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년 명절, 나는 손만두 빚기를 결심했다. 시대와의 역행인가. 나는 점점 옛날이 그리워지니 삶의 줄어든 형식을 다시 늘이고 있다. 모든 것이 조촐해지는 요즘, 주변 사람마저 줄어들고 명절은 그저 휴일이 되는 일이 안타깝다는 것은 나의 꼰대적 기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간직하는 어릴 적 감성을 아이들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때 4남매의 명절 준비가 고되지만은 않았다는 기억이 잃어버린 향수를 주기에. 이것도 삶을 지탱하는 힘이라면 힘이다. 그래서 만두 3파전을 벌이니...
마침 아이들도 같이 음식 함께 만드는 거 좋다 했다. 찜솥도 있고 시간도 있고 문제없다!
근데 큰 베보자기가 없었다. 호빵을 찔 때나 냉동 만두를 쪘을 때 이거 없이는 들러붙어 불편한 것이었다. 그래서 마트에 갔더니 베보자기를 찾을 수가 없었다. 있을만한 곳에 돌다가 눈에 띈 것이 홍두깨! 어쩌자고.. 그러나 이번에는 내 향수가 그득한 욕망에 이왕이면 완전체 손만두를 빚자 싶어서 베보자기도 만두피도 사지 않고 홍두깨를 사버렸다.
집에 와 만두 빚기 준비를 했다. 내가 반죽을 하려 했으나 굳이 캡틴이 홍두깨를 가져가 반죽을 했다,
“수제비 반죽처럼 하면 될 거야. 아마도.”
그리고 잠시 후(나중에 고백한 그의 말, 아무리 얇게 하려 해도 안됨) 좀 두껍기는 했으나 그럴듯한 모양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랑 나이가 같은 캡틴도 어릴 적 만두 빚은 기억을 보유했던지 어디선가 스텐 주발을 찾아와 둥그렇게 찍어 놓았다. 아이들도 둘러앉아 만두를 빚으니 좀 화목하고 행복한 것 같아 이미 내게는 만족스러운 명절의 시작이었다. 단 캡틴은 더 이상 홍두깨로 만두피를 만드는 것은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니가 만든 만두소를 다 만들려면 더 이상은 안 돼!! 난 만두피 사러 갈 거야.”
나도 만두소가 이렇게 많아질지 몰랐다. 고기를 잔뜩 넣기도 했지만 양념하는 과정에서 간을 하다가 죽염을 덜컥 쏟아부어 덜어내기는 했지만 완전 짭조름한 이 노릇을 어쩔꼬! 우리의 노고를 망칠 뻔했기에 남겨둔 부추, 두부, 고기, 숙주, 당근은 계속 추가되었던 것이다. 이래저래 만두는 완성되었고 나는 저녁에 만두전골 흉내를 내어보았다.
“엄마, 만두에서 수제비 맛이 나요~”
하는 아이에게 모든 요리의 기본은 다 같은 것임을 주장하는 나는
“그러게, 어떤 모양을 만드느냐에 따라 이름이 결정되는 것 같아. ㅋㅋ”
이렇게 포장하며 그날 저녁 노동의 결실을 치하했다.
연휴 첫날 만두 빚기의 성공으로 이어진 명절 만들기는 다음날 전 부치기로 이어졌다. 오징어 튀김을 먹고 싶다 했으나 지난 추석 모처럼 시도한 튀김의 실패로 해물전을 시도했다. 이도 저도 아닌 오징어 빵을 만들고... 나는 음식에 소질이 없는 걸로 기름기 가득한 하루를 정리했다.
2. 일은 커지기 전에 말려야 한다.
명절 당일, 어머니가 오시고 뭘 이리 많이 차렸냐고 하시는 후한 칭찬에..(사실 많이 차린 게 아니라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씀하신다. ) 조금 우쭐해진 나는 우리들의 정성이 가득 담긴 떡만둣국을 끓여 먹은 후, 이제 다시 만두를 만들자고 했다. 이제안은 순전히 딸아이의 용기 돋음이었다. 만두소가 남았으니 만두를 또 만들자는! 이런 반가운 소리에 다시 만두 빚기가 진행되었다.
어머니도 흔쾌히 승낙하셨고 노련해진 아이들은 집에 있는 쟁반이란 쟁반에 밀가루를 뿌린 밑판 준비부터 척척 해나갔다. 그리고 역시 어머니의 손놀림은 따라갈 수가 없이 척척 만두가 놓였다.
이게 얼마만인가. 오순도순 3 대간의 음식 만들기라니! 늘 가족과 함께 있으면서 가족이란 환상을 지닌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많이 모일 수는 없지만오늘의 명절이 참으로 흡족했다. 거기까지 아주 좋았다.
그때 베보자기를 샀어야 하는데... 고민 끝에 대안을 찾아 주방 서랍을 열어보니 낯선 천이 몇 장 발견되었다. 쭉 펼쳐 살펴보니, 부직포는 아니고 이거 레스토랑 냅킨 같은데, 함 해보자!! 실험정신이 마구마구 솟구쳐 올랐다. 그래도 이거 이태리제니까. 하지만 아아. 그러지 말아. 내면의 소리를 뒤로.. 혹시 이거 녹지는 않겠지... 하며 2단의 찜솥에 그걸 깔아버렸다. 그리고 불은 지펴졌다.
3. 만두피 일병 구하기
원래 있던 만두소만 해야 했으나 순간 쟁반을 가득 메꾸어지는 만두에 재미가 났는지 이상하게 늘어난 속 때문에 만두피가 모자랐다. 큰아이는 용병으로 어떻게든 만두피를 구해 와야 했다. 하지만 큰 마트에 만두피는 매진이었다. 그럼 그냥 오너라 하며 내가 홍두깨를 집어 들고 주성치 영화처럼 식탁에 밀가루를 뿌렸는데 그 순간 캡틴의 막강한 만류로 홍두깨는 써 볼 수가 없이 빼앗겼다.
“그거 시골 가서 불쏘시개나 해.”
그 많은 만두소를 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 머릿속에 집에 오는 길에 다른 마트도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아이에게 집에 도착하지 않았으면 거기도 가보아라 했더니
“알아들었어! 오케.”
이러면서 열심 만두피를 찾았고 마침 그곳에 두 개가 남았단다. 그러나 집에 남은 식구들은 두 개 갖고는 어림도 없다 논란이 일었고... 혹시 그럼 집 근처 작은 상가 슈퍼에 가보라 했더니, 거기에 생각지도 않은 왕만두피가 기다리고 있었단다. 등잔 밑이 어둡다니!
이리하여 넉넉해진 만두피를 들고 의기양양 돌아온 아이는 마치 개선장군이 되었고 그 순간 찜통의 만두는 다 쪄지고 있었다.
새로 사 온 만두피에 즐거운 이야기꽃을 쏟아내는 가족들은 이제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이번에는 오히려 속이 모자라다며 하지만 절대로 거기까지만 만들자 하는 중이었다.
나는 김이 오르는 찜통의 뚜껑을 열고 조마조마 60개의 만두가 어찌 되었나를 살폈다. 겉보긴 아주 성공적! 그러나 뚜껑을 열고 만두의 궁둥이를 들쳐보는 순간... 오 마이 갓!!! 예감이 그렇다러니! 천과 맞닿은 곳에 핑크색으로 물든 만두 껍질... 그리고 묘한 냄새. 이러면 안 돼... 뜨거운 줄도 모르고 손으로 떼어내어 얼른 찬물을 받아 만두 궁둥이를 씻고 있는데 큰아이가 와서
“엄마, 뭐해?”
“쉿!!! 비밀이야... 큰일 났어.”
하며 소곤거렸다. 시어머니가 두려웠던 것만은 아니다. 가족의 그 사랑스러운 노고의 순간들을 이 미흡한 내가 날려버린다는 그 당혹함과 미안함이 자조했던 것이다. 이런 바보 바보.
허겁지겁 만두를 찬물에 씻어 보았지만 만두 엉덩이에 묻은 핑크색 물감을 지울 수는 없었다. 흐르는 물에 만두를 들고 행주로 부드럽게 닦아도 보았지만 계속 연약한 만두피가 터져 속에 당면과 고기와 김치쪼가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주 처절하고 슬픈 운명이었다.
아이와 나는 의미심장한 눈을 마주쳤고.. 나는 얼른 그 핑크색 엉덩이를 한 만두 하나 집어삼켰다. 컥컥 목이 막혔다. 아까워. 아까워. 엄마 뭐해!!!
순간 아주 오래전 떨어트린 김밥을 서둘러 목에 넘기던 그때가 떠오르며 소중한 음식을 아깝게 버리는 충격에 사로잡혔다.
4. 미련은 버리는 것
못 먹을 것이었다. 순간 판단력은 얼른 냉장고를 열고 무얼 넣을 수 있을까 찾는 것이었다.
시어미가 준 나물을 잘 보관하다가 명절 때 나물 묻혔다고 칭찬받은 아까 그 고춧잎나물, 세일이라고 한 박스나 사서 풍족했던 콩나물, 오징어튀김이 귀찮아서 해물전이 되다가 그만둔 데친 오징어를 찾아내어 오징어 만두소를 급히 만들기 시작했다.
이런 재료가 남아있는 것은 신의 한 수 아닐까.
저쪽 거실팀에서는 이제 만두 빚기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설거지를 나르고 있었고 이쪽 주방에서는 얼른 찬물에 헹군 만들 60개를 검은 봉지에 숨기고 있었다. 큰아이와 나는 의미심장하게 우리가 왜 또 만두소를 만들어야 하는지 암묵적 합의를 했고... 조용히 식탁에서 또 다른 칼질이 시작되었다. 이리하여 나는 가족의 협업의 재미가 아닌 운명으로서의 세 번째 만두판을 혼자서 벌였다. 비밀을 아는 큰아이는 내 옆에 앉아 모종의 작전처럼 할머니 모르게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꽤 실력가가 된 모자는 아무것도 안 하는 척 조용히 만두를 빚었다. 아이가 넉넉히 사온 만두피는 만두소와 함께 마지막 한 장까지 매진을 쳤다. 이렇게 만두소는 사라졌고 만두피도 딱 맞게 해치웠다.
아이는 안 그래도 되는데 자꾸 음식물쓰레기를 자기가 치우겠다고 나서며 할머니와 캡틴 모르게 스르륵 나갔다 오고 이렇게 해서 오징어 만두는 탄생되었다. 만두 60개는 어디로 증발했는지 아이와 나만의 비밀이 되었다. 어머니가 집에 돌아가실 때 차곡차곡 찐만두를 층을 쌓아 찬통에 담아드리며 마치 딸내미 반찬 싸주듯이 담았다. 그곳에 정말 정성과 사랑을 담았다.
5. 아주 오래전 기억
초등학교 2학년 봄소풍 때였다.
몸이 불편한 울 엄마가 새벽부터 김밥을 싸주셨고 나는 행복으로 부풀어 도시락을 두 개나 챙겼다. 엄마가 이렇게 김밥을 싸주시다니! 너무나 행복한 일이었다. 당시 우리 가족의 일상은 큰언니가 일어나 밥을 하고 작은 언니가 밥을 함께 차려야 하는 시절이었다. 내가 소풍을 가던 봄날 엄마는 일어날 수 있었고 심지어 김밥을 싸주실 정도로 회복되어 있었다. 참으로 따스한 봄날이었다.
당시 걸어 걸어 행군하던 소풍의 행렬이 사람들의 마음에 타인의 행복을 주목하게 하고 누구든 흐뭇한 미소를 던지며 즐거워하던 소풍, 작은 아이들이 저마다 등에 한 짐 지고 숲 속을 향하여 그 긴 여정을 감당해 냈다.
8살의 나는 언니 오빠들이 가던 소풍을 통해 미리 소풍에 대한 환상을 꿈꾸어 왔고 드디어 엄마 동행 없이 소풍을 가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손바닥 피부 관절 등에 지병을 가진 엄마가 정성껏 싸 주신 김밥에 대한 열의가 굉장하여 감격하는 마음으로
“엄마 두 개 싸 갈래요!”
흐뭇한 미소로 당시 유행하던 일회용 도시락에 김밥을 그득 담아 주시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그러나 점심시간이 되자 나는.... 기울어진 산비탈에 앉아 두 개의 도시락을 다 떨어트리고 말았다. 옆에 아이가 쳐다보는 민망함보다 이거 우리 엄마가 싸 준 건데... 그 절망을 담아 검불이 묻은 김밥을 두 어개 주어 먹고 컥컥 목이 막혔었다.
집에 돌아와 김밥 잘 먹었니? 묻는 엄마에게 그럼 잘 먹었지 대답하며 미안함을 감추려는 시간과 만두를 망쳐버린 순간의 시간이 겹쳐 정성과 그리움이 목을 콱 메이게 했다. 명절은 그리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