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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Jun 21. 2023

응ㅋ 니 얼굴

20230621


남자친구를 사귈 때마다 나에게 ‘제발 얼굴 좀 보라’며 꼽주던 친구가 있었다. 그 정도로 외모를 보지 않는다. 이제 와 평가해 보면 그 친구도 그렇게 대단한 미남을 만났던 건 아니었다. 걔는 보편적인 남자들이 호불호 없이 좋아할 만한 긴 생머리와 청순한 스타일을 가져 인기가 많던 여자애였는데, 자기도 그걸 굉장히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막상 본인도 꼭 그렇게 절대적으로 잘생겼다기보다는 또래의 여자들이 선호할 만한 인기 좋은 타입의 남자를 골라 만났었다. 서로 데리고 다니며 적당히 자존심을 세워줄 만한 그런.

그 친구가 만나던 남자 중 한 놈은 정말로 상대의 얼굴만을 보는 놈이었다. 본인 입으로, 얼굴이 예쁘지 않으면 여자로도 안 보인다고 했다. 그 말이 꽤나 충격적이었지만 진심이었더라. 그는 후에 걔보다 더 예쁜 여자와 결혼했고, 만족스러운 결혼생활을 하는 것 같다. 나에게 얼굴 좀 보라고 했던 애는 결국 얼굴 보고서 얼굴 보는 놈을 만났다가 얼굴 때문에 차인 꼴이 됐지 뭐람.


나는 썩 예쁘지도 않지만 그렇게 못나지도 않았다. 뭐 어쩌다 가끔씩은 경우에 따라 예뻐 보일 수도 있는, 콩깍지 비슷한 게 씌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진 않은 정도의 얼굴이고, 지금처럼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오늘따라 유난히 더 못생겨 보이기도 하는 그런 평범한 얼굴이다. 나는 이런 내가 어중간하게 생겨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 왔다. 얼굴이 예쁘면 개나 소나 다 들이댄다. 그리고 그런 놈들은 상대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외모만 보고 덤벼들 뿐 내면을 보고 좋아했을 가능성이 현저히 낮으므로 어차피 빈 껍데기다. 내가 아무리 예뻤다고 한들 주어진 인생은 똑같이 짧으니 그런 놈들에게까지 시간 낭비하기는 싫다. 예쁜 애들은 얼마나 인생이 피곤할까. 예쁜데다 똑똑하고 통찰력까지 갖추지 않고서야 잘못된 만남의 반복일 거다. 그런 점에서 내 어중간한 얼굴은 그런 영양가 없는 놈들을 적당히 걸러주는 든든한 필터인 셈이다. 아주 자세히 보아야만 그나마 예쁜 구석이 보일 듯 말 듯 한 이런 나를 누군가가 자세히 보고 싶어 해 준다면, 그 사람은 적어도 분명 나의 내면에 끌린 걸 테다.




체구가 굉장히 마른 친구가 있었다. 나보다 잘 먹는데도 평생을 말랐으니 체질이 워낙 그런가 보다. 걱정 없이 마음껏 먹어도 마른 몸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당연히 다들 부러워했었다. 녀석은 육식동물 수준으로 고기를 정말 좋아했었다. 한번은 고기부페를 같이 갔었는데,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곤 했던 일본의 푸드파이터처럼 먹어댔다.

여럿이 만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약속 장소에 도착하며 대뜸 자기 앞에서 계단을 오르던 여자 욕을 했다. “다리통도 코끼리만큼 존나게 굵은 년이 주제도 모르고 짧은 치마를 입고 올라가서 밑에서 보는데 진짜 토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저기 저기, 저쪽에 가고 있는 쟤라고, 미친년 옷 입은 꼬라지 좀 보라며. 그날 같이 만났던 친구들 중에는 그 ‘코끼리녀’ 보다 체급이 조금 더 헤비한 녀석도 있었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그 친구의 눈치를 살폈다. 주변의 그런 눈치가 의식이 돼서였는지, 헤비급 친구는 ‘너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냐’며 웃어넘기려고 했다. (농담 반, 진담 반이었을 거다.) 그러자 페더급 녀석은 ‘야, 너는 저런 옷 안 입잖아! 쟤는 완전 민폐라고!’라고 대답했다. 나머지 친구들은 재빨리 다른 말로 화제를 돌렸지만 나는 그 말을 들은 헤비급 친구의 씁쓸했던 표정을 봤고,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 못한 따끔한 한마디가 아직도 아쉽다. 아마 나도 나름의 외모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어서였을까. 나에게 한 말이 아닌데도 짧은 치마를 입을 때마다 여전히 생각나는 걸 보면, 그 독설이 은연중에 나에게도 상처가 됐었나 보다.

마른 너의 몸이 네 피나는 노력으로 꾸준히 가꾸어진 결과물이라면, (정말 그렇다고 한다면 저따위의 말을 감히 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저런 식의 비난을 내뱉는 너의 입장에 대해 이해해보려고는 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아는 현실에서의 너는 헤비급 친구보다도 훨씬 더 게으른 사람이었고, 타고나길 그렇게 태어났으니 자신의 체형에 감사할 줄도 몰랐다. 네 몸이, 네 생각이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우리에게 그런 말을 할 권리는 없었다. 부디 본인의 무례함을 솔직함이라 착각하지 좀 말았으면 좋겠다. 사실상 실속을 따지자면, 비실거리는 네 그 몸이 훨씬 더 연비가 구린 거 아니겠냐. 그렇게 고기만 존나게 쳐먹는 데도 영양분이 몸속에 남지를 않고 다 똥으로 나오는 거니까. (똥이 입으로도 나오는 것 같다.) 그러면서 남들이 너에게 ‘뼈 밖에 없다’고, ‘없어 보이니까 잘 좀 챙겨 먹으라’고 하는 말에는 매번 발끈했다는 게 웃기지도 않는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개고기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여름만 되면 개고기 개고기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취향을 늘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네가 우리 집에 고양이 보러 오고 싶다고 할 때마다 소름이 끼치고 위선적인 그런 모순들에 질릴 대로 질렸다. 물론 현재는 손절했다. 결혼해서 애 낳았다던데 언젠가 한글을 가르칠 때가 오면 가장 먼저 ‘이중잣대’부터 가르치길 바란다.




어제는 약속이 생겨 퇴근 후 잠깐 카페를 다녀온 사이, 올해 초에 이 근처 위치한 직장을 그만두어 한동안 방문이 없었던 단골손님이 오랜만에 와서 인사하고 갔다고 들었다. 살집이 좀 있는 편이던 이십 대 중반쯤의 여자였다. 못 본 새 20kg이나 감량했더라며, 아주 예뻐져서 왔더라고 이모님이 흥분하며 말씀하셨다. 내 눈엔 원래도 예쁘고 참 착했었다. 이른 아침에 출근하면서도 늘 오렌지색의 눈 화장을 상큼하게 하고 다녔던 부지런한 멋쟁이였다. 명절에도 가게를 지키는 나에게 떡국도 못 먹고 일하느냐며 집에서 끓인 떡국 한 그릇을 갖다줬었다. 콤플렉스였다는 그녀의 체형이 눈에 들어왔던 건, 갑자기 다이어트를 한다며 샐러드를 사 가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한동안 직장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로 신경정신과를 다니게 됐다고 들었었는데 그 후 살을 빼기 위해 일을 몇 달 쉴 거라 했었으니 그 상사라는 놈이 외모를 어지간히도 지적했던 모양이더라. 복귀는 언제 하느냐고 묻는 가게 이모님 말씀에, 다이어트 좀 더 하고 눈이랑 코랑 하고서 가을쯤 다시 다닐 거라고 대답했다고 했다. 살을 빼고 나니까 외모에 더 욕심이 생긴 모양이라고. 빡쎈 다이어트로 헬쓱해졌을 그녀를 보고 ‘너무 잘 했다’ ‘많이 예뻐졌다’며 격한 리액션을 하셨을 이모님을 상상하니 마음 한구석이 담배 세 개비를 연달아 피운 듯 답답했다. 체중 감량과 성형이라는 수단으로 낮았던 자존감이 높아진다면야 본인에게는 분명 긍정적인 변화겠지만, 한편으로는 짠했다.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만한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주변 상가에 공사가 있으면 그 기간만 짧게 며칠 일하고 가는 현장직 아저씨들이 우리 가게에 들르곤 하는데, 그 당시의 팀원 중 머머리 아저씨는 굉장히 무례한 사람이었다. 술을 사고는 가게 안에서 먹으려 해서 안 된다고 하니(편의점 내 취식은 가능하지만 음주는 불법이다) 밖에 테이블을 펴 달래서 그것도 안 된다고 했다. 사실 뭐 꼭 안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 가게니까 내 맘이다.


“여기는 시발 뭐가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게 많아? 손님한테 인상 팍 쓰고! 얼굴도 못생긴 게!”


이렇게 타인으로부터 대놓고 ‘얼굴이 못생겼다’는 말을 직접 듣는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일행이던 다른 아저씨들이 머머리를 말리며 ‘아가씨, 우리가 대신 미안해요’라고 사과했지만, 도무지 타격감이 1도 없어 화도 안 나고 오히려 코웃음이 났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렇게 뚱뚱하고 털 많고 땀 냄새 개쩌는 누가 봐도 여기서 제일 못생긴 머머리 새끼가, 나를 못생겼다고 생각한다?

Hmm, interesting.


나는 그 당시 나보다 못난 사람이 저런 얘길 해서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 건 줄 알았다.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 같은 말을 했다면 어쩌면 정말 상처가 됐을 수도 있을 거라고. 근데 다시 생각해 보면, 아무리 눈이 부시게 멋진 사람이라도 저런 행동과 말을 했다면, 한순간에 인류 최악으로 못생겨 보일 것 같다. 내가 아무리 못생겼다 해도 그런 님보다는 내가 당연히 더 존잘이지ㅋ 미안하지만, 내가 못나지 않은 건 내가 너무 명확히 잘 알고 있다. 나는 적당히 대충 생긴 내가 좋고, 연애할 때나 친구를 사귈 때나 항상 내면을 보는 내가 좋다. 과거의 내 남자친구들은 그저 우연히도 못생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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