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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쁨을 자랑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회복이 실력이다

병이 나서야 쉬지 않기 위해, 오늘부터 나를 돌보는 법

누군가와 오랜만에 만나거나 통화할 때면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대표님 요새 바쁘시죠?"
특히 사업을 하다 보면 이 말이 일종의 칭찬처럼 들릴 때가 있다. 바쁜 상태 자체가 '잘 나가고 있다'는 상징처럼 여겨지고, 스케줄이 빽빽하다는 사실을 미덕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 나 역시 한동안 그렇게 살았다. 바쁨은 곧 능력이라고, 숨 돌릴 틈 없이 움직이는 내가 대단한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몸의 회복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바쁨을 견디는 힘은 젊을 때나 빛나지, 나이가 들수록 바쁨은 리스크다. 바쁘다는 말 뒤에는 "지금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있다"는 뜻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믿는다. 바쁨을 자랑하던 시절을 지나면, 회복이 곧 실력이 된다.


취업 전에는 취준 때문에 바쁘고, 입사하면 업무 때문에 바쁘고, 이직을 준비하면 또 바쁘다. 창업을 하면 말할 것도 없다. 인생의 어느 시기도 여유롭지 않다. 그래서 의미 있는 휴식은 자연스럽게 오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챙겨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몸이 고장 났을 때, 혹은 일거리가 사라졌을 때에야 비로소 쉬게 된다. 그때의 쉼은 선택이 아니라 강제 종료다.


나는 이 사실을 꽤 아픈 방식으로 배웠다. 당시 첫째가 만 3살, 둘째가 갓 태어난 상황에서 아들 둘을 독박 육아하며 한대협 일과 사업을 동시에 했다. 늘 잠이 부족했고 아이들이 잠든 사이에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 시기를 어떻게 버텼는지 지금도 아찔하다. 어느 날 교회에서 한 권사님이 내게 말을 걸었는데,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지나갔다고 섭섭해하신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그분의 말을 들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나는 그때 지독한 수면부족에 시달리며 멍한 상태로 다니고 있었다. 누가 말을 걸어도 들리지 않는, 말 그대로 방전된 상태였던 것이다.


그 피로는 결국 병이 되어 돌아왔다. 갑상선 우측에 있던 혹이 커져 절제 수술을 받았다. 1인실에서 4박 5일 동안 회복했는데, 몸은 아팠지만 마음만은 이상하리만큼 편안했다. 누가 부르지 않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오롯이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는 시간. 병원에 누워서야 비로소 '쉰다'는 사실이 씁쓸했고, 동시에 그 시간이 꿀처럼 달았다. 병이 나서야 쉬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기준을 바꿨다. 수면 7시간은 가능하면 하는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하는 것이 되었다. 물론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을 때는 6시간밖에 자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끝나면 반드시 원래의 리듬으로 돌아온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일이 많아도 무조건 운동을 챙기려 했지만, 지금은 수면이 부족한 날엔 운동을 줄이고 회복에 집중한다. 식사는 한 끼라도 단백질을 챙겨 몸에 힘을 만들어준다.


이제는 안다. 잘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잘 회복하는 사람이 오래간다. 회복을 뒤로 미루는 사람은 결국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몸은 언젠가 반드시 신호를 보내고, 우리는 그 신호를 무시할수록 더 강력한 방식으로 경고를 받는다.


일은 계속된다. 바쁨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는 선택지는 분명하다.
바쁨 속에서도 피로를 풀어주는 시간을 챙겨가며 일하는 것.
몸이 아파서 강제로 쉬게 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회복하는 삶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

바쁨을 자랑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는 회복이 실력이고, 회복이 곧 생존이다.


stephan-liedtke--xrpz_mZ6tc-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 Stephan Liedt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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