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

손 끝으로 여는 작은 세상

by 임그린


나는,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혼자 우두커니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도, 기약 없이 바라보는 것도, 전화 한 통 없는 사람을 참아내는 것도.
기다림이라는 이름하에 행해지는 모든 것을 잘 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랑, 하면 그 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고난과 역경, 기다림이 있었지만 이겨내고 사랑했다, 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꽃향기가 봄바람 타고 넘실대는 언덕을, 웃으며 달리는 것처럼 보드라운 사랑도 물론, 있다. 하지만 쓰고도 괴로워, 매일 밤 뜨거운 눈물 흘리다 보니 퉁퉁 부운 눈으로 아침을 보아야 하는 사랑도 많다.

해서, 후자의 사랑을 위해서라면 기다림 따위야 언제든 할 수 있어야 하고. 해야 하는 거라고. 그 정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오만, 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숱한 사랑과 이별을 겪으면서 변해버린 걸까.


나는 이제,
바보처럼 아무 말도 없이 기다리는 게 그 전처럼 쉽지가 않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기다림이 아름다운 행위라는 것과는 별개로, 버텨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보고 싶은 사람과 잠시만 연락이 되지 않아도, 그 일 분 일 초가 얼마나 불안하고,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머릿속에서 터지는 온갖 상상들. 그가 주인공이 되어 벌어지는 소설들. 내가, 이렇게 창의적으로 상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얼마나 풍성한(?)이야기를 만들어 내는지, 쯧쯧.


기다림에 질식해 가는 마음이 어떤 건지 이제, 알게 되었다. 정말 말 그대로 질식. 헉헉 숨을 몰아 쉬어 보지만 초조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시계를 바라보는 횟수가 늘어나고 간격은 점점 줄어든다.

결국에는 11자리 숫자를 휴대폰에 찍어두고 이제나 저제나...


그건 다시 말해

그를,

사랑한단 의미도 된다.


사랑하면 약자가 된다. 사랑하는 그를 두고 기다릴 수 있다든지, 참아낼 수 있다든지... 그런 건 다, 오만일 뿐.


오만. 건방진 거지, 감히 사랑 앞에서...



매거진의 이전글나는요, 사랑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