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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Jan 07. 2023

더 글로리

20230107


님들, 넷플릭스에 새 컨텐츠로 올라온 [더 글로리] 봄? 난 봄ㅇㅇ. 흑화한 송혜교라니, 못 참지.

그게 재밌었다, 별로였다, 이런 평론적인 얘기를 쓰려는 건 아니고. 보다 보니까 잊었던 것들이 떠올라서 과몰입하게 되더라고. 학교 다닐 때, 극 중의 주인공처럼 ‘학교 폭력의 피해자’까지는 아니었지만, 주인공이 느꼈을 감정들에 대해 공감이 가는 정도의 일들을 나도 겪었더라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 반에도 그런 애가 하나 있었다. 여왕벌 역할을 하며 무리를 형성해 반에서 정치질 하는 것들. 어디에나 꼭 있잖아. 불량한 애가 딱 하나만 있어도 추종자들이 생겨버리니까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어버리지.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물을 흐려놓으니까. 그때에도 나는 그게 졸라 유치했었다.

음악적 취향이 맞는 친구1과 둘이 콘서트를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와 다른 콘서트에 또 가려고 돈을 모아 표를 샀었다. 친구1은 갑자기 일정이 생겨 같이 못 가게 됐다. 나라도 가고 싶었지만 혼자 가기는 싫어서 친구2를 꼬셨다. 친구1은 자기가 약속을 취소한 거니까 표값은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 친구2에게 돈을 받아 전달해 주기로 했었다.

그 여왕벌이 이 내용을 어디서 주워들은 모양이었다. 나에게 친구1이 못 가게 된 공짜 티켓을 내놓으라며 걔가 돈 안 받아도 괜찮댔으니까 그럼 자기가 가겠다고 했다. 친구2와 가기로 했고, 2가 1에게 정산할 거라고 끝난 얘기라며 상황 정리를 했다.

그리고 콘서트 신나게 조지고 온 다음 날, 겨우 그 이유로 나는 교실에서 다른 친구들이 다 보는 앞에서 여왕벌에게 쏘였다. 왜 아무도 말리거나 개입하지 않았을까. 친구1도, 친구2도 왜 내가 맞는 걸 보고만 있었을까. 정황상 나는 둘에게 깔끔하도록 교통정리만 한 것뿐인데. 물론 걔랑 가기도 싫었고.


뺨에 불이 난 것처럼 뜨거운 통증이 느껴지는 동안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가만 보면 저 젓가락 같은 년이 힘으로든 덩치로든 나한테 안 되는데. 좆만한 년이 뭘 믿고 저럴까. 확 참지 말아 봐? 내가 덤벼들면 충견들도 엉겨 붙겠지. 판이 커지겠는데. 교무실에 불려갈 테고 부모님을 부르겠지. 우리 집은 편부모 가정이니 쟤는 집안 환경이 저래서 그렇다 웅앵웅 할텐데. 시발. 그 소리를 듣느니 얘한테 잠깐 몇 대 맞는 게 낫겠다, 싶었다. 내가 눈을 피하지 않는 게 기분이 나빴는지, 아니면 보는 눈들이 많으니 쎈 척이 더 하고 싶던 건지 욕하며 소리를 질렀고, 이 악물고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다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그 후에 새로 장만한지 얼마 되지않은 CD플레이어가 없어졌고, 생일 선물로 받은 리복 운동화를 신고 온 당일에 도둑맞았다. 그냥 우연의 일치 아니냐고? 2학년 때, 버스를 탔는데 어디서 많이 본 애가 어디서 많이 본 신발을 신고 있더라고. 재밌는 건, 내가 그 신발과 걔를 번갈아 쳐다보자 걔는 날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나는 다시 새 운동화를 사기 위해 용돈을 모아 나이키 덩크를 샀고, 당시의 트렌드에 맞게 내 발보다 두 사이즈나 큰 걸 신어 질질 끌고 다녔다. 여자애들은 그런 거 딱 싫어했으니 또 훔쳐 갈 일도 없고 간지도 나고 좋지 뭐. 철 지난 리복은 너나 실컷 신어라, 도둑년아. 신을 때마다 내 생각 꼭 하고.


그런 물리적인 고통이나 물질적인 손실은, 정신적 스트레스에 비하면 별일도 아니었다. 학교 친구들은 알겠지만, 나는 고3 때 반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응, 어감도 좆같은 ‘왕따’.


내가 졸업한 학교는 남녀 공학이지만 반은 남자반과 여자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나는 2학년으로 진학하며 이과를 선택했는데, 이과의 여자반은 머릿수가 애매해 학교에서 반 배정을 하는 데에 골머리를 앓았다. 두 반으로 나누기엔 부족하고, 한 반으로 모으기엔 넘치고. 그래서 결국엔 3학년 때, 학교 역사에 전례가 없던 최초의 합반이 만들어졌다. 전교 통틀어 합반은 3학년 10반 딱 하나뿐이었고,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 반으로 배정이 된다.

우리 반은 성 비율도 애매했다. 남학생은 25명, 여학생은 겨우 10명. 유일한 합반이라 선생들 입장에서는 요주의 반이었으리라 추측된다. 뭔 스캔들이 나도 당연한 거고, 사실 시간문제 아닌가. 같은 반 안에서는 이성 친구를 사귀지 말라던 담임의 압박 수비에도 불구하고 커플이 탄생한다. 는 나. 나샛기 고3때 첫 남자친구 생겼었음.


학교 분위기가 위에 설명한 대로 보수적이다 보니 서로 옆자리 짝꿍이던 남친과 나는 이걸 비밀로 했었다. 만나는 걸 숨겨야 하니까 집도 같은 방향인데도 등하교 정도도 같이 못 하고 불편한 게 많았다. 그런 걸 계기로 반 친구들에게 드디어 커밍아웃하게 됐었다. 남자애들은 얼레리꼴레리 장난치며 축하도 하고 그랬는데 여자애들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어떻게 그런 걸 우리에게 비밀로 할 수 있냐며. 고작 열 명뿐인 여자 인원이라 나름대로는 서로 돈독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편 가르기식 사고방식이 싫었다. 니들이 나와 같은 여자라서, 적어도 여자애들한테는 말해줬어야 하지 않느냐는 그 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여자고 남자고, 내적 친밀감이 있었으면 내가 알아서 했겠지. 그래서 그냥 이 상황이 맘에 들지 않는가보다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우리 반 여자애들은 나와 말도 섞지 않았다. 처음엔 그냥 삐졌구나, 저러다 말겠지 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잘못한 것이 없을 땐 사과하지 않는다. 그건 분명히 사과할 일이 아니었다. 왜 저러는지 정말 모르겠어서, 저 말은 핑계고 다른 문제가 있어서 저러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왜냐면, 나를 내친 걔들이 내 남친에게는 평소와 다름없이 잘 지냈거든.


남친도 상황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내 처신의 문제라고 생각했을까. 걔네가 나에게 못되게 굴어도 별 신경 안 쓰더라. 괜히 내 편 들고 나섰다가는 자기도 같은 취급 받을까봐 두려웠을까. 남자애들은 나를 차별하지는 않았다. 그냥 심플하게 ‘같은 반 친구’라고만 생각했는지, 아니면 ‘친구의 여친’이라고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여자애들이 나를 철저하게 따돌려도 나와 어울려주는 다른 남자애들과 남친이 있으니 외롭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생활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었다. 학교 안에서는 남친과 나란히 서 있기만 해도 혼났다. 나는 점심시간에 밥도 혼자 먹게 됐다. 체육 시간 전 탈의실도, 화장실도 혼자 다녔다. 이동할 때에도 혼자였고, 조별 과제에서는 늘 배제되었다. 1, 2학년 때 친했던 다른 친구들에겐 전혀 티 내지 않았었지만 이게 다른 반까지 소문이 나서 나중엔 문과반 친구들이 나와 점심을 같이 먹어주었다. 문과반과는 층이 달랐는데도 쉬는 시간마다 우리 반에 놀러 와 준 친구도 있었다. 내가 자기들 없이도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게 또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나에 대한 무시는 적극적인 괴롭힘으로 변해갔다. 담임은 연애에 대한 주의만 줄 뿐 이런 상황엔 관심도 없었고, 입시율에만 혈안이었다.


어린 시절의 연애가 그렇듯, 반년도 못 채우고 헤어졌다. 그 애들이 나를 미워할 이유가 없어졌지만 따돌림에도 관성이 있더라. 수능도, 이놈의 고3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까짓거 나도 관성으로 버티면 됐다. 하지만 더 최악이었던 건, 남친과 헤어지고 나니 같은 반 남자애들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거다.


수능이 끝나고, 남자애들로부터 개인적인 연락이 왔다. 영화를 보자던가, 밥을 먹자던가 하는 식이었다. 같은 반에 친했던 친구라고는 남친뿐이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없으니 친구가 없던 나는 그런 연락들이 반가웠다. 곧 대학가니까, 그동안 남친 눈치보느라 깊이 친해지지 못한 아쉬운 마음에 그런 건 줄. 밖에서 따로 만날만한 정도의 친분이 아닌데도 하나같이 이상하게 친한 척들을 하며 말을 걸어왔고, 여러 명이 함께가 아닌, 항상 1 대 1로 만나자는 거였고, 그렇게 만나자는 놈들이 갑자기 한두 놈이 아니었다. 개중엔 우리 집에 놀러 온다는 놈도, DVD방을 가자는 놈도 있었다. 지금은 그게 건전한 목적들이 아니었다는 걸 알지만, 나는 그 당시엔 그래도 꽤 순수했었나 보다. 밑도 끝도 없이 아무것도 몰라서, 오히려 얼떨결에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다. 순진했던 나는, 우리 집에 오고 싶다는 친구를 흔쾌히 불러 새해라고 떡국을 손수 끓여 먹였고, DVD방에 가서는 [나의 결혼 원정기]를 틀어 놓고 너무 재미가 없어 코를 골고 잤다. 집에서 영화 보자는 놈과는 영화관 기분이라도 내자고 전자렌지용 팝콘을 튀겨 [웰컴 투 동막골]을 다운받아 아주 뒤집어져가며 재미있게 봤었다. 물론 나만 재미있었다. 뜬금없이 밥을 사준다는 놈과는 김밥나라에서 돌솥낙지덮밥을 먹었고, 잘 먹었다고 하고는 바로 집에 갔다. 먹튀. 다음 진도는 뭔지 몰라도 그나마 건전하게 시작한 놈은 갑자기 다이나믹듀오 2집 CD를 선물한 놈. 받았으니 뭔가는 줘야 할 것 같아 나도 비싼 폼클렌징 하나 선물했다. 걔는 여드름이 많았거든. 쓰고 보니 역대급 철벽녀였네ㄷㄷㄷ

나는 이걸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다, 개새끼들아. 다 결혼하고 애 낳아서 잘들 살더라?


나를 아주 우습게 보고 접근했었다는 걸, 그들이 하나둘 결혼하는 과정에 확신했다. 그렇게 친한 척해가며 들러 붙을 땐 언제고 고3 동창 중에 나한테 청첩장을 보낸 친구는 단 하나였다. 그 녀석은 수능 끝나고 만나자 했던 놈도 아님. 결혼식 못 가서 미안하다, 마도야. 그리고, 쉬는 시간마다 날 보러 이과반 층에 올라와 줬던 문과 여자애는 사실 날 보러 오던 게 아니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들었다. 우리 반의 남자애들과 친해지고 싶어 나를 팔아 왔다고. 거기에 내가 비밀연애를 했다는 이유로 나를 주도적으로 따돌렸던 우리 반 여자애가, 우리 반의 다른 남자애와 몰래 만나왔다는 사실까지.

이쯤 되니까 나는 내가 겪은 모든 것들이 그저 허무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의 신체적인 흉터만이 흉터인 것이 아니다.


그래서 [더 글로리]를 보며 치미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가해자들은 기억도 못 할 일들을 나는 세부 사항까지 18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데, 드라마 속의 그 년놈들은 철저히 신분 세탁해가며 잘만 살고 있다.


“그래, 회개해서 꼭 천국에 가. 사는 동안은 지옥일 테니까.”


라는 그 대사, 나도 복수하면서 개멋지게 뱉어보고 싶지만.


얘들아, 내가 니들에게 뭘 하지 않더라도, 업보는 살면서 다 돌아오게 돼 있단다. 나는 그렇게 믿어. 그러니 부디 잘 먹고 잘 살아. 그래도 이런 드라마로 대리만족이라도 하는 게 존나게 짜릿하단 사실은 숨길 수가 없네. 나는 맥시멈으로 흑화한 송혜교가, 정말이지 너무 좋다. 곧 본격적인 복수가 이루어질 시즌 2가 누구보다 기다려진다.


내가 궁금한 건 말야, 한 짓이 있는 니들도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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