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좋아해' 란,

손 끝으로 여는 작은 세상

by 임그린


널 좋아해


사랑해, 보다 설레는 말.

더 순수하고 깨끗하고, 미소가 지어지는 말.

파란 하늘 아래서 까르르 웃는,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하면 어울릴 만한 말.


사랑한단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좋아한다는 말과는 점점 멀어졌다. 사실 난 사랑해,의 정의를 모르는데도 말이다.


*


달님의 장난으로 내 옆모습이 예뻐 보였다고,

작은 쪽지에


널 좋아해


수줍은 글을 담아 주던 그 사람을 기억한다. 하얀 달빛이 쏟아지던 그 겨울 길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도 어렸고 그도 풋풋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집에 갈 때까지 참지 못하고 손 안에서 그새 꼬깃해진 쪽지를 살며시 펴 보며 얼마나 가슴이 콩콩댔는지. 그 떨림을 기억한다.

바라보며 하하 웃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했다, 겨울의 소복소복 내린 눈이 포근하게 느껴질 만큼.

같이 길을 걷다가 손이 슬쩍 부딪히면 서로 어쩔 줄 몰라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닿을 듯 말듯한 우리 사이 거리가 순수해서, 그 곁으로 햇살도 부서져 내리고 바람도 솔솔 불고 눈도 나렸더랬다.


눈이 펑펑 내리던 날,

몇십 년 만에 이토록 많은 눈이 내렸다고 뉴스에서 떠들어 대던 해, 그 날 손이 시려 호호 불면서도 그와 나의 손은 만나지 못했다. 심장소리가 너무 크고, 두 볼이 너무 바개서 망설이다가 망설이다가 웃기만 했다.


백일이 되던 날,

시리던 내 손과 따뜻한 그의 손이 인사를 했다.

널 좋아해, 하면서. 그 날도 키가 다른 우리 머리로 떨어지던 달님은 하얗고 곱기만 했다. 수줍어 숨고 싶은 얼굴이 고와 보일만큼 아름답게 내렸다.


*


나의 첫사랑은 하얀 달빛과 하얀 눈이 내려 마음에 쌓이던 아름다운 날들의 기억이다. 수줍고 설렌 내 마음의 기억이다.

널 좋아해


그 고운 단어를, 가장 맑게 말하고 가장 수줍게 들었던 그때의 기억.

좋아해, 는 나의 아름답고 천진한 그 해 그 겨울의 기억 한 조각이다.

잃어버리면 날 완성할 수 없는 순수한 날들의 보석 한 조각.



매거진의 이전글겸손, 참 탐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