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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Mar 25. 2023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20230325


이젠 ‘마약 김밥’도 다 옛말이다. 대한민국이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게 되면서, 앞으로는 재미로라도 ‘마약’이란 단어를 이용해 상품을 홍보하면 벌금이 부과될 수도 있다고 한다. 텍스트 그대로 [먼 나라 이야기]인 줄만 알던 마약은 이제 국내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로 낯설지 않게 쓰이기도 하고 각종 시사 프로그램과 뉴스에서도 흔하게 나오는 지경이 됐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매체의 방향이 경각심을 주는 쪽이 아니라 오히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방향인 것 같아 진심으로 걱정이다. 실제 마약 중독자의 인터뷰 후 도움을 받아 루트를 알아낸 PD가 정말로 한 시간 안에 모든 구매 과정을 거쳐 수령까지 성공해 전국 어디에서도 약을 구할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거나, 중간 거래자가 법의 허점을 지적하며 “저는 절대로 안 걸려요. 걸려도 다 빠져나오게 돼 있어요.”라고 발언한 부분을 음성만 변조한 후 편집 없이 송출한다거나, 미성년자도 용돈으로 구할 수 있을 만큼 낮은 장벽의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내용이나, 실험 삼아 취재해 본 특정 병원에서도 쉽게 처방받는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거래로 꽤 쏠쏠한 재미 좀 봤다는 딜러의 자랑 섞인 수입 공개를 가감 없이 들려준다거나. 이 정도면 소비든 유통이든 너도 한번 해 보라며 조장하는 수준 아닌가.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방송국 놈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나는 진짜 모르겠다.


몇 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마약 중독이 아니고는 설명이 되지 않을 정도로 행동이 이상한 사람이 오랫동안 단골로 오던 적이 있었다. 늘 거친 숨소리를 냈고, 땀과 침을 흘렸고, 눈은 어디를 보는지 모르겠고, 말투도 어눌했고, 자꾸 결제한 카드나 가지고 온 핸드폰, 방금 계산한 물건 등을 두고 가기 일쑤였다. 원두커피 기계에서 셀프로 뽑아가는 아이스 커피를 하루에도 열두 번은 더 사 갔었는데, 거짓말 안 보태고 세잔에 한 번꼴로 가는 길에 쏟았다며 다시 사러 들어왔다. 단순히 주의력이 부족하거나 어디 좀 모자란 사람이라기엔 멀쩡할 때는 또 너무도 멀쩡했고, 저게 술에 취한 상태였을 거라 가정하기에는 우리 가게서 단 한 번도 술을 사 간 적도 없거니와 어떤 순간에도 그 사람에게서 술 냄새 비슷한 것도 났던 적이 없었다는 게 소름이 다 끼칠 정도였다. 결정적으로 잠을 안 자는 사람이었다. 하루 4교대 전 근무자 시간에, 각 한 타임 안에 적어도 두세 번씩 왔으니, 우리가 돌아가며 일하는 24시간 동안 그 사람이 자는 시간을 추측해 볼 만한 시간대는 없었다. 그래서 풀린 눈이 항상 벌게진 상태로 커피를 사러 왔었다. 우리 모두는 그 사람이 가게에 들어올 때마다 또 뭔 사고라도 칠까 봐 신경이 곤두서서 나갈 때까지 긴장하고 있어야 했다. 그때까지도 그게 마약 때문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그 즈음에 근처 옷 가게 언니에게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신종 진상이 다 있다고 하소연하다가, 천안에 마약이 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언니는 근육통 때문에 주기적으로 마사지를 받으러 다녔었는데, 마사지샵에서 마약이 유통된다는 소문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다고. 마사지를 받은 단골들에게 처음에는 서비스인 척 인심 쓰듯 그냥 준단다. 공짜로 푼 마약을 경험해보고는 그곳을 다시 찾게 되는 구조. 그렇게 두 번째부터 실제 판매가 이루어지고, 두 번은 세 번이 되고, 결국 중독이 된다. 듣고 나니 그제서야 그 사람의 기이한 행동들이 설명되더라. 이상할 때와 멀쩡할 때의 상태가 불규칙적인 주기가 있었다. 꽤 오래 왔던 단골이라 개인적인 사정을 우리가 원치 않아도 어느 정도 듣게 됐었는데, 부모가 돈이 좀 있고 외동이라 오냐오냐 키워진 모양인지 낼모레가 마흔인데도 돈 한 푼 벌어 본 적 없이 용돈 받아 생활한다고 했다. 현실판 ‘이사라’. 현금인출기를 자주 이용하러 왔었던 게 부모로부터의 입금을 확인하거나 약을 살 돈을 출금했던 거였나 보다. 어느 날엔 웬 이력서를 사 가면서 면접을 본다고 말끔하게 하고 나왔었는데 벌어 본 적도, 그럴 생각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취직한다니 약값이 부족했던 게지.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몰라도 얼마 안 가 금새 일을 때려쳤고 본가로 들어간다고 이사 갔었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똑같은 동네로 다시 돌아온 약쟁이는 그 후 몇 달간 또 우리를 괴롭혔었다.

마약성 물질을 투약한 상태의 사람과 한 공간 안에 있다는 것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대형 버스의 맨 앞 좌석에 탄 기분이다. 가만히 있다가는 나부터 좆될 것 같은 기분. 그래서 정신이라도 똑바로 차려보려 하지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유난히 더 심각했던 어느 날 아침엔 동네 카페 앞에서 그 사람이 넘어져 뒤집어진 바퀴벌레 마냥 못 일어나고 버둥거린 적이 있었는데, 도움이 필요한 취객인 줄 알고 카페 여사장님이 경찰을 불렀었다. 약쟁이가 경찰을 마주하니 부랄이 존나게 쫄리긴 했는지 횡설수설하며 자기가 공황장애가 있다는 개소리로 둘러대고는 벌떡 일어나서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집으로 뛰어 들어갔었다. 아마 그 후로 그 사람을 못 봤던 것 같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대중에게 실체가 공개된 거다. 하필 천안의 고담시인 이놈의 두정동 바닥에서 동네 장사를 하는 나는 최근까지도 본 것과 들은 것이 많고, 무섭고, 믿기지 않는다. 평범한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먼 줄로만 알았던 일들이기에, 이렇게 일상 가까이에까지 암흑 물질이 널려 있다는 걸 이제는 인정해야만 한다는 그 사실이 무엇보다도 가장 무섭다. 그래서 유아인의 기사가 터졌을 때, 그게 절대로 연예계 안에서만의 일이 아님을 알기에 더 마음이 쓰였는지도 모르겠다.


함께 일하는 ㅊㄴ는 종종 나와 교대할 때 내 출근룩을 보고선 ‘드러그딜러 스타일’이라고 꼽주는데, 이젠 농담이라도 그런 얘기 하면 안되겠다. 안 그래도 유통업 종사자라 위장 업체로 오해받는 수가 있음.

한창 롤링 타바코(말아 피우는 담배)에 빠져 있을 때 담뱃잎과 전용 페이퍼를 챙겨와 가게 한구석에서 침 묻혀가며 열심히 말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장난이라도 그런 짓 하면 안되겠다. 안 그래도 탈색 머리며 옷도 문신도 묘하게 그쪽과 이질감이 없는데, 괜히 시발 떨 생산자로 오해받는 수가 있음.

동네 꽃집에서 매년 양귀비 화분을 팔 때마다 참 예뻐서 언젠가는 꼭 키워보고 싶었는데, 이젠 쳐다도 보지 말고 지나가야겠다. 왠지 모르게 키우고 싶더라도, 왠지 이유가 있어서 키우는 사람처럼 보이는 수가 있음.


그러니 여러분,

마약은 김밥이든 베개든 사 먹지도, 베고 자지도 말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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