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끝으로 여는 작은 세상
쓰는 자만이 옳다. 쓰는 자만이 세다.
쓰는 자만이 사는 것이다.
술 마시고 써라, 씹하고 나서 써라,
두 손 잘리면 남은 팔뚝으로 써라.
내시 처선,
연산군이 마구 잘라도 할 소리하며 죽어 갔다.
목 잘리면 몸통으로 굴러가며 써라.
문학은 온몸의 각 부위가 다 하는 것이다.
- 1976. 4.4 고은 시인의 일기 中 -
- 몸통으로 굴러가며 쓰기라...
아직 내게는 남은 게 많은데도,
어째서 쓸 수가 없는 거냐고.
옆에 딱 붙어있는 살들로 썼으면,
글도 넘치고 넘치고 넘쳤을 텐데.
묻고 싶다.
왜, 이런 거에요..?
글을 쓴다는 건, 내게 그런 일이다.
쓰지 않아도 괴롭고
쓰는 중에도 괴롭고.
써둔 걸 보는 것도 괴롭고
남의 글을 읽는 것도 괴롭고.
그런데도 계속 펜을 드는 이유는.
이런 시덥잖은 글이라도 써야,
쓰는 척이라도 해야,
써진 글이 있어야,
살아있구나 숨이 쉬어지니까.
재능이 부족하고,
창의력이 없고,
문장력도 그저그렇고.
그런 모든 단점들은 엿이나 바꿔먹고,
될때까지 쓰는 거.
기약없이 무식하게 앉아있는 거.
온몸의 각 부위가 다 하는 일이라는,
그 말을 뼈가 시리게 느낄 때까지.
지금은 살갗이 아린 정도니까,
아직은 투정부릴 자격이 없는 거라고.
그래서 그저 오늘도 나는,
이렇게 앉아서 끄적이고 있는 거라고.
글을 쓴다는 건, 내게 그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