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매년 새해 계획이 무어냐고 물어보던 알바녀석이 올해는 질문 없이 넘어갔다. 아무래도 내가 언젠가 '그딴 거 없다'며 썼던 글을 의식한 듯하다. 글을 쓰기 시작한 후로 주변인들로부터의 은근한 조심성이 느껴진다. 나의 글은 내가 그동안 굳이 말로 하지 않았던 불만에 대한 게 대부분이라 그런지 쓰면서도 내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 일종의 선언 같은 걸 하는 느낌이기도 했다. 이런 걸 읽은 사람들은 내가 보기보다 예민한 녀석이라는 생각에서 였는지, 나와의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크고 작은 트러블을 미연에 방지하려 노력하는 듯했다. 내 입장에서는, 이렇게 속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해 온 어느 순간부터 주변 사람들이 좀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의도한 것도 전혀 아니었고, 글에서만큼 현생에서는 그렇게까지 냉소적이진 않을 텐데. 그래도 나름의 배려일 테니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신경을 쓰게 만들어 미안하기도 하다. 음. 또 나 혼자 쓸데없이 너무 깊이 생각하고 있는 건가.
고양이가 좋아하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싫어하는 걸 안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의외로 굉장히 소박한 바램 아닌가.
싫어하는 걸 안 하는 사람이 더 좋은 건 나도 그렇다. 고양이와 오래 살아서 이렇게 된 건지, 아니면 나의 선천적인 이런 성향이 고양이와 잘 맞아 이렇게 같이 살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제는 ㅅㅎ언니와 점심 약속이 잡혀있었다. 언니와는 언젠가부터 주기적으로 부대찌개를 먹는 날이 있었다. 잊을 만하면 생각날 때쯤 한 번씩 가는 집이 있다. 어제도 오랜만에 그 집에 가는 날이었다.
내 퇴근 시간에 맞춰 언니가 도착했다. 차에는 언니의 조카도 타고 있었다. 약속과 달라서 당황스러웠다. 조카가 방학이라 같이 밥 먹고 학원에 데려다 줄 예정이라고 했다. 이 상황이 대수롭지 않을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나는 약속을 취소했다. 그동안처럼 언니와 둘이 먹는 줄 알았지, 애기도 같이 올 줄은 몰랐거든. 조카랑 둘이 먹으라고 보내고 은행에 가서 업무를 마저 봤다.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편하게 밥 먹기 힘들 것 같아서 였다. 아이와 함께 있는 게 어떤 건지도 잘 모르고, 아이 앞에서 해야 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을 잘 구분할 줄도 모른다. 괜히 애 앞에서 말 실수 할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나는 피어싱에 문신도 많은 흡연자인데. 저번에 인터넷에서, 어떤 부모가 자녀의 어린이집 선생이 흡연자라며 자격이 있네 없네 하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아이 앞에서 피우는 것도 아닌데 요즘의 부모들은 별게 다 불쾌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아이를 가질 생각이 전혀 없는 나로써는 감히 이해해보려 할 수도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비슷한 상황이라도 애초에 만들지 않는 게 상책이다. 스스로가 모범적인 어른이 아니라서, 나는 아이와 함께 있는 상황이 아주 어렵고, 긴장되고, 눈치 보이고, 불편하다. 어쩌면 나 자신이 어릴 때 겪은 것들을 디테일하게 기억하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어른들은 ‘애가 뭘 알겠어’ 하면서 어쩌다 애 앞에서 실수를 해도 크면 기억도 못 할 줄 알지만, 나는 어릴 때도 집안의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만한 건 다 아는 애였고, 아직도 잊기 힘든 것들이 남아있다. 그런 것들이 다 그 약속을 취소한 이유였다.
이런 장황한 해명을 한 게 아닌데도, 언니는 알겠다고 괜찮다며 돌아갔다. 둘이라도 먹으러 갈 줄 알았는데 다시 집으로 갔다고 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게 만들어서 섭섭하기는 했을 거다. 조카가 같이 온다고 미리 얘기했었다면 나도 출발 전에 설명했겠지. 상황적으로 취소는 내가 했지만 아쉬운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언니와의 간만의 약속이기에 평소보다 의상도 신경 써서 입고 출근했고, 이따 맛있게 먹기 위해 일하면서 밥때도 계산해서 먹으며 일부러 뱃속을 비워두었었다. 그리고 부대찌개,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약속이 깨지고도 자꾸만 생각이 나서 결국 퇴근 후 다른 곳에서 배달이라도 시켜 먹었다.
또 나 혼자 예민 떨어서 괜히 눈치 보게 만든 것 같아 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 건 사실이지만,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이런 내 입장에 대해 화내지 않고 쿨하게 납득해 준 그 마음은 동생으로서 굉장히 고마웠다.
나의 이런 까탈스러움을 받아줬던 친구들이 또 있다. 수원에 살고 있었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몇몇 동창들과 오랫동안 이어져 온 단톡방이 있었다. 친구들과 떨어져 천안에 오게 된 나에게 그 친구들과의 연결고리라고는 그 단톡방뿐이었다. 단톡방 안에서의 나는 거의 눈팅만 하는 ‘아싸’였지만, 녀석들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기도 했고 천안엔 친구도 없었어서 어쩌면 단톡방이 조금은 의지할만한 구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말 많은 내가 눈팅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어릴 땐 친했을지 몰라도, 어른이 된 우리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친구들은 그 안에서 남자 얘기, 직장 얘기, 다른 동창들 얘기, 잠자리 얘기까지 정말 별 얘기를 다 했지만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극히 드물었다. 남자를 볼 땐 사랑보다 조건을 따졌고, 허구한 날 시댁이나 직장 상사를 까 내리는 말을 하거나 단톡방 안에 없는 다른 동창의 뒷얘기를 하는 식이었다. 첫 장사라는 현실에 적응하는 것만 해도 하루하루가 버거웠던 나는 어느 순간 단톡방 알림 숫자가 24시간 내내 점점 늘어나 있는 것만 봐도 짜증이 났다. 그 숫자를 없애려고 가끔 들여다보면, 모두가 배부른 소리나 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내가 왜 이들 사이에 속해 이런 의무감을 가져야 하는지, 이들은 본인들과 결이 달라도 한참 다른 나를 무엇 때문에 끼워주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이상 그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 해의 1월 1일 아침. 친구들에게 마지막 톡을 남기고 한 톨의 미련도 없이 그 단톡방을 나왔다.
「떡국들은 챙겨 먹었냐? 나는 올해부터는 억지로 하는 건 뭐가 됐던 안 하려구. 그래서 이 방도 나갈 거니까 용건 생기면 개인적으로 연락 부탁할게.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아!」
그 직후 그 단톡방 안에서 무슨 말들이 오갔는지 나는 모르지만, 곧 한 평화주의자 친구에게 소환되어 다시 초대됐었다. 장난하는 건 줄 아는 모양이었다. 한 번 더 [나가기]를 누른 후, 나를 초대한 그 친구에게 개인톡을 보내 아까한 말은 진심이니 다시 부르지 말아달란 부탁을 했다.
그게 뭐라고, 그거 하나 나갔다고 마음이 그렇게 편해질 수가 없었다.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 징징대는 소리, 가식적인 말들, 이런 척 저런 척, 했던 말들의 반복, 호들갑스런 리액션, ... 그런 영양가 없는 것들로부터 벗어난 순간 비로소 자유로웠다. 빛바랜 우정과 맞바꾼 해방감. 그 선택은 그해에 가장 잘한 일이었다.
그 안에 속해 있던 친구들과의 인간관계도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성향이 맞지 않던 친구는 나의 행동에 불쾌했는지 다신 연락할 일이 없었고, 그럼에도 이따금씩 나를 궁금해한 친구들은 여전히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 온다.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이토록 이기적인 나샛기마저도 받아들이고 이해해 준 ㅅㅁ와 ㅎㅈ이에게 늘 고맙다.
“여러분, 하고 싶은 거 하세요!”
노홍철이 SNS에 피드를 올릴 때마다 꼭 붙이는 말이다. 단순하지만 결코 쉽진 않은 이 말을 참 좋아한다. 노홍철이라는 사람은 대외적으로는 그저 웃기는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말 똑똑하고 진실된 사람이라는 걸 나는 안다. 그게 뭐든 간에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은 참 멋지다.
바꿔 말하면, 하기 싫은 건 안 하면 된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기에도 인생은 짧다.
여러분도 하고 싶은 걸 다 할 순 없더라도, 적어도 하기 싫은 건 억지로 참지 않으면서 그걸 미안해하지 않는 새해가 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