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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Jun 13. 2023

택배 아저씨

20230613


가게에서 돌보는 초롬이가 꼬리를 다쳐 와서 동물병원에 약 타러 가려고 집에서 나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는데, 내가 사는 5층에 다 올라온 엘리베이터에서 택배아저씨가 박스 하나를 갖고 내리셨다. 이 건물은 5층이 꼭대기라, 저 박스를 아무개의 집 앞에 내려놓으면 바로 다시 내려가실 테니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잠깐 기다리고 있었다. 아저씨는 '고마워요'라고 하며 얼른 타셨고, 나는 아저씨 손에 다른 택배가 없는 걸 보고는 이 건물에 오늘 온 건 저것 뿐이구나 싶어서 '1층 가시는 거 맞죠?'라고 확인 후 1층을 눌렀다.


문이 닫히는 사이 벌써부터 더워진 날씨에 아저씨는 잠깐 거울을 보며 땀을 닦으셨다. 그러다 갑자기 쎄한 표정으로 반사된 나를 보면서 '저.. 방금 5층이었던 거 맞죠...?'하고 물었다. 정신없이 배송하시다보니 층도 안누르고 탔다가 내가 누른 층에서 그냥 내리셨었나보다. '네, 맞아요!'라고 대답하는데 그 상황이 웃겨서 웃었다기 보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그냥 웃으면서 대답하고 싶더라. 안심시켜드리고 싶었던 것 같다. 확신의 대답을 들은 아저씨도 웃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 문이 열렸을 때, 우리는 서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듯 먼저 내리시라는 손짓을 한동안 번갈아 하다가 이분이 나보다 많이 바쁘신 것 같으니 실랑이를 관두고, 말하자면 양보를 양보해서 내가 먼저 내렸다. 앞장서 나가면서 건물 현관문을 잡아드리며 '고생하세요'라고 했더니 아저씨도 '수고하세요'라고 해주셨다. 아마도 인삿말이 헛나오신 모양이지만 그것도 그 말이 본인의 입에 습관처럼 배어있는 말이라 그렇게 바로 튀어나오는 걸 거다. 내 사소한 친절도 친절한 사람만이 친절로 기억해 준다.


만약 아까 나 혼자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었다면, 아저씨는 분명 내려갔다 다시 올라올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느니 걸어 내려가셨을 테고 숨 고를 여유도 없이 괜히 마음이 급했을 거다. 아무생각 없이 내려왔을 나는 바로 택시를 잡아 탔을 거고, 그럼 이런 귀여운 에피소드도 없었겠지. 잠깐의 배려로 낯선 서로의 눈을 보며 웃었으니 그것만으로 윈윈이다. 덕분에 여기 이렇게 몇 글자 남기게 됐음에, 언젠가 나의 택배도 가져다 주셨을 것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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