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엔 이런 맛이!

손 끝으로 여는 작은 세상

by 임그린


새벽이다. 시간을 보고 싶지만 두 눈이 떠지지 않아 꿈벅거린다. 한쪽 눈을 겨우 뜬다. 창밖 세상은 아직 퍼렇다. "꼭 이렇게 일찍 가야 해?" 투덜대 보지만,

낚시하기 좋은 물때라는 게 있어서 지금 출발해야 한단다. 휴, 한 번 크게 숨을 내쉬고 정신을 차린다. 피곤하면 안 가면 되는 것을... 굳이 따라가겠다고 주섬주섬 물티슈, 화장지 등을 챙기는 내 모습도 우습다. 가끔, 낚시하러 가는 날 새벽에 보게 되는 풍경이다.

낚시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사실, 낚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그저 '낚싯대를 던져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일' 정도로만 알 뿐. 그렇게 '아무 데나 낚싯대를 던져 무언가(꼭 물고기만 올라오는 건 아니더라) 건져 올리는 일' 따위를 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버리고(?) 피곤한 눈으로 따라나서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작년이었나. 밤늦게 군산 바다를 찾은 적이 있다. 하늘이 예쁜 날을 골라, 옆으로 펼쳐진 바다를 보며 짠 내를 맡으며 새만금 방조제를 달리는 드라이브, 따위 말고. 어두컴컴 하늘은 시커멓고, 그보다도 더 까만 바다를 보며 추워서인지 두려워서인지 몸을 떨면서 달린 적이 있다. 도착한 새만금 방조제에는 깊은 밤 따윈 잊고 이미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먼저 와서 무얼 잡았나 눈길은 그쪽으로 향하면서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징그러운 지렁이가 불쌍하다며 울먹울먹 바늘에 끼우면서도 이 '불쌍하고도 징그러운' 지렁이를 먹고 물고기가 잡히길 바라는 마음이 커진다.

잡아먹을 듯 검은 입을 벌리고 있는 바다와 나의 거리는 겨우 60cm 정도. 발끝으로 가끔 토독톡 올라오는 물방울. 끝도 보이지 않게 펼쳐진 시커먼 바다를 보면서도 돌아서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한두어 시간 낚싯대와 씨름을 하던 중 손끝을 툭툭 치는 힘을 느꼈다. '어? 뭐지?' 생각하기도 전에 내 손이 먼저 반응을 했다. 힘 있게 잡아채진 못했지만 묵직한 무언가가 매달린 느낌. 그대로 릴을 감아 올리면서 느꼈던 심장의 두근거림이란. 어느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것이 그 시간에 머문 상태에서 나 혼자만 움직이는 듯한 착각. 가늘지만 단단한 릴에, 작지만 날카로운 바늘에 매달려 내게 오는 녀석은 손바닥보다 조금 더 길쭉한 고등어였다. 어찌나 팔팔하던지 다른 녀석들을 잡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땅에서도 한참을 펄떡거리는 바람에 옷이며 얼굴에 비릿한 바다 향기가 묻기도 했다. 고등어란 녀석, 성질이 급해서 그러다 팩 뒤집어져 버린다더니 정말 그랬다. 두근대는 경험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그곳을 찾았다. 몇 마리를 낚은 기억 때문에 은근 기대를 했다. 하지만 더 오랜 시간 바다와 만났지만 한 마리도 잡을 수 없었다. 대신, 시간을 얻었다. 더 어둡고 더 강한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바다는 삼킬 것처럼 발아래로 달려들었고, 머리며 옷자락은 날 어디로 끌고 갈 것처럼 흩날렸다. 바람 소리, 바다 소리 밖엔 들을 수 없었다. 아무도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원래 낚시할 때는 떠들면 안 되는 거라지만 말하는 걸 좋아하는 나까지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입을 여는 대신, 옆 사람의 행동을 듣기 시작했다. 어떻게 미끼를 끼고 어떻게 낚싯대를 잡아, 어떻게 던져 기다리는지. 어딜 보고 있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바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 얼마나 차고 얼마나 단단한지. 파도를 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일어서서 어떻게 부서지는지. 부서진 방울들은 또 어떻게 날아가는지. 그 시간 안에 우리는 모두 갇혀있었다. 갇혀있는 동안 수많은 주변의 사람, 사물과 일대일로 만나 마음으로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무언가를 낚아챌 때만큼의 두근거림은 없었지만 편안했다. 그리고 달콤했다.

낚시하면서 고기를 건져 올리는 건, 가끔 내 차례로 돌아오는 케이크 위의 딸기 한 조각 같은 맛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잡지 못하더라도 마음을 열고 낚시를 하는 그 모든 시간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케이크 그 자체이다. 달달한 케이크도 맛보고 싶고 가끔 상큼한 딸기도 먹고 싶은 그런 날, 나는 낚시를 하러 졸린 눈을 비벼대며 떠난다.

시간이 흐르면 숨어있는 더 많은 맛(?)에 눈뜰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그때까진 낚시 초보로 달콤한 케이크와 딸기 한 조각, 질릴 때까지 먹어볼 생각이다.


냠냠, 아이 맛있어!



매거진의 이전글난, 그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