, 네! 어디시죠?



- 알록달록한걸 좋아하시나봐요, 저는 주문주신 필통 만드는 사람입니다.



* 아, 아. 안녕하세요!



- 발송 보내기 전에 전화드렸어요. 주문주신지 꽤 오래됐는데 이렇게 독촉 연락을 안주시는 분은 또 처음이라 제가 먼저 연락드렸어요.



* 아 그런가요? (웃음) 주문제작이라셔서 그냥 제작기간이 좀 걸리시나보다 하고 기다렸어요.



- 제작기간이 걸리긴하는데, 알록달록님꺼는 시간이 좀 더 걸리기는 했죠. 메모에 조금 더 큰 사이즈를 원하신다고 남기셔서요. 그게 그냥 크게 자르기만 하면 되는게 아니라 손이 좀 더 가거든요.



* 그러셨구나. 안그래도 저는 제작 방식을 모르니까 '가능하면' 좀 더 길이감 있게 해주시면 좋겠다고 쓴거였어요. 혹시 그게 불가능하다고 해도 구매와 큰 상관은 없었을거에요.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래서 말인데, 이 필통 용도가 뭐에요? 다른 주문자분들처럼 뜨개바늘 담으실 용도가 아닌것 같던데.



* 저는 그냥 필통으로 쓰려고 주문했어요. 필기구 담으려고.



- 아. 좋아요. 제작자로써는 사실 원래 의도인 필통으로 써 주시는게 저는 가장 좋더라구요.



* 정말요? (웃음) 다행이네요. 그래서 샤프나 펜보다는 연필 담아 쓰려고 긴 사이즈를 말씀드렸던건데, 생각해보니 새연필말고 어느정도 쓴 연필을 담으면 기본 모델로 제작하신 사이즈에도 들어가겠더라구요.



- 아. 네. 부탁하신 것처럼 길이감을 조금 키우긴 했는데 그래도 아마 새연필은 안들어갈거에요. 그렇다고 더 길게 만들기엔 전체적인 모양이 안나기도 하고.



* 그렇겠네요. 물어봐주셔서 감사해요. 엄청 기대중이에요.



- 그리고 연필을 담으면 이게 재질이 나무다보니 필통 내부에 연필심 그 흑연이 닿는 부위는 검게 묻기 쉬울거에요.



* 그쵸! 그럴것같아서 연필 뚜껑도 미리 사다놨어요. 필통도 연필도 아껴쓰려고.



- 아주 좋네요. 이번 주문으로 만든게 7개 정도 되는데, 그중에 이렇게 맞춤으로 제작된건 두개고 나머지는 다 똑같이 만들었어요. 알록달록님꺼는 본인꺼 딱 하나예요. 같은게 없어요.



* 우와. 고생 많으셨어요. 소중히 간직해서 오래오래 쓰겠습니다.



- 오래 쓰실거에요. 저희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입학 했을때 제가 이 필통을 만들어 줬었는데, 10년이 지나서도 가지고 있어요. 튼튼하고 변하지 않고. 혹시라도 쓰시다 망가지거나 다른 이상이 생기면 보수도 다 해드리니까 그럴땐 연락주시구요.



* 헉, 에프터 서비스까지. 번호 저장해 놓겠습니다. 그래도 망가뜨리면 속상하니까 아끼고 아껴야죠. 아버지가 필통도 직접 만들어주시고, 아드님 정말 부럽네요.



- 그때 저희 가족꺼를 하나씩 다 만들어서 맞췄어요. 네 가족이 같은 필통을 하나씩 가지고 있어요. 각각의 필통이 모두 한 나무에서 나온 재료로만 만들었는데, 옆으로 쭈욱 늘어놓으면 나무의 결이 하나로 이어지도록 만들었었죠.



* 세상에ㅠㅠ 너무 멋지다. 그 말씀 듣고나니까 제가 받게될 필통의 재료에 쓰여진것과 같은 나무로 만드셨을 다른 필통들은 누구누구들이 받으실지 굉장히 궁금해지는데요?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우연히 한 나무를 공유하고 있는거잖아요.



- 아. 그건 개인정보라 비밀입니다.



* 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제작하신 필통 너무 예뻐요. 그냥 예뻐서 예쁜게 아니라, 말씀 듣고나니 그 가치가 더 크게 느껴져서. 저는 필기구를 그냥 가방에 대충 넣고 다니거나 파우치에 다른 물건들이랑 같이 막 넣어 가지고 다니는 편이었는데, 어쩐지 아이디어스에서 이 작품 보는 순간 갑자기 괜히 막 필통이 필요한 것 같고, 하여간 사지않을 수가 없더라구요. 일단 주문해 놓고서 기다리는 동안 이 나무필통에 담겼을때 어울릴만한 나무로 된 샤프도 미리 준비해 놨어요. 필통이 사고 싶어서 필기구를 산 꼴이죠. 그 정도로 한눈에 반했었어요.



- 예쁘게 봐줘서 감사합니다. 알록달록님 눈을 한번 보고싶네요. 예쁜걸 보는 그 눈. 눈 사진 한번 찍어서 보내주실수 있으실까요? (웃음)



* 예? 제 눈을요? 예쁜건 보지만 예쁜 눈은 아니라 그건 좀 곤란합니다만.



- 알록달록님처럼 제가 만든걸 참 좋아해줬던 친구가 하나 생각나네요. 세월호때 기억나시죠? 생존자 친구들이 있었어요. 아예 수학여행을 가지않았던 친구들도 몇 있었고.



* 네, 네. 기억나요. 남은 학생들이 있었죠.



- 그때 그 남은 녀석들을 위해서 내가 도울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이 필통을 만들어서 보냈었어요. 구조된 생존자와, 배를 타지 않았던 학생들의 것 까지 뉴스에 나온대로 머릿수를 맞춰서. 그러고나서는 어느날, TV에서 그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는데 한 친구가 내가 보낸 필통 얘기를 방송에서 하더라고요. 위로를 받았다고.



* 좋은 일을 하셨네요. 참 많이 고마웠을 거에요.



- 오히려 내가 더 고맙더라구요. 고마워해 주고, 기억해 줘서.



* 이렇게 의미있는 물건을 제가 갖게 되고, 이렇게 직접 전화주셔서 좋은 말씀도 들려주시고. 오늘이 특별해졌어요.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지네요. (웃음)



- 정성들여 만든 만큼 오래오래 써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머리는 긴 편이신가요?



* 엥? 갑자기요? 길긴 합니다만.



- 그럼 머리끈 만든 것도 같이 보내드릴게요. 덤으로다가.



* 앗. 그거 판매중인거 말씀하시는거죠? 에고, 상품인데 파셔야지요. 저는 괜찮은데.



- 싫으시면 버리죠, 뭐.



* 으아니 직접 만드신건데 버리시다뇨. 버리실거면 저 주셔요. 제발 저한테 버리셔요.



- ㅋㅋㅋㅋㅋㅋㅋㅋ 보내드릴게요. 오늘까지 작업한 것들은 내일 한꺼번에 보내니까 빠르면 모레부터 받으실 수 있을거에요.



* 네, 감사합니다. 주문 이후로 차분히 잘 기다려왔는데, 이젠 빨리 받고싶어 죽겠어요!



- 음. 혹시 학생이세요?



* 학생 나이는 아니구요, 그냥 자영업자입니다.



- 오, 자영업 어떤거 하세요?



* 저도 그건 비밀로 남겨두겠습니다.



- (웃음) 간판 만들어 드리고 싶어서요.



* 간판이요? 너무 좋을 것 같긴 하지만 지금은 가맹점이라... 나중에 진짜 제 사업을 하게되면 그때는 꼭 의뢰 드리고 싶네요.



- 뭐 의뢰까지 할건 없구요, 연락주시면 그냥 하나 만들어드릴게요.



* 아니, 저는 필통하나 샀을 뿐인데...



- 주문주신 분들중에 가게하시는 분들꺼 많이 만들어드렸어요. 선물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 ㅠㅠ 말씀만으로도 너무 감사합니다. 수제 나무간판이라니. 언젠가는 제 사업장 차려서 꼭 받고싶어요.



- 간판은 파는게 아니라서 아이디어스에는 안올려져 있고, 제 인스타 들어오시면 구경하실수 있을거에요. 메모 가능하세요?



* 예! 잠시만요. (부시럭 부시럭) 불러주세요.



- K, K, A, M, A, S, A, E.



* 네, 꼭 찾아볼게요!



- 주문 고마워요. 잘 써주세요. 또 뵈면 좋겠네요.



* 제가 감사하죠. 인스타에서 뵐게요!



2022. 10. 10. 오후에 걸려온 한통의 전화에 대한 기억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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