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의 가을,

손 끝으로 여는 작은 세상

by 임그린


계절의 변화가 빠르다고 느껴진 지가 꽤 됐다. 사실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바쁘게 돌아가는 시계추를 바라볼 정신도 없이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훅 끼쳐오는 서늘한 기운에 하늘을 보면, 높아진 하늘 아래로 보이는 붉어진 나뭇잎들. 한 눈에 들어오는 극명한 색의 대비에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가 슬퍼지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나 싶다. 계절이 오기 전에 언제 오나 기다리곤 했는데 이젠, 다 내려 앉아 몸이 먼저 느껴야 눈에 들어오다니.

올해 푸른 봄 날을 보며 그 풍성함에 놀랐던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동그라미 안에서 시계 바늘은 몇 바퀴를 돌고, 푸른 나뭇잎은 붉은 빛으로 옷을 바꿔 입고, 포근한 공기도 떠나 서늘함이 나를 감싸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그대로다. 같은 자리, 같은 키, 같은 마음, 같은 혼란과 슬픔, 치열함과 외로움. 나는 그 모습 그대로 서 있다가 힘들면 앉아 있다가, 기쁘면 잠시 웃다가 슬퍼지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렇게 같은 모습으로 남겨졌다.

가끔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좀 더 찬란했던 20대엔 무얼 했을까,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무언가 행동을 취할 수 있었을 텐데. 와 같은 자책과 후회. 그런 생각들이 날 감싸면 쉽게 지친다. 의욕도 사라지고 발걸음도 무거워지고 잠만 쏟아진다.
이 세상에서 십 년을 세 번이나 겪고도 몇 년을 더 버텨냈다. 꽃밭에서 나비를 찾아 하하호호 웃으며 살아왔던 것도 아니고 맨발로 진흙을 밟고 있었다. 발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찜찜하고 더러운 것들을 보면서도 바로 닥칠 가시밭길을 다시 밟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길을 다 헤쳐 이 자리에 서 있다고 자부하며, 난 내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씩씩하고 단단하며 튼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나는 어리고 여리고 약하다. 주저앉아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다.

더 높아진 하늘과 더 붉어진 나뭇잎의 아름다운 조화를 보며 한 없이 행복해만 하기엔 내 나이에 닥친 가을은 너무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