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의 빈자리

성큼 잘려나갈 때

by writernoh


산세베리아가 이제 좀 편안해졌다.


꺽다리 같은 영양끼 없는 메마른 잎에

분양하고 비틀비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한없이 안타까웠다.





오래된 화분이라 정도 들고 아이들 성장하듯 같이 지켜보았는데 그게 어느덧 아이 키를 넘고 내 키를 넘어 쭉쭉 자라 가고 있었다.
따로 솟은 싹들이 있어 화분 분갈이 비슷하게 작은 싹들을 옮겨심기도 몇 번, 때론 잘 자라 새끼친 화분째로 갖다 주기도 했다.
그런데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 모든 뿌리의 본거지는 집에 남은 오래된 화분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꽃은 본화분에서만 필까?
"꽃이 필 거예요!"
하며 날라다준 화분에 꽃이 피었을까?


울 집에 있는 오래된 화분은 최근 몇 년 전부터 매해 꽃이 피었다.





그러다가 그 녀석을 알게 되고~
사근사근한 그 녀석이 맘에 들고 또 고마워서 뭐든 아깝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 산세베리아가 너무 충만하다 못해 꽉 찼다는 생각에 분양공고를 냈더니
그 녀석이 받으러 오겠다해서 무척 기뻤다. 솜씨도 좋고 욕구도 있어 뭐든 잘 해낼 녀석이었기에 오히려 고마웠다.

분갈이에 대해 전문적 상식이 없는 나는 예전처럼
화분의 가운데를 모종삽으로 갈러 푹! 잘라 반토막을 냈다. 물만 먹고 자란 놈이라 툭툭 소리를 내며 모종삽에 뿌리를 잘렸다. 그런데 이전에 그 느낌과는 달랐다. 두꺼운 뿌리가 그냥 싹둑 잘려진 것이다. 15년을 자란 굵은 중심이었다. 이럴 때 절단 났다! 그래야 하나~
아차, 싶었으나 이 정도는 감당하고 덜어내야 다 같이 살거라 여겼다.
한아름 검은 부식토와 함께 후드둑~붉은 흙 부스러기를 거실 바닥에 떨어뜨리며 생명의 본체를 드러내었을 때,
마치 자연의 법칙의 숭고한 한 장면처럼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때는 충분히 감당할 일이라 여겼다.
나보다 더 관리를 잘해줄 집에 보내는 거라 믿었고 지금도 그리 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식솔을 떠나보낸 고동색의 화분은 한동안 휑하니 반쪽이 산사태에 버려져 나간 것처럼 영 복구가 되지 않았다.
이를 어쩌나? 다시 잘려나간 뿌리에 생명력이 돋아야 할 텐데... 피 흘린 수액을 생각할지라면... 그래도 괜찮다고 여겼다. 반은 그 녀석이 잘 살릴 거니까.

내가 가끔 그렇듯이 갑자기 마음을 훅 퍼다 주고 휑한 가슴 한복판처럼~
지난 몇 달 동안 그곳은 인위적으로 엉킨 뿌리를 펼 수도 없고 오직 남은 공간에
땅 밑에서 조금씩 조금씩 스스로 자리를 차지하게 기다릴 뿐이었다.
안 되면 어떡하나. 나의 무지로 생명력 있던 것들을 망쳐버렸을까 미안한 마음에 물을 주며 다시 쑥쑥 다리를 뻗거라~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내 마음 한 곳을 움푹 패이고도 괜찮다 생각했을 그 나눔에 난 무엇을 바랐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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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 녀석이 울며 전화를 했다.
내가 자기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오랜 친구 같은 녀석의 뿌리를 우직끈 부서뜨리며 나눈 산세베리아는....

여기저기 상가에 누구네 사무실에 존재하는 멋지게 자라난 다른 집 화분이 아니라 그날 함께 나눈 그 산세베리아인데.. 그 마음이 여전한데 얼마나 다른 생각을 한 거니? 응?





화분의 빈 곳을 볼 때마다
녀석을 생각케 한 아픔을 아물린

시공을 넘을 수 있는 관계였는데...
나는 그 녀석을 소홀하게 대했다는 원망에 당황스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는 타인의 기분을 이해하려 애썼고

내속에 감정의 산을 넘어 미안하다고 했다.






산세베리아는 조금씩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흙속을 기어가고 있었고, 심지어 잘린 잎 꽂아놓은 것도 잔뿌리가 생겨 새싹이 나기 시작했다!





한 달 전 녀석은 다시 내게 화를 냈다. 나는 무엇이 그를 불쾌히 만들었는지 몰랐고
그저 당황스러워 내가 이렇게 무디어졌을까
슬퍼졌다. 그가 날 하찮게 여긴다는 불순한 생각에 감정의 바닥까지 내려갔다.

내 안에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만 찾았다.

그때 다른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나와 같은 입장에서 이젠 누군가를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고 푸념했다.

화분 반쪽에는 아직 녀석의 자리가 있고
나는 내려놓으려 생각지 않았는데 어떤 노력보다 마음의 뿌리가 자라길 물을 주고 햇빛으로 돌려놓으며 시간에 의존했다.






어제 그 녀석에게 연락이 왔고
이제 나와 함께 하는 모임에 시간을 내기 어렵단다.
하는 일이 바빠져서라고.

이상하게 바싹바싹 엉켜있던
남은 산세베리아에 틈이 보였다. 내 착각인가? 흙더미 위로 드러난 뿌리가 조금씩 옆으로 기어갈 것도 같다. 다시 꽃도 피려나. 꽃의 전령으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며
시간의 다리를 놓아주면 좋을 텐데.

녀석이 하는 일이 잘 되기 바라며 알았다 했다. 나는 그를 잡지 못했다.

다음 꽃이 피면 잘 있다고 소식 보낸 거고 그때는 난또 새로운 일에 단단해져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