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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Jan 26. 2023

버킷리스트+1

20230125


쓰는 것을 좀 쉬고 있었다. 처음으로 글을 요청받아 어딘가에 내 글이 실릴지도 모르는 기회를 운 좋게 얻었는데, 부담감이 생기니 글이 안 써졌다. 설농탕을 사 왔는데 왜 먹지를 모타니. 아무래도 글을 써서 돈벌 수 있는 팔자는 아닌가 보다. 결론적으로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물이 나왔고, 있지도 않던 자신감마저 뚝 떨어졌다. 시발, 내가 그럼 그렇지. 시간이 조금 더 주어졌다면, 그래도 읽을만 한 게 나왔을까. 글쎄. 이러나저러나 쓰레기였을 거다. 원고를 보내 놓고 피드백을 기다리고는 있지만, 부족한 필력에 퇴짜를 맞을 것만 같다. 그래도 당연한 거겠지. 주제도 모르고 그 일을 수락하기에는 아직 너무 일렀던 걸로.


겨우 마감을 끝낸 후, 쓰는 거라면 한동안은 쳐다도 보기 싫을 줄 알았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원래 써 오던 에세이를 재개하고 싶은 마음은 남아 있었다. 그 일로 하도 스트레스가 컸었는지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것도 전부 다 문체로 들려왔다. 미친, 아주 작가 나셨네. 그렇게 뭔가 쓰고 싶은 건 많았는데도 한 번 기가 죽고 나니 내 글에 확신이 없더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게 맞는지, 그리고 그 말이 정말 맞는 말인 건지. 정답은 없겠지만 내 생각이 맞지 않느냐고 우기려면 설득력이라도 있어야 하잖아. 읽는 사람을 설득할 수 없다면, 내 글은 그냥 예민한 사람이 혼자 온갖 유난이나 떠는 글로 밖엔 안 읽히겠지. 그런 게 다 싫다. 자존감 하락.


그런 와중에 맹히씨는 명절이라고 평소보다 연락을 자주 해 왔다. 그렇다고 해서 그 자체가 딱히 귀찮다거나 한 건 아니었는데 늘 그랬듯 그 내용이 문제였다. ‘너라도 후회없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는데... 어쩌고, 세월이 너무 빨리 간다, 저쩌고' 대충 이런 내용의 카톡. 보자마자 기분이 확 나빠졌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내가 후회할 삶을 살고 있을 거라 함부로 짐작하는 걸까. 내가 본인들의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는 방식과 나라는 인간을 마음에 들어 한 적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고, 아무리 부모라도 결국엔 타인이니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자위하며 살았다. 나 역시도 그 둘처럼 살기는 좆도 싫으니까. 그래도 내가 댁들한테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한 적은 없잖아?


나는 내가 원하는 게 뭔지 항상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 같은 부류는 후회라는 걸 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는 듯ㅇㅇ. 하고 싶은 걸 하지 않았을 때나,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했을 때 하는 게 ‘후회’ 아님? 하고 싶은 걸 너무 열심히 해버려서, 하기 싫은 걸 끝까지 거부해서 후회가 되는 그런 일이 있기나 할까. 나는 언제나 본능에 충실하고 감정에 솔직하려 노력했다. 거기에 대한 후회는 일절 없다. 나중에 오랜 시간이 지나 혹시라도 티끌만 한 확률로 후회 비슷한 어떤 걸 한다고 쳐도, 그 후회도 내 몫이겠거니.

결국엔 또 원점으로 돌아와서, 내가 이렇게 사는 꼬라지가 나의 만족도 여부와는 상관없이 맹히씨 본인의 입장에서 꼴배기 싫다는 건데...


오랫동안 겪어도 나는 잘 모르겠다. 남들처럼 살지 않는 게 뭐가 그렇게 대수라고. 내 나이에 결혼과 출산을 안 했다 해서, 고양이만 끼고 산다고 해서 그게 그렇게 루저 취급받을 일인가. 왜 궁금하지도 않은 누구누구 집 딸내미들 들먹거리며 그들과 비교하면서까지 내가 후회할 인생을 살고 있다고 그렇게 단언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비교를 그렇게 좋아하시니 나도 비교해보자면, 할 말 존나게 많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가게 이모님만 봐도 그렇게 자식 자랑을 하신다. 아들은 좀 느즈막히 취업을 했지만 듣기로는 직장이 괜찮은 편이고, 딸은 삼십 대 중반인데 아직도 공부를 한단다. 물론 공부하는 게 문제는 아니다. 번번한 수입 없이 여전히 부모님이 구해준 집에 살며, 부모님이 주시는 생활비로 지내고, 부모님이 대주는 학원비로 이 학원 저 학원 떠돌아서 그렇지. 전에는 웬 전공과도 무관한 뮤지컬을 하겠다고 보컬이랑 연기 레슨을 받는다더니 올해는 또 갑자기 감정사 시험을 준비한단다. 그 사이에도 꿈이 자주 바뀌었고, 그때마다 배움엔 돈이 들었다. 매번 자격증을 따 놓았다면 그거라도 남을 텐데 것도 아님.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니라 알바라도 하면서 수강료에 보탤 수도 있었을 텐데, 정작 알바는 엄마인 이모님이 하신다. 지금 같은 명절에 본가에 왔다 가면 차비와 세뱃돈 명목으로 몇십만 원씩 챙겨 보내신다고. 그럴만 한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비싼 돈 들여 굳이 서울에 따로 집을 얻어 사는지도 알 수가 없다. 제 3자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구조이지만, 어떤 상황에도 부모의 지지와 존중을 얻을 수 있다는 것만큼은 부럽기 그지없다(물론 놀고먹으면서도 꽁돈 받아 학원이나 다니는 것도 존나 부러움. 참 팔자도 좋지). 이모님은 따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실 때 한 번도 부정적인 발언을 한 적이 없다. ‘우리 애가 워낙 여러 가지에 재능이 많아서 그렇다’고 하신다.

다 큰 어른인 자식을 대하는 이런 식의 과잉보호도 그리 정상적이라고 할 순 없겠으나 이유가 없진 않을 거다. 내가 모르는 숨겨진 사연이, 나름대로 있을 수도 있겠지. 이모님이 나에게 이런 종류의 이야길 하시는 데에는 순수한 자식 자랑 이외의 별다른 의도가 없다는 걸 알지만, 나는 그 말들에 혼자서 매번 큰 상처를 입는다.


열등감에 북받친 인간. 내가 정말 무능해서, 누구라도 후회할 만한 그런 인생을 살고 있어서 부모마저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걸까. 저 집 딸은 타고나게 넘쳐나는 재능 탓에 도무지 한 가지만을 고르기가 어려워, 아무런 걱정 없이 이것저것 다 시도해 볼 기회와 사랑을 얻은 걸까.

그게 아니라는 걸 나 스스로가 이미 명확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다고 환경만 탓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쟤는 부모 잘 만나서 좋겠다, 나는 왜 이런 거지 같은 집구석에서 태어나 가지고- 정도로 생각을 정리하기엔 이미 너무도 길고 긴 자기연민의 시간을 보냈다. 자기연민은 쓸데없는 자책에서 벗어나야 할 나의 처지에 있어 꼭 필요한 것이었지만 그것도 이젠 지긋지긋하다.



나샛기 따위 하찮게 보는 게 분하고 억울해서라도, 내가 당신들 생각처럼 그렇게 못 나지는 않았다는 걸 굳이 증명하려 했던 적이 있다. 가족들은 내 어떤 선택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으니, 긍정을 가질만 한 '신뢰'를 주고 싶었다. 나도 조건 없는 사랑 좀 받아보고 싶어서.


나는 머리가 좋은 편이다. 내가 똑똑하다는 걸 부모 중 누구도 말해주거나 심지어는 알아챈 적도 없어 나 자신도 그걸 꽤 늦게서야 알았다. 알기 전까지는 그냥 주변 사람들이 멍청하다고만 생각했었지. (미안하다. 하지만 팩트임) 그나마 다행히, 겪어 온 담임 중에서는 그걸 나에게 직접적으로 말해 준 사람이 있었다. 그때까지도 별로 믿기지 않았지만.

깨닫고서는 상당히 충격이었다. 친구들이 멍청한 게 아니라 내가 감히 똑똑한 거였다니. 알았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똑똑하다고 해서 뭐든 잘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과목만 월등히 잘했고, 싫어하는 과목은 바닥을 깔았다. 그때도 나는 호불호가 분명했고, 내 관심사를 벗어나면 그에 대한 어떠한 의지도 생기지 않았다. 해서 평균적으로는 늘 그럭저럭 어중간한 포지션이었다.

그렇게 어중간하게 평타치고 살며 사실을 잊고 지내다가, 맹히씨의 허망한 대사로 한 순간에 쓸모 없는 존재가 되어버려 지금처럼 심적으로 지쳐있던 어느날 불현듯이, 나를 증명할 구실로 이 방법을 떠올렸던 거다. 누구든 똑똑한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있지 않을까. 신뢰할 만 한 사람이 되면, 내 결정에 반박할 수 없지 않을까. 물론 나를 믿지 않으니 내가 똑똑하다는 말도 믿지 않겠지. 설득력이 있으려면 지능에 관한 객관적인 데이터가 필요했다. 나는 멘사 테스트를 보기로 했다.


이런 생각을 처음 입 밖으로 꺼냈을 때, 당시의 남친은 내 얘기를 듣고서 나를 말렸다. 테스트에 합격하면 다행이지만 불합격한다면, 외부적으로 쪽팔림과 동시에 내부적으로 자괴감이 들지 않겠냐는 거였다. 똑똑함을 어필하되 테스트를 보지 않는다면 그냥 '똑똑할 수도 있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데, 괜히 시험을 봐서 실패라도 한다면 똑똑하지 않다는 걸 증명한 꼴밖에 더 되겠냐며.


결론적으로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테스트를 보지 않았고, 남친과는 잘 헤어졌다고 생각한다. 시험을 보지 않은 이유가 저 말 때문은 아니었다. 시험은 대전에서 치러지는데, 경조사도 제대로 못 다닐 정도로 쉬는 날이 하루도 없는 내가 시험 시간에 맞춰 타지로 가는 게 어쩌면 합격만큼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를 한 것도 아니다. 딱 하루 어렵게 시간을 내서 수험료와 경비까지 써가며 테스트를 볼 거라면, 무조건 합격해야 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멘사를 쉽게 보기엔 나이를 먹으며 뇌세포가 죽어가는 게 너무나 느껴졌고, 공부를 손에서 놓은 지도 오래돼서 모든 게 예전 같지 않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계획을 잠정적으로 보류하고, IQ 테스트용 교재를 샀지.


이제 와 든 생각이지만 그때의 남친과 헤어지길 잘했다고 생각한 건, 나와 가치관이 달라서다. 나는 똑똑한 사람이고 싶지, 똑똑해 보이는 사람이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진실이 아닌 건 뭐가 됐든 싫다. 똑똑한 사람으로 남아있기 위해 시험을 보지 않는 모순이라니. 저런 말을 언급한 것 자체가 남친 자신조차 나의 부모처럼 나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는 걸 반증하는 게 아닐까. 내가 시험에 떨어진다고 해서 ‘지가 똑똑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인 걸까. 그냥 ‘멘사 회원만큼은 아니지만 똑똑한 사람’이란 걸 내가 알면 그걸로 된 거지. 중요한 건 그거였다. 나는 나를 누군가에게 애써 증명 씩이나 해가며 사랑을 구걸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은데. 나의 가치는 내 스스로가 알면 그걸로 된 거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내가 회원 자격을 얻는다 한들, 나의 부모는 멘사의 시스템까지 의심할 사람들일 게 뻔하다. 그냥 내가 하는 건 뭐가 됐든 믿을 수 없는 거겠지. 변할 것이 없다. 알고 보니 뻐킹 지니어스였든 아니면 빡대가리였든 간에 나에게 신뢰가 없다면, 그냥 그렇게 두기로 했다.


딱히 이렇다 할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니고 가끔 두뇌 회전이 땡길 때마다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씩 펴 보는 책이라서 앞으로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를 일이지만, 나의 버킷리스트에는 멘사 테스트 응시가 추가됐다. 내 이름이 박힌 멘사 회원 카드를 수령 하게 된다면 더 좋고. 그리고 그건 온전히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호기심일 뿐이며, 그저 재미와 성취감을 위함이다. 연습 문제를 푸는 동안의 치매 예방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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