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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May 11. 2023

동물농장 편의점

20230511

말벌과인 쌍살벌의 초기 벌집. 다른 말벌류와 다르게 외피 없이 짓는다.
저 안쪽 모퉁이에 지었다. 비와 바람을 모두 피할 수 있는 장소로 고른 걸 보니 여간 똑똑한 놈이 아니구나.
미안하다 아가들ㅠㅠ


동물농장 편의점


이번엔 벌이다. 벌이 가게 옆쪽 어닝 속 한 구석에 집을 지었다. 찾아보니 쌍살벌이다. 말벌과라고 한다. 어쩐지. 요즘 자꾸 한 놈이 자주 주변을 날아다닌다 했다. 해충을 먹고 사는 육식이라길래 벌레 사냥하러 오는 거겠거니 했지. 해 뜨는 시간에 맞춰오는 멧비둘기 밥을 주러 나갔다가 없던 게 보이길래 다가갔더니 벌집이었다. 보자마자 놀래서 바로 수습하느라고 제거하기 전 사진은 찍지 못해 인터넷에서 퍼왔다. 사진에 나온 벌집보다 조금 큰 정도로 아직 몇 칸 없는 작은 규모였다. 초기 둥지라고 한다. 독립한 여왕벌이 혼자서 저렇게 조그맣게 지어둔 후 칸에 맞춰 알을 몇 개 낳고, 그 알에서 애벌레가 자라나면 일벌이 된다. 일꾼들이 생기면 집이 점점 증축된다. 그러니까 내가 발견한 건 그렇게 되기 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집. 더 커지기 전에 발견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발견했을 때 여왕벌은 사냥하러 자리를 비운 상태였는지, 아니면 벌집 제거를 도와주신 앞 가게 사장님 말씀대로 새에게 잡아 먹힌 건지(가게 간판 조명 때문에 벌레가 항상 많아서 아침마다 참새와 직박구리가 식사하러 온다) 다행히 우리가 공격당하진 않았다. 살아 있다면, 집에 다시 돌아왔을 때 얼마나 망연자실할까 싶어 내가 다 미안했다. 긴 빗자루로 쳐서 벌집을 떼어내자 바닥에 떨어져 부서진 둥지에서 세 번째 사진에서처럼 통통한 애벌레들이 나왔으니까. 미안하다. 미안하다. 내가 아무리 무례한 손님을 참지 못해 덩달아 쏘아붙인다 해도, 그렇다고 가게에 오는 손님을 벌(그것도 말벌)에 쏘이게 할 순 없는 노릇이다. 미안하다.


어릴 때, 작은 아빠가 시골 할머니 댁에서 취미 삼아 소규모로 양봉을 했었는데, 내 기억 속 작은 아빠는 장가가기 전 큰 형네인 우리 집에 얹혀살았을 때부터도 굉장한 또라이였다. 작은 아빠는 벌집을 하필이면 집 대문 앞에 두고 키웠다. 집을 들어가고 나갈 때마다 온 식구가 벌 떼 속에서 잔뜩 긴장하며 지나가야만 했고, 작은 아빠는 낄낄거리며 그걸 즐겼다. 뭐, 굳이 장점을 찾자면 벌집이 대문에 있는 게 마당에 집 지키는 진돗개 한 마리를 두는 것보다 방범 효과가 월등히 나았다는 것쯤이겠다. 그리고 도가 지나치도록 짓궂은 그런 장난질에 비해서 뭘 키우는 솜씨는 정말 탁월해서, 계절별로 순도 높은 귀한 꿀을 먹을 수 있었다는 것 정도.


지금 같은 봄에 이렇게 짓기 시작한다고 하니 주변을 잘 살펴보도록 하자. 벌집이 아직 건축 초기일 때 제거해야지, 모르는 새에 일이 커져 버리면 119를 부르게 될 수도. 한 번 지은 곳에는 다음 해에 또 와서 짓는 습성이 있다고 하니깐 내년에도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겠다.


사실 벌레가 이 주변에 알을 낳은 게 처음은 아니다. 가을에 사마귀가 낳았던 알집은 봄에 부화하길 기대하며 채집했지만 조건이 맞지 않았는지 실패했고, 아이비 화분 잎에 노린재가 낳았던 알은 더 좋은 환경을 위해서 밖에 있는 나뭇잎에 옮겨줬는데도 하나도 못 살렸다. 관찰한 놈들 중 살아남은 건 무당벌레 알이 유일했다. 유충(같은 무당벌레라고는 상상이 안 될 정도로 더럽게 생겼다)에서 번데기를 거쳐 겨우 풋풋한 색의 성충이 됐었다. 곤충이란 정말이지 너무나도 작고 연약한 존재다.


이런 얘길 하면 주변에서 너는 자꾸 희한하게 그런 일만 다 있냐고 하지만, 유독 내 주변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닐 거다. 단지 관심의 차이다. 당신이 보았든 보지 않든 간에, 작고도 거대한 이 자연의 생태는 나름의 역할을 열심히도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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