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끝으로 여는 작은 세상
정류장에 앉아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거나, 버스를 타고 어딘가를 가거나. 길을 걷거나, 횡단보도에 서 있거나.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창밖을 보거나, 아기자기한 팬시점을 구경하거나. 초록빛 산길을 걸으며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거나, 단풍색이 예쁜 나무 아래서 하늘을 바라보거나...
혼자 집에서 있는 시간이 아니면, 종종 사람들을 관찰하곤 한다. 언제 어느 때이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내 옆을,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있을 때가 있다. 다니면서 길을 보거나 건물 등을 보면 좋을 텐데, 항상 난 그런 것보다 사람이 먼저이다. 길눈이 어두운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 습관이 잘 고쳐지지 않는다. 환경이나 간판 등을 보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큼 흥미를 끄는 건 드물다. 습관을 고치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말이다.
버스를 한 번만 갈아타면 금방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갈 때, 여기저기 뱅뱅 돌아 오래 걸리는 버스를 일부러 타기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더 일찍 일어나야 하고, 더 부지런히 준비해야 하고, 평소보다 더 일찍 집에서 나와야 하지만 그런 수고로움을 감수하면서도 매번 하는 일이다. 뭐하러 그 고생을 하냐고, 한 번만 갈아타고 가면 더 빠르다고들 한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려 잠시 걷고 다른 버스를 타야 하는 일련의 과정이 귀찮거나 번거로워서가 아니다. 한참을 돌아가야만 하는 느린 버스를 타고 가는 건, 일부러 내가 택한 길이다. 사실 번거로운 과정 중에도 사람들을 만나 관찰하는 게 가능하지만, 버스에 타서 가만 앉아 있다 보면 좀 더 여유를 갖고 바라볼 수 있다.
손에 한가득 시장을 본 가방을 들고 버스에 타느라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는 아주머니, 크고 기다란 검정색 우산을 들고 팔짱을 끼고 있는 아저씨, 교복을 꽉 줄여 살짝 답답해 보이는 아이들. 운전을 하면서 연신 재채기를 하는 운전사, 그 뒤로 새침하게 서 있는 아가씨. 모자를 눌러쓰고 창밖에 시선을 둔 채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대학생, 서로 머리를 맞대고 졸고 있는 연인들. 내 옆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주머니까지. 버스 안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앉거나 서 있다.
표정도 각양각색이다. 행동도, 향기도. 더해서 사연도 다 다를 테지. 가끔은 그들의 사연이 궁금하기도 하다. 그들과 나, 우리 모두는 이런 저런 사연을 안에 담아둔 채로 스쳐가는 거겠지. 그런 다양한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게 좋다. 어떤 사연이 있길래 저렇게 미간을 찌푸리고 있을까, 무엇이 저리 행복해 웃음소리를 흘리며 다니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게 좋다, 그들의 삶을 상상해 보는 게 좋다. 전혀 짐작도 할 수 없을 테지만 말이다.
가끔은, 그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보고 싶다. 마음으로, 기꺼이 하나부터 열까지 들어보고 싶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에 생채기 내지 않고 한 번 안아주고 싶다. 이미 상처 입은 마음이라면 아무 말 없이 다독여 주고도 싶다.
사실... 이기심과 오해로 얼룩져 떠나보낸 내 사람들의 사연을, 다시 한 번 들어보고 싶은 거다. 한 번만 내 마음 말고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 볼 여유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언제나 그래왔듯 내 마음이 먼저였다, 내 사연이 더 급했다. '내가 지금 이렇다고!' 소리쳤지, '나는 이래,'하는 그들의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저 한 번 손을 내밀어 토닥토닥 '그랬구나' 해주었으면 됐을 것을...
입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