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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Dec 24. 2022

담배가게 아가씨

20221020


동네에 비보이가 산다. [옥이네 쪽갈비]가 있는 그 건물 꼭대기. 꼭대기층에는 해당 건물의 건물주 가족이 살고있다. 건물주가 자가소유 건물의 맨 윗층에 사는건 국룰인건가. 펜트하우스. 아무튼 비보이는 무려 건물주의 아들. 나름 금수저.


20대때 함께 알바를 하며 알게됐었던 다른 비보이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이 금수저 녀석이 알고보니까 그들사이에서는 '팝핀'으로 제법 네임드인 실력자더라고. 다시 봤네 그려.



나는 근무중일때 영업시스템에서 나오는 노래를 끄고, 내가 듣고싶은 노래를 틀어둔다. 깊지는 않지만 그래도 폭넓은 취향을 갖고있긴해서 나의 플레이리스트에는 시대도 장르도 다양한 노래들이 가득있다. (음원은 주로 벅스를 이용하는데, 내가 이용고객 중 상위 1%라며 혜택 안내 메일이 온적이 있었다. 응, 나도 안믿었다.) 가끔은 일부 손님들이 본인 취향과 맞는 노래가 나오면 이 노래가 뭐냐고 정보를 얻어가기도 하고, 샤잠(음원 검색)을 해 가기도 한다. 살면서 그냥 BGM으로만 흘려듣기엔 아까운 곡들이 있지. 몰랐던 좋은 노래가 들리면 놓치지 않으려는 습관이 나역시 있어서, 내가 좋아서 틀어놓은 곡이 누군가의 그런 마음을 붙잡는다면 뿌듯한 마음으로 기꺼이 알려준다.


그 비보이 녀석이 담배를 사러왔다가 그런식으로 자주 노래를 물어왔다. 개업 초기에는 나를 좀 신기해하기까지 했다. 본인이야 음악에 관련한 직업을 갖고있기 때문에 많은 음악을 자연스레 접하게 되지만, 나는 (편순이 주제에) 이런 노래들을 어떻게 알고있고 또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이 일을 하기전엔 무슨일을 했었냐며 정체가 뭐냐는듯 궁금해했다. 본인이 아는 사람 중에는 관련 직종이 아닌 이상 그런 취향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고.


글쎄, 내 생각엔 니가 너무 한정적인 친구들(같은 비보이들)하고만 다니는게 아닐까 싶고, 나는 아마 그냥 오타쿠일걸?



음악과 노래는 나에게 너무도 일상적이라 이유랄것도 없이 당연해왔던 것이기에 쟤가 말하는 그런것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굉장히 신선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대답을 찾았다.



나는 레코드가게 딸내미였다. 내가 아주 어렸을때, 엄마가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레코드가게'를 운영했었다. 그때의 기억이 나에겐 남지 않았을만큼 어렸을때라서 나는 이 사실을 가끔 잊곤한다. 남아있는 당시의 사진들과, 엄마가 들려줬던 추억이야기 정도의 단서만 가지고 있다. 엄마말로는 내가 그때 우리가게의 마스코트였다고 했다. 그 시절에 유행했던 노래가 흘러나오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전축 위로 올라가 립싱크를 하며 춤을 췄고, 손님들은 그걸보고 웃으며 귀여워 했다고 한다. 요즘 같았으면 유튜브각인데. 그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곡은 '심신'의 '오직 하나뿐인 그대'였다고.


지금은 저런 무대체질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지만, 나의 이런 '흥'은 외가쪽의 피를 물려받은게 분명했다. 외할아버지는 동네에서 가수로 통하는 분이셨었는데, 그덕에 큰외삼촌도 노래를 잘하셨고, 둘째와 막내삼촌은 독학으로 악기를 배워(각각 신디사이저/기타) 왕년에는 [와이키키브라더스]처럼 행사를 뛰며 벌어먹고 살 정도였다. 이런 삼촌들의 근사한 취향도 어릴적의 나에게 영향을 줬다. 큰외삼촌은 레드제플린을, 둘째외삼촌은 카를로스산타나를, 막내외삼촌은 비틀즈를 가르쳐주었고, 몇년전 내가 일렉기타를 고를때에도 여전한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우리 맹히씨. 이런 분위기속에서 지냈던 맹히씨도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다. 레코드가게의 오너라는 멋진 직업도 가져봤고, 전국 각지의 시장을 떠돌던 '각설이'에서 라이브 카페 보컬로도 활동하다가 지역 소속 음악단을 거쳐 지금은 노래강사로 일하고 있다. 엄마의 어릴적 소망처럼 음반을 내고 이름을 알린 '가수'가 된 건 아니지만, 엄마는 분명 음악가였다. 평생에 걸쳐 꿈을 놓지 않고 산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지, 지금은 각기 다른일을 하고있는 삼촌들은 알겠지.


엄마는 음악에 한해서는 자식들에게도 본인만의 조기교육을 했다. 다른 학원은 못보내도 피아노는 꼭 배우게 했고(못침. 엄마 미안),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가요톱텐]이 방송하는 시간에는 집에 들어와 무조건 TV앞에 앉아 최신 대중음악 트렌드를 배웠어야 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땐 비디오로 예약 녹화까지 해줬다. 케이블 채널이 등장한 후로는 허락없이 투니버스를 틀면 혼나도, MTV나 M.net을 틀어 놓으면 그럴일이 없었다. 어린 오빠와 나에겐 그런 음악방송이 EBS나 마찬가지였다. 또 가전제품을 바꿀때가 되면 엄마는 노래대회에 나가서 냉장고든 세탁기든 어렵지 않게 타왔고, 우린 그런걸 대수롭지도 않게 흔한 일처럼 보며 자랐다.



엄마의 이런 영향력은 유년시절이 지난 후에도 나에게 생각보다 더 깊이 남아있었다. 풍물패에 들어가 사물놀이를 배우며 한때는 국악 꿈나무였던것, 고등학교때 기타반에 들어가 기타선생님을 좋아하게 됐던것,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밴드부를 했던것. 이렇게 나도 모르는새에 계속 해왔던 선택들. 낯선 악기에 대한 호기심도 여전해서 올해만해도 소형 하프와 스타일로폰을 구매했다. 다음 목표는 루프스테이션. 만년 위시리스트는 아코디언.


만나게된 인연들도 마찬가지였다. 되돌아보니 가장 최근의 전남친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의 연애상대 모두 음악적 취향으로 친밀함이 시작됐던 사람들이라 새삼스러웠다. 마지막 남친과도 연관이 없진 않았다. 어릴적 엄마가 내내 틀어주고 불러줬던 노래들 덕에 나는 내 또래의 친구들보다도 7080세대의 노래를 많이 알고있어서 나보다 한참 연상이었던 전남자친구와의 연애에서도 충분한 공통분모가 존재해 세대차에 따른 이질감이 크지않았다.



이정도면 내가 음악에 대해 그런 관심이 없는게 더 이상한 상황이 아닌가 싶다.


한 사람의 오래된 질문에서 시작된 이 글을 쓰며, 내 안에도 음악을 향한 어떤것들이 있음을 인지할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다. 쓰고보니 나도 나름대로는 음악가 집안 출신이었네. 올ㅋ


아. 여러가지 악기에 대한 언급 때문에 악기를 잘 다뤄서 이것저것 수집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악기엔 정말 소질이 없다. 혹시라도 아직 접해보지않은 악기중에서 어쩌면 내가 평생 모를수도 있는 잠재력이 있는게 남아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러니 그걸 계속해서 찾아보는 것일 뿐. 그리고 악기는 실력과 무관하게 늘 훌륭한 장난감이 되어준다.



레코드가게 딸내미는 이제 담배가게 아가씨가 됐다.


우리동네 담배가게에는 아가씨가 예쁘진 않아도,


온동네 청년들이 너도나도 기웃기웃하지는 않아도,


듣기좋은 노래가 들리고 그 노래는 비보이를 춤추게 하지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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