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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May 19. 2023

BROOKS WAS HERE

20230519


다섯 번째 남자친구와의 장거리 연애 시절, 그런 적이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 몇 주나 몇 달에 한 번씩 겨우 보고 전화 정도나 가끔 하니까 주변에서 정말 남자친구가 있는 게 맞냐며, 없는데 있는 척하는 거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생각해 보니 그럴만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날에도 하루나 이틀 정도만 보니까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기도 아까워서 누구에게 인사를 시켜주거나 소개할 자리를 만든 적도 없다시피 했고, 둘 다 사진 찍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같이 찍은 사진도 연애 초기에 찍었던 겨우 몇 장이 전부다. 또 떨어져 있는 동안에는 서로 바빠서 늘 손이 일을 하고 있으니 나도 남친도 폰을 들고 있어야 하는 영상통화보다는 블루투스로 하는 음성통화를 더 선호했다. 여러모로 증거불충분. 그런 면에서 지인된 입장에서는 충분히 의심해 볼 만했을 거다. 실물을 단 한 번도 볼 수 없는 그런 유니콘 같은 존재에 대해 들려주는 썰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있을 리가.


그 말을 한 언니야 물론 농담으로 그런 거였지만, 조용한 시간에 나는 혼자 또 요상한 상상을 한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말야. 내가 진짜로 있지도 않은 사람을 진짜라고 착각하고 계속 꾸며내고 있는 거라면? 애초에 남자친구는 없었고, 나와 5년간 만났다고 믿고 있던 그 사람이 사실은 나의 외로움이 만들어낸 상상 속의 인물이라면? 내가 그저 스토리텔링에 능한 정신병 환자라면? 스스로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거라면?


과학에서는 어떤 것도 함부로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이 공동의 약속과도 같다. 거의 100%의 확률처럼 보이는 현상에 대해서도 ‘그럴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라고 표현하는 동시에 그렇지 않을 일말의 가능성에도 여지를 남겨 둔다. 이런 이과적 관점에서는 내가 심각한 정신병자일 확률을 결코 배제할 수 없는 거다. 이런 생각 자체도 뭐 이미 미친 거 아니냐고? 글쎄. 님은 사실 ‘통속의 뇌’일 뿐이고, 님이 읽고 계신 이 글, 정확히 지금 이 시간에, 당신이 있는 바로 그곳에서 보도록(‘본다’고 믿도록) 프로그래밍 된 시뮬레이션인 걸지도 모르잖아. 당신이 사랑하던 당신의 삶이 실은 죄다 구라를 쳐바른 [트루먼 쇼]였다고, 당신은 알고 보니 [사토라레(サトラレ)]였다고 한다면, 에이-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고 과연 확신할 수 있을까? 무슨 근거로? 증명할 수 있겠어?


이런 생각을 진지하게 계속 파고들면 그 길이 바로 미친년이 되는 지름길이겠다. 그럼에도 머릿속 한 켠에 있는 작은 의심을 지울 수는 없었다. 연애 초기 때부터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 본 ㅊㄴ나, 실제로 남친과 인사까지 했었던 맹히씨마저도 날 위한 마음에 나의 모든 거짓말에 맞장구를 쳐가며 완벽한 허구를 완성 시켜준 걸지도 모르지. 그는 있으면서도 없는 그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굳이 열어보며 가슴을 쓸어내리기 위해, 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카톡을 차단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말 나온 김에 방금 프로필 사진을 확인해 보니 내가 그렇게 반대했던 바이크를 기어코 산 모양이다. 누가 봐도 이상하고 수상한 전여친으로 보일 걸 알지만, 마음이 남아서가 아니다. 사고라도 날까 걱정이 되긴커녕 원하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오히려 안심되는 걸 보니 그렇다.








나와 나의 사람들이 실존할 가능성이 크다는 근거를 찾는 방법으로는 공통된 추억을 함께 회상하는 것이 있다. 나는 이걸 어제 ㅇㅎ와 대화에서 명확히 느꼈다.


고등학교 친구인 ㅇㅎ와는 2학년 때 딱 한 번 같은 반이었다. 각자의 베프도 따로 있고 서로 어울리는 무리도 달랐다. 그런 것 치고 우리에겐 설명하기 어려운 친밀함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끈이, 느슨하지만 그렇다고 끊어지진 않을 것 같이 연결돼있달까. 하여간 큰 접점이 없이도 묘하게 편하고 죽이 잘 맞았다. 학창 시절 진득하니 붙어 다녔던 친구도 아니었고, 졸업 후에도 동네에서 마주치는 것 말고는 따로 약속을 잡고 만난 적도 별로 없던 것 같은데. 그렇다 보니 둘 사이에 버라이어티한 추억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한 가지 기억 나는 건 둘이서만 갔던 KFC다. 한 달에 딱 한 번 토요일인가, 야간 자율 학습 시간이 없어 학교가 일찍 끝났던 유일한 날이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둘이 KFC에 런치 세트를 먹으러 갔었다. 그 당시 3,900원에 징거 버거와 치킨 한 조각, 음료 하나까지 먹을 수 있었으니까 학생 신분으로는 최고의 식사였다. 조금 아쉽다 싶으면 주머니의 잔돈을 털어 비스킷 하나를 추가하고. 신나게 먹고 수다 떨고 했던 게 너무 재밌어서 우리는 그다음 달의 토요일에도 같은 코스를 함께했고, 또 그다음도 그랬던 게 결국엔 둘 사이의 전통이 됐다.


몇 개의 글에서 고등학생 때의 이야기를 쓰며 그 시절을 생각할 때마다, 3년의 시간을 통틀어 정말 즐거웠던 기억이라고는 그 기억 하나 남더라고. 그 하나만으로도 고등학생 때의 기억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아지더라. 고3이 되면서는 그 토요일에도 학교에 남아야 했었으니까 우리가 거길 함께 갔던 게 기껏 해봐야 몇 번 안 될 테지만, 아직도 나에게 KFC는 ㅇㅎ라는 친구 그 자체로 남았고, 아마 ㅇㅎ에게도 똑같이 내가 그랬었나 보다.


오랜 사진 한 장을 계기로 아주 오랜만에 연락해 오래전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나는 또다시 공상에 빠진다.


[쇼생크의 탈출]에서 출소한 레드가 브룩스가 머물던 방을 쓰게 되고, 레드는 멕시코로 떠나기 전 브룩스가 천장 대들보에 새긴 유언을 발견한다.


BROOKS WAS HERE


레드는 브룩스의 글자 옆에 자신의 글자도 남긴다.


SO WAS RED


우리가 늘 앉던 KFC의 테이블에 우린 ‘여기 우리가 있었다’는 보이지 않는 글자들을 새겼고, 이십 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낙서를 발견한 거다. 우리는 우리가 다시 만 아직 날짜도 없는 그날의 약속에, 장소는 무조건 KFC로 정했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우리도 여기 있었다’고 다시 옆에 남기겠지.

ㅇㅎ는, 우리 이제 돈 버니까 먹고 싶은 거 다 시키자고 했다. 용돈을 아껴가며 그날만 기다렸다가 코 묻은 돈을 탕진했던 우리는 이제 KFC에서 치킨을 버켓으로 시킬 수 있는 존나 멋진 으른이 되었다. 그때처럼 우린 또 그날을 기다린다.








한 달 사이에 고양이 둘과 물고기 하나, 그리고 나의 할머니를 잃었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그와 나 단둘만이 기억하는 추억들을 이제는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기억한다는 것을 뜻한다. 바로 그 점이 가장 나를 슬프게 한다. 아무리 설명해도 나 자신 말고는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 기억을 가진 우리들은 어쩌면 다 미쳤는지도 모르지. 증언을 해 줄 증인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으니까. 통속의 뇌라면, 임의로 저장된 거짓 데이터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있었다는 것을 내가 기억하기에 그들은 분명히 있었다. 그와 나 사이의 새로운 기억은 안타깝게도 더 이상 생기지 않겠지만 누적된 기억만으로도, 나 혼자만으로도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내가 살아있는 한은 그들은 확실히 있었다. 당신들이 나와의 일들을 기억하는 한 나도 존재 한다. 나는 존재한다. 그럴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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