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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Mar 13. 2023

두가지 리뷰

20230313


1. 반찬 투정



엄마가 다녀갔다. 늘 그랬듯, 나를 보러 온 건 아니고 겸사겸사. 오기 전에 반찬을 해다 준다면서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다. 경산에서 올라와 천안에 들렀다가 서울까지 가는 일정이라 반찬까지 해 오려면 분명 새벽에 일어날 걸 안다. 운전만 해도 피곤할 테니 필요 없다고 했다. 됐다는 데도 굳이 바리바리 싸 가지고 왔다. 어차피 지 맘대로 할 거면 도대체 뭐 하러 물어보나 모르겠다.

그놈의 오징어 반찬이 이번엔 없다. 나는 오징어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매번 오징어 반찬은 꼭 있었다.


“니네들 어렸을 때, 오징어 해 주면 제일 잘 먹었잖아.”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어릴 때도 오징어를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엄마는 지 아들이 좋아한 것들은 항상 저런 식으로 기억한다, ‘니들’이 좋아했다고. 그런 생색이라도 안 냈으면 화가 덜 났을까. 원래도 좋아한 적은 없지만 사실 그런 말들 때문에 오징어가 더 싫어졌다. 내 돈 주고는 일부러 사 먹을 일 없는 음식.

이런 말들을 참아낸 건 아니었다. 오징어 반찬이 보일 때마다 댁 아드님이나 좋아하시지 저는 아닌데요하고 수 없이 어필 했지만 엄마의 기억은 질리게도 바뀌지 않았다. 내 의사는 그때도 지금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가 보다. 하여간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절교 선언] 이후에 드디어 내 의사가 나와의 관계에서 우선순위에 올랐는지는 몰라도 오징어 반찬이 없었다. 근데 또 오뎅이 있는 거 보면 별 생각 없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나 오뎅 안 좋아 함. 이것도 오빠샛기가 좋아했던 거임.

이런 글을 쓰면 ‘해 줘도 지랄’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래서 지랄 않고 먹었다.


내면의 괴로움의 실체를 대면하려니 또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경계했는지 엄마가 왔다 가고 나서 한 이틀은 거의 좀비였다. 그때 그 절교 사건에 대해서는 서로 별다른 언급이 없었지만 확실히 의식은 했는지 꽤 어색하긴 했다. 아들 집에서 며칠 보내고 천안에 다시 들른 엄마는 나랑 있는 내내 손주 자랑만 신이 나서 했다. 또 ‘니 조카’가 어쩌고, 하면서. 남들은 조카 바보니 어쩌니 한다는데 걔 고모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어 보이니 나에게 의무감이라도 심어주고 싶은 거다. 본인이 하고 계신 게 그 대단한 가스라이팅인 줄도 모르고. 그릇된 모성은 이렇게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차라리 나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냥 제발 나년을 매우 쳐라.

아, 그리고 며느리 욕도 조금 했다. 시누이인 나에게 며느리 욕이라니. Such a cliché...


꼭 읽고 반성했으면 하는 [모녀의 세계]와 맹히가 좋아하는 시집을 내 책 주문할 때 사 뒀다가 가는 길에 건네줬다. 제대로 읽기나 할까 모르겠다. 하긴, 정작 그 내용을 꼭 알아야 할 엄마들은 그 책을 읽어도 그게 자기 이야긴 줄도 모른다고 하니 뭐, 별 기대는 없다. 그냥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간접적으로 시도는 했다. 명리학 책에서 ‘신금(辛金)’의 타고난 직설적인 표현 방식이 타인에겐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다고 하길래. 이런 빠른 수용의 기질도 내가 가진 흙(土)의 본성이라고 한다. 기승전 갓리학,, 내가 에세이에 한문을 쓸 줄이야.






2. 더 글로리



[더 글로리] 파트 2가 공개됐고, 나눠서 애껴 보긴 개뿔 9화부터 16화까지 달리느라 다음 날 세 시간도 못 자고 출근했다. 빠른 전개를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서 나는 파트 1이 더 좋았다. 자극적인 것도 불편하긴 했지만 받은 대로 돌려준다는 균형에 있어서는 피의 복수가 불가피했다.


친했던 경란이가 피해자가 된 동은이의 손을 뿌리치는 회상 씬에서,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팠다. 나의 고3은 일 년 내내 그 장면의 그 감정이었다. 언급하지 않았었지만 3학년 같은 반의 열 명밖에 안 되는 여자 아이들 중에서는 나와 1, 2학년을 같이 보냈던 친구도 있었다. 군중심리. 따돌림보다도 더 힘든 게 그거였다. 단 한 명이라도 곁에 남아 주었다면, 주인공의 운명이 달라졌을 것이다. 피해자에게는 가해자도, 사실을 알고도 외면한 방관자도, 그저 모두 가해자일 뿐이다.

하지만 방관자는 자신이 또 다른 피해자가 될 때까지 그 절박함을 알지 못한다. [더 글로리]의 메시지 중 가장 좋은 부분은 가해자도 아닌, 방관자를 향한 일침이다. 경란이처럼 동은이 또한 한때는 방관자였다. 피해자였던 나도 방관자였던 적은 없었는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자신이 가해자였던 적이 없었다 해도 드라마를 본 모두가 꼭 반성 해야 될 논지다. 적어도 이 드라마를 보았다면, 나와 너님들은 앞으로의 선택에서 있어 잊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어디서 살든, 어떻게 살든, 이만큼은 짊어지고 살아.

그리고,

나 이제 더는 그 복도에 서 있지 않아.

그러니까 너도 그 체육관에 더는 서 있지 마.”


어지러울 만큼 노랬던 그 사물함 앞에, 나도 더 이상은 서 있지 않다.


어렸던 동은이에게 ‘기댈만한 어른’의 부재는 고데기로 부터의 상처보다도 깊었다. 내 부모는 본인들의 힘든 것이 더 커 자식들의 힘듦을 들여다볼 여유가 조금도 없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당시의 담임은 자신의 직업적 커리어인 대학 입시율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람이었고, 나를 둘러싼 반의 분위기에 관해서는 전혀 몰랐는지, 알고도 모른 척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 반을 맡은 선생으로서 어느 쪽이든 문제가 있다. 내가 가고 싶은 학교는 내 모의고사 성적보다도 꽤 하향 지원이라 수시로도 충분히 갈 수 있었을 텐데도 본인에게 유리한 학교에 보내려고 수시 결석을 허락해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수능 후에도 성적에 적합한 학교로 원서를 밀어 넣었고, 나는 오리엔테이션까지 떠밀려 가서야 등록금을 환불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일을 담임에게도 부모에게도 비밀로 한 채로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했었다. (나중에 졸업 후에야 알고서 교무실에서 난리가 났던 모양이더라.) 상황이 이러니 정작 따돌림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호소할 어른도 없었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닫아 버렸다. 했다 한들 돌아오는 대답은 뻔했겠지. “니가 뭘 잘못 했겠지” 라던가, “대학 가면 그것도 다 끝인데, 시간 금방 가” 라던가.

나는 원하는 대학에 가서 대학 생활 내내 동기들과 선후배도 킹정하는 ‘핵인싸’로 지냈다. 내 문제가 아니었다는 게 스스로에게 증명된 셈이다.


가장 애정하는 극 중 인물은 파트 2의 손명오 사건을 담당으로 시작돼 전체 사건을 추적하게 되는 형사. 직업적인 역할도 있겠지만 ‘익명의 증인’이라고 표현한 동은이의 증언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으로 끊임없이 의심하면서도 이해와 가까워져 가며 능동적인 태도를 보인 점이 멋졌다. ‘없는 것들’의 권선징악과 인과응보를 최종적으로 완성 시켜주는 인물. 작지만 큰 역할이었다. 결론적으로 심판자로 남은 그의 고뇌를, 살짝만 더 깊이 다뤘었으면 싶은 아쉬움이 남을 정도.


99%의 계획과 1%의 우연이 만나 100%의 복수가 완성된다면, 그 1%를 채운 건 건물주 할머니다. 할머니는, 자기와 똑같이 강물에 빠져 죽으러 와서는 오히려 본인을 구해 준 어린 학생의 차디찬 발을 주물러 주며 “지금은 물이 너무 차가우니까, 우리 따듯한 봄에 죽자”며 동은이를 생명의 은인으로 기억한다. 그날 이후로 열여덟 번의 봄이 지나갔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한눈에 알아본다. 경제적으로도, 마음마저도 부자인 세계관 최강의 완벽캐.


나의 가해자들은 그때의 일을 기억도 못 할 수도 있고, [더 글로리]를 나보다도 더 재밌게 봤을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근데 그거 알아? 그러든가 말든가 좆도 내 알 바 아님ㅋ 이 정도 나이를 쳐먹고도 그 정도의 자아성찰과 자기반성이 없는 인생이라면, 내가 니들보다는 나은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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