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일을 재개했디. 팬데믹을 맞은 시국은
나의 일상을 조용히 흔들었지만
한편으론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로 티셔츠와 캐쥬얼만 입다가
모처럼 재킷과 정장 바지를 갖춰 입고 나선 날이다.
훌러덩 통바지만 입고 뒹굴던 모습과 달리
그나마 가진 옷 중에 핏이 제일 나아 보이는 것으로 골랐다.
오늘은 굽 없는 낮은 컴포트화를 신고 혹시 모를 기동성에 대비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온 시각은 저녁 9시 20분, 흡족하진 않았으나 시간을 오버하면서까지 니즈에 맞게 대응하려 애썼고 더 이상의 해결과제는 없이 끝냈다는 생각에 금요일 밤을 편히 보내는 일만 남았다 여기며 지하 주차장에 내려왔다.
바닥이 매끈하지 않은 오래된 아파트 주차장. -나중에 깨달은 일이지만 이곳은 경사가 진 곳이었다. 하지만 평지로 보일 뿐이다.-
좁은 공간에 촘촘히 들어선 차들이 간신히 지나갈 통행로만 남겨두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늘 이곳에 도착했을 때 차를 대며 빠져나오기 편한 자리라 운이 좋았다 했다.
그런데 그 시각 그곳까지 이중주차가 되어 있다니!
그 차를 앞으로 밀어야 할지 뒤로 밀어야 할지 애매한 중에 통행로이긴 해도 거리가 좁은 앞쪽보단 뒤쪽으로 미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에 아직 뜨거운 보닛을 만져야 했다. 남의 차 건들기 싫은데...
먼지로 가득한 차를 손바닥으로 미는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차주에게 전화를 하니 보조석 바퀴 아래 나무토막을 치우란다. 엘리베이터 버튼도 함부로 안 만지는 시국에 더러워진 손바닥도 불쾌했으나 집에 가야겠으니 본의 아니게 주어진 일을 내가 해결해야 했다.
나무토막을 발견해 빼고 보닛을 미는데,
아글쎄 이 차가 미쳤나 쑥! 계속 움직이는 것이다. 순간 뭐지?조금전에 이미 대어놓은 토막이 있는지 모르고 꿈쩍도 않는 차를 열심히 밀어보다 힘도 소진되어 세게 밀지 않았건만. 차는 밀려가고 벽 쪽에 세워놓은 차와 잘못하면 충돌할 거라는 촉이 퍼뜩 드는데!!!
방금 옆에 던져놓았던 나무토막을 재빠르게 바퀴밑에 끼어야겠다 싶어 뒤로돌아 토막을 잽싸게 들고 다시 뒤로 한 발 내디뎌 차를 쫓아가는데....
그만 발에 뭔가 걸려 휘청하더니 꽈당! 육중한 몸이 그대로 초록색 바닥에 미끄러져 버렸다. 개구리처럼.
순간 어깨에 맨 노트북 가방은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고
코만 안 박았지 바닥에 엎딘 나는
미세한 모래가루들이 손바닥에 박힌 채 꿈틀거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하지만 앗! 차는 아직 후진으로 구르고 있고!!!
미치겠네.
더러워진 손바닥을 땅에 딛고 몸을 일으켜 가능한 빠르게 저 차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우사인볼트처럼 두어발 뛰었는데
다행이도 그 순간 차가 멈췄다. . 주차장 통행로 반을 차지한 채로. 어떤 인간이 차를 이리 대어났어! 하며 들어올 차들이 욕할 정도로. 여직까지에 번거롭고 불쾌한 데미지에 몸을 급하게 움직이다보니 씩씩거리는 내 모습에도 불구 내 손이 닿은 일이라 젠장 다시 앞으로 좀 밀어야겠어 이번에는 차 뒷쪽을 손바닥으로 밀었다. 끙끙~엇 또 뭐냐, 좀전에 굴러잖아. 이게 꿈쩍도 안 하네! 도대체 뭐냐 넌! 밀려드는 화를 좀다스리고 바닥을 보니 바닥에 물받이 흐름길이 설치된 곳인데 그것이 좀 삐딱하게 올라와 있어 거기에 바퀴가 걸린 것이다. 그것 아니었으면 뒤에 줄지어있는 차들과 쿵~했을 일이다.
내 검은 정장은 먼지가 묻고 무릎은 허옇게 바닥에 밀렸음을 증거하고 있었다. 마치 버스잡으려고 뛰어와 놓친 사람처럼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
숨을 헉헉 내쉬며 이런 젠장!!!
그때 화가 나서 내버려두고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다른 차들의 통행에 불편을 줄까 봐
난 또 차주에게 전화했다.
"헥헥.. 차가 꼼짝도 안 하니 당신이 내려오시죠....!"
귀찮다는 듯 그 남자의 목소리는 내가 지금 당한 봉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알 길이 없겠지.
한밤의 주차장에서 후줄근하게 서 있는 자신을 기가 막혀하는데 서서히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팔을 굽혀 찾아보니 양팔꿈치는 긁히고 심지어 왼쪽에는 까져서 피가 먼지와 함께 묻어 엉켰고 무릎은 얼얼했다. 이게 뭐냐.
잠시 후 내려온 차주는 "차 댈 데가 없어서..." 그뿐이었다.
나는 깨진 팔꿈치를 보여주며
밀며 다쳤다는 말을 했다. 당신 차의 존재 때문에 나로서는 이 밤에 데미지가 컸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듣지 않았는지 그는 홀라당 자기차를 타고 이동해 버렸다. 처량 맞은 나는 집으로 돌아오며
뭔가 손해 본 것 같은 마음에 기분이 언짢았다.
분노가 이글거렸다. 또 바보짓을 했어.
적어도 괜찮냐는 말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자기 차를 밀다 넘어져 다쳤는데 아무런 상관없다고 판단됐을까
처음부터 토막이고 뭐고 당신이 내려와 빼라고 했어야 하는데!
집에 도착해서 신을 벗으니 왼쪽 발가락 스타킹에 커다란 구멍이 나있다. 가죽신 속에서도 버티지 못했구나. 스타킹은 충격에 약하니 저리 쉽게 티가 나지.
남편에게 말하니
그럴 때 막았다간 차에 깔렸을 테니 넘어진 게 다행이라며 졸린 목소리로 핀잔을 준다.
바지를 걷어 올리니 왼쪽 무릎에도 대형참사가 있네.
이게 얼마 만에 무릎이 까져 피가 흐르냐.
속시원히 똑똑히 말하지 못하는 바보 같은 한숨과 오른쪽 가슴과 견갑골에 통증은 눕는 것도 불편했고 더욱이 치료를 받던 오른쪽 손목은 다시 시큰거리고 있었다. 병원 갈 때마다 10만 원인데.. 아까워서 격으로 가고 있었건만! ㅠㅠ
이 손목을 어쩔 거냐.
무릎이 허연 바지가 보기 싫고
넘어져 상처까지 생긴 자체가 너무 기분 나빠
시큰거리는 손목에도 불구
이 불쾌한 감정을 어떻게든 털어야 했다.
빵구난 스타킹 속 튀어나온 발가락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하지만 폭력당한 것 같은
치욕을 갖고 조금도 견디기 싫었다.
제기랄 손목이 부서지건 말건
바보같은 꼬락서니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세제를 듬뿍 넣고 바로 손빨래를 해버렸다. 거품이 잔뜩 나와 끊임없이 헹구며 통증이고 뭐고 안 받아들여, 누가 이기나 어디 쑤시던가 부러지던가 해보자..오기를 부렸다. 물을 몸에 튀기며 날아가라! 한참을 헹궈야 했다.
뼈가 부러지진 않은 모양이다.
내 손목이 나가든 무릎이 나가든
오로지 내 문제이고 삶은 늘 이런식이지
넘어진 자가 바보일 뿐...
그렇게 분노의 금요일 하룻밤을 넘기고
혼자 달랠 뿐이다.
다음 날 아침 블랙박스로 확인해 보니 이 일은 아주 빠르게 진행된 일이다. 화면속에 한 인간이 주차장 좁은 공간에서 뛰고 돌고 넘어지고..뭐야 저거 왜 저래?로 보일 뿐이다. 그때 나는 엄청 긴급했는데 화면은 나의 일을 너무 단순하게 기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