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초등학교 4학년 10살의 내게는 나쁜 일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나는 세월이 많이 흘러 어른이 될 때까지도 그 상처를 안고 산다. 그중에 하나... 오늘 떠올랐다.
어느 날 하굣길에 버스에서 내리는데 마지막 발판에서 발을 떼고 내리는 순간 버스가 출발했고, 나는 바닥에 굴러 떨어져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각종 찰과상과 타박상에 쪽팔림까지 어린아이가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충격이었으나, 버스기사는 “너 괜찮냐? 조심하지.” 그러고는 이내 가버렸다. 너나 조심하세요. 지금쯤 살아있기는 할까. 그때의 나는 절뚝절뚝 걸으며 내가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넘어진 거나 왜 그게 나였냐는 거나....
지금 같아서는 그 버스기사는 뺑소니로 처벌받아야 할 것이다. 온몸에 생채기를 얻은 10살 여자 아이는 집에 돌아가서도 그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왜냐면 너무 미안해서. 바보같이 다친 게 엄마에게 말하기에는 걱정을 끼쳐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엄마는 병중이고 아버지는 네 아이들과 살림하느라 세세히 살펴볼 겨를이 없을지도. 마침 집에 가는 길목에서 오빠를 만났다. 눈물이 나왔다. 오빠는 “너 왜 그러냐?”하고 한 마디 뱉었다. 나는 아마 사실대로 말한 것 같다. 그때 오빠는 침묵했고 그 일은 그냥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우리 집 분위기 왜 그랬을까.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문득문득 생각하고 있다. 그 버스기사는 어떻게 생긴 사람일까. 오빠는 왜 나의 위로자가 되어주지 않았을까. 나는 왜 혼자 겪어냈을까. 그때 누구 하고라도 그 일을 말할 수 있는 아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훌훌 털고 지금도 그랬나 싶을 정도로 기억도 못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연기력이 뛰어나 다친 것을 들키지 않은 나에게 아카데미상이라도 지금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종종 살면서 그 비슷한 데자뷔에서 눈물을 흘리곤 한다. 참 많이 아팠겠다. 아이야, 아직도 아프구나. 저런! 내가 약을 발라 줄게. 혼자 일어서다니 의지가 정말 강하구나. 치마가 벌렁 뒤집혔는데 그게 너무 부끄러웠구나. 토닥토닥.
---2022년 오늘 아침.
아까 아침부터 세탁을 하는데 계속해서 세탁기에서 이물질이 나왔다. 여러 번을 빨고 또 빨아서 점퍼의 솔기가 다 뜯어졌다. 그런데도 허연 이물질은 산산이 조각이 나서 아주 작은 미세 플라스틱처럼
점점이 옷에 붙어 있다. 밖에 나가야 하는데 계획에도 없는 세탁조 청소를 후다닥 하게 됐다. 새로 바꾼 세제가 문제였을까.
세탁조 청소를 끝낸 세탁기에 다시 아까 건져놓은 빨래를 넣었다. 한 번 더 세탁을 했지만 더 많은 이물질이 다닥다닥 붙어서 나왔다. 그러는 동안 부러진 건조대에 긁혀 다리에 피가 흐른
다. 젖은 바지를 벗은 채로 물기와 피가 범벅이 되어 흐르는 동안 약서랍을 여니 밴드가 어디
에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상태로 쭈그리고 앉아 서랍 정리를 하고 얼마 후 드디어 약을 발
랐다.
(일단 외출하고 돌아와 건져 두었던 빨래를 다시 빨았다. 아악~~~~ 미칠 거 같다. )
우리 집에도 오미크론이 찾아왔다. 두 주 전 남편이 확진되어 격리기간을 보냈다. 혼자 방에서 격리하는 거 별거 아니라 생각했는데 별거였다. 며칠 지나 익숙해지긴 했지만 일일이 식판을 삶고 혼자 먹는 반찬에 정성을기울였다. 조금 힘들었지만 하루 세 끼를 챙겨주고 나도 내 업무처리를 하고 아이들 챙기고
뿌듯했다. 당연한 거니까.
그는 드디어 지난 주 격리가 끝나 출근을 했고 다시 주말이 돌아왔다.
평소에도 우리끼리 산책을 하며 대화를 했다. 집에서는 목석같아 말 섞기가 힘들어도 밖에 나오면 좀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진행된다. 서로 일이 없는 주말이면 동네 산 둘레를 산책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게 내게는 참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해서 남편이 시간이 없을 때면 좀 서운하기도 했다.
한동안 칩거하다가 밖에 나오니 이제 좀 살 것 같았지만 남편의 행동이 어딘가 답답했다.
“좀 말 좀 해라.” 아직 봄바람이 차서 내가 지퍼를 올리느라 잠깐 멈춰 선 동안 그는 말없이 저 앞에 쑥 가버린다. 나 혼자 중얼 대다가 저 앞에 가버리고 옆에 없는 사람의 빈 공간에 허기를 느꼈다.
일부러 그랬을까. 다시 마음이 꿈틀댄다. 장난이겠지. 그런 후에도 좀처럼 무시하듯 침묵으로 일관하는 옆 사람이 짜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어딜 가?” 난 이제 트라우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배려심이 없거나 제멋대로인 공감능력 떨어지는 사람이 내 남편이었다.
남편은 무엇하는 사람인가?
잠자리만 같아 하는 사람이라면 난 이제 남편의 존재는 의미가 없다. 삶을 같이 하는 동반자라 여기고 살고 있는데 허공에 짖는 개처럼 쫄랑거리는 나를 느낄 때면 심한 공백감에 속이 쓰리다. 여태껏 왜 그걸 몰랐을까. 이 사람이 이런 멋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걸 오늘 처음 아는 것도 아닌데 불쾌한 감정은 아마 나도 그간의 피로가 감정을 흐리기 때문일 것이다.
일정대로 병문안을 가게 되었다. 과일을 사기 위해 시장에 들렀다. 토요일에도 붐비는 농산물 센터는 차 댈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요리조리 공간을 훑다가 드디어 한 곳을 발견했다. 그런데 옆 차의 뒷바퀴가 주차라인을 깔고 있는 상태였다. 조심조심 밀어 넣었고 제법 성공을 했는데 그만 내가 문제였다.
차에서 내려 카트를 꺼내려 뒤로 가다가 그만, 뒷바퀴만 보다가 주차 방지턱에 걸려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게 좀 세게 넘어져 부상이 생겼다. 신발은 벗겨지고 무릎은 심한 통증에 움직일 수가 없고, 옆구리는 결려서 꼼짝을 못 한다. 두 손은 화단 경계석에 미끄러졌는데 양쪽 동맥라인에 겹진 생채기가 이제 막 피를 토하기 직전이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얼굴이 화단에 심어진 나무 가지에 박혀있다는 것이다. 이마에 몇 군데 생채기가 났고 눈이 긁혀 아슬아슬했다. 나무에 부딪혔는지 곧 이마에 퍼런 멍이 보일 듯했다. 중요한 건 난 일어날 수가 없었다는 것.
그 사람 많은 곳에 폭삭 넘어졌다지만 차와 차 사이에 쓰러진 거라 뭐 많은 구경꾼이 생기진 않았다. 하지만 팔을 쓸 수 없이 힘이 가지 않아 징징 울고 있는 나는 10살 아이 같았다. 아아아아... 그런데 먼저 내린 이 사람은 어디에 간 거지? 거구의 내가 바닥에 쿵 쓰러지는데 몰랐을까. 잠시 후 끌탕을 하며 남편처럼 생긴 노인네가 다가와 바닥과 붙은 내 얼굴 앞에 신발만 보이며 서 있는 것이다. 남편이란 자였다. 그는 그냥 거기 서 있었다. 기가 막히고 쪽 팔려서 어서 일어나고 싶었지만 다리에 힘이 가지 않았다. 손을 들었더니 그가 잡아당겼다. “으아악~~~넌 뭐하니...”나는 화가 났다. 삼풍 백화점 사고 때 허리에 로프만을 감은 채 헬기에 떠올려지던 여인이 생각났다. 벗겨진 신발을 신으려 했으나 발에 껴지지 않자 그 영감이 발 가까이에 가져다 놓는다. 마치 자기 할 일을 다 했다는듯이. 어라. 걸음마할 수 있는지 언제까지 지켜보기나 할 것인지. 그럴수록 비참함과 서글픔이 치솟았다. “좀 잡아주지?” 간신히 땅바닥에서 일어선 나는 쪽팔려서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가 다친 곳을 살펴보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연세에도 다치면 아프구나.
난 정말 그가 다시 차로 돌아와 괜찮냐고 물어볼 줄 알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좀 시간이 지나자 혹시 약국에 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울면서 바지를 걷으려 몸을 숙일 때 사이드 미러에 비친 멀뚱히 서 있는 인간이 보였다. “어랏!” 계속 저기에 서 있는 거야? 이런 젠장. 나는 위로도 필요했던 것이다.!!!
무릎에는 어혈이 뭉쳐있고 쿡쿡 쑤셔오기 시작했다.
더 시간이 흐르고 옆 차의 주인이 오니 밖에 서 있던 그 인간이 뭐라고 한다. 차를 이렇게 주차해 놔서 사람이 넘어졌다나. 아니 이 인간이 넘어진 건 내 탓인데 누굴 더러 뭐라는 거야.
한 참 후 그가 드디어 차에 올랐을 때 나는 어떻게 했을까. 세상에도 없는 쌍욕을 다 해주고 싶었는데 이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야 이 시발놈아.
한바탕의 총성과 대포소리가 들리고 눈물 콧물 쏟고 봄날의 차 안은 점점 열기로 가득해지고 한 여자가 울부짖는 소리가 차 밖으로 들렸는지 슬쩍 보고 가는 이들의 시선이 민망해졌다.
그 와중에 과일을 사 들고 문병을 갔다. 5층 빌라였다. 오른쪽 무릎은 구부려지지 않았기에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타기 시작했다. 긴 증오와 자책의 침묵 속에 활짝 열려있는 5층 입구 앞에 도달했다.
최근에 넘어져 다쳤다는, 그래서 왼쪽 다리를 구부릴 수 없다는 오늘의 연기는 적어도 오스카상감이었다. 방문을 마치고 다시 5층부터 주차장 지하 1층까지, 차곡차곡 오른발 먼저 내리고 왼발 끌어다 붙이고 이러기를 어언 10여 분 하니 차에 도착했다.
집으로 오는 길 내내 차 안은 침묵의 교전이 신념을 더욱 강렬히 부추겼다. 난 이 인간과 살 수 없으리. 정신병원에 상담예약을 좀 해야겠다. 그리고 10년 후에는 이혼을 해야겠다.
염색을 안 하면 흰머리가 성성한 여인이 10살의 자아에게 위로를 던진다. 애고, 많이 아팠겠다. 월요일에는 병원에 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