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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Dec 24. 2022

두부 아저씨

20221018


한 3~4년전에 이사갔던 단골이 오랫만에 왔다. 촌스런 사투리에 능글능글한 말투, 삐딱한 표정은 여전했지만 왠지 모르게 조금은 부드러워진 것도 같았다. 바뀐 헤어스타일 때문인가. 이제 진짜 아저씨같이 배도 좀 나온것 같고.


하여간 너무 반가워서 숨길수 없는 미소가 지어졌다. 다시 이동네로 이사오셨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뭘 좀 구하느라고 혹시나해서 여기까지 와봤다며 왠일로 쭈뼛거렸다. 예전에 단골일때 찾는 제품이 있으면 내가 구해다 줬던게 문득 생각이 났단다. 불법만 아니면 다 구해 드릴게, 뭐를 찾으시길래요?하니 다른게 아니라 그놈의 포켓몬 빵. 아, 난 또. 아니 뭔 으른이,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두부 아저씨가 포켓몬 빵을 찾아요. 여기까지 오셨으니까 내가 구해는 드리는데, 실망이에요. 안본 사이에 사람 많이 유-해졌네.하고 놀렸다. 그 사이에 조카가 생겼단다. 조카한테 하나라도 더 주려고 여기저기 발품팔고 있다고 했다.



가게 바로 맞은편에 원룸 건물이 있는데 1층은 주차장이라 고양이들이 자주 다닌다. 그래서 가게 초기때부터 그건물 건물주의 허락을 구해(개를 키우신다) 밥자리를 마련했고, 밥먹으러 오는 녀석들은 가끔 주차된 차에도 올라가고 그랬다. 지금은 우리집에 있는 애옹이가 특히나 차 위에 올라타는걸 좋아했었다. 그 건물에 살고있던 두부 아저씨(호칭이 아저씨일 뿐 나이는 그리 큰 차이가 나진 않는다)는 내가 고양이들 밥 주는걸 알고서 우리 가게에 뭘 사러올때마다 '망할놈의 고양이가 자꾸 차에 발자국을 찍어 놓는다'며 투덜거렸다. 말은 그렇게 해도, 차를 빼려할때 애옹이가 또 자기차 위에서 쉬고 있으면 욕이나 몇마디하고 다른차를 타고 나갔다. 원룸 세입자면서도 차는 두세대정도나 있었다. 저 사람 정체가 뭘까 싶었지. 아무튼 츤데레인것만은 확실.



아저씨는 이른아침 즈음 퇴근하는 모양이었다. 그때는 ㅊㅎ랑 내가 새벽 5시쯤 교대했었는데, 거의 항상 교대시간에 들러서 우리 둘과 같이 인사하는 일이 많았다. 이동네가 유독 그렇기도 하지만, 그시간에 출근이 아닌 퇴근을 하는거니까, 그리 건전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거 정도는 대충 알고있었다. 도착해 흰색 봉고차를 주차해 놓고 바로 집앞인 우리 편의점에 들러 먹을거리를 사면서, 기분이 좋으면 음료수나 간식같은걸 우리에게도 하나씩 사주고 들어가곤 했다.(나를 알바라고 생각했다.) 뭔 일수가방 같은거에서 돈을 꺼내 계산하는데, 그 가방엔 늘상 현금이 가득했다. 유독 많이 벌어온 날엔 그걸 열어 보여주며 돈자랑을 할때도 있었다.



가끔 친구들을 집에 불러 놀땐 술을 잔뜩 사가기도 했다. 저런 남자는 나가서 큰돈 쓰면서 놀것같은 타입인데 왜 답지않게 친구를 집으로 부를까 했더니만, 나중에 알고보니 하는일이 '아가씨 장사'라고 했다. 친구들도 다 건달같은 놈들이었다. 말투도 형님, 형님, 하면서. 문신도 많고 어지간히 험악한 인상들이었지만 하나같이 매너들은 좋았다.


그리고 의외로, 여자친구 외의 다른 여자는 한번도 데려온 적이 없었다. 여자친구는 나와 동갑이었고, 예쁜데다 성격까지 좋았다. 일하면서 만난 '아가씨'인것 같은 눈치였다. 얼마안가 같이 살게됐는지 자주 보게 됐었다. 나중엔 먹자골목쪽에 호프집을 오픈했다고 했는데, 여자애가 털털하게도 일할때 입는 파란색 '카스' 앞치마를 그대로 멘 채로 퇴근하고 그랬다. 앞치마가 성하질 않은걸 보니 열심히 일하고 온 티가 났다. 나는 그런 그친구가 맘에들어 잘해줬었다.



그러다가 두어달인가 동안이나 아저씨가 안보이던 때가 있었다. 이사를 갔나 하기에는 차는 그대로 있었다. 덕분에 그동안엔 애옹이가 실컷 올라탔었지.


어느날 다시 오기 시작하길래 어디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오셨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웃으면서 해외여행이 아니고 두부를 먹고 왔다고 했다. 순간 이게 무슨소린가 했다가 곧 알아듣고는 깜짝 놀랬다. 아무리 그래도 정말 나쁜짓을 할 사람은 아닌데 어쩌다가. 싸움이 나서 누굴 좀 때렸다가 그렇게 됐다고.



이건 내 생각이지만 아마 맞을 짓 해서 때렸을거다.



그일 이후로 내가 진상고객 썰을 풀며 하소연이라도 할라치면,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만 하라고, 자기가 나와서 패준다고 헛소리를 했다. 그리고 나는 그 헛소리가, 걸어서 2분 거리인데도 호출하면 고작 그 거리를 굳이 차를 타고 15분이나 걸려 출동하는 근처 지구대의 경찰들보다도 더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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