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

그건 스타일이다~

by writernoh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운지 날마다 새로워지며 배우고 있다. 갈수록 당황스러운 일도 잦아 심장이 보호막을 치니 몸과 마음이 더욱 뻗뻗해진다. 그럴수록 숲을 찾고 사색에 기대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지려 애쓴다.


너어무 찌뿌둥한 일요일 아침이다. 대부분 앉아서 글자와 씨름하는 일은 내 몸을 얼마나 굳어지게 하는지

게다가 외출도 대폭 줄어든 요즘

찜질방이라도 가서 굳은 몸을 푹 풀고 싶으나

올 해는 쭉 못 가고 있다.

남보다 빨리 생긴 지병, 노화로 인해 근육이 말이 아니다. 아침에 간신히 일어나며 상쾌함을 맛본 지가 얼마나 됐는지!


그와 함께 운동을 하러 나갔다. 며칠 전 우연히 본 프로그램에서 빨리 걷기가 건강에 효과적이란 말에 외출 자제로 굳은 몸을 풀기 위해 공원을 찾았다.


가을맞이 새로 난 푸릇푸릇한 잎 속에 붉은 열매들이 이름을 맞춰보세요!

하는 것처럼 고개를 내밀고 살랑거리고 있었다.


모르는 풀을 볼 때마다 내게 저건 뭐냐고 묻는다.

엄마 따라 나온 아이처럼.

"응, 나도 몰라."



'우측통행 2미터 거리두기 하세요.'

쓰인 현수막이 마치 전체주의 사회 시민 교육을 하듯 위협감을 주기는 했지만 어쩌면 우린 이런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 모른다 생각을 하며

숲을 걷는 자유만큼은 보장되어야 되지 않을까

희망했다.



일상의 휴식 같은 시간을 즐기며 조용히 걷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신호대기를 하다가

길옆 새로 생긴 카페에 아메리카노 2000원 입간판을 보았다. 반대편에는 가게는 1900원이었다.


"뭘 쓰길래 저렇게 저렴한가."

"커피가 거기서 거기지."

"아메리카노가 뭔데?"

"설탕 안 넣은 거……."

"차 돌려, 저기 맛 좋은 카페 있어. 당신이 늘 2천 원짜리만 마시니까 과테말라나 케냐 그런 게 있는지 모르는 거야."

"나도 다 알거든!"


우린 아메리카노의 개념을 묻기 위해

가던 길을 돌렸다.



친절한 카페 사장님은 원하는 질문에 답을 주었고

"더 궁금하신 건 없나요?"

한다. 아는 게 있어야 물을 것도 있을 터, 질문은 끝났다.

간 김에 에티오피아 아리차 워시드와 과테말라 엘 콘수엘로라는 기억하기 어려운 이름의 빈을 갈아 만든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되었다.



"이제 정리가 됨?"

"그러니까 아메리카노는 스타일인 거잖아!"

"그래, 결국 과테말라는 커피빈 원산지이고 그걸 원두로 마시든지 라떼로 마시든지 에스프레소로 마시든지 스타일을 선택하는 거였어."

"그래!"

"너두 정확히 몰랐잖아!"


그랬다. 결론은 어찌 됐든 이곳이 아주 기막히게 맛있다는 내 추천으로 무척 기대하고 마셨는데

자기는 그냥 2천 원 짜리 마시겠다는 거였다.


그의 미감을 두고 뭐라 할 여지는 없다. 개인의 취향이고 다분히 경제 관념과 기대 수준에서 선택은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창가에 화분이 있는데 마치 케이크에 장식된 이파리와 닮아

"저걸 넣었나?"

하며 조각 케이크를 바라보았더니 금세 사라져 있다.

"어디 갔지… 먹었어?"

케이크는 안 먹겠다던 그의 표정이 멈추었다.

"먹는 거 아니었어? 말을 해주지!"

그의 얼굴이 민망하게 굳어진다. 난 그게 재밌다. 너무 자주 농담과 진담 사이 굳어지는 그 표정이 능청맞게도 너무 장난 같지 않아 오히려 참지 못하고 큭큭 모처럼 길게 웃었다. 왜 그 자꾸 멈추지 않는 이어지는 웃음^^ 하이 코미디가 몇 년 만인지.

"크크~아냐 아냐 먹어도 돼!"




몇 해 전 그의 소망으로 도쿄 디즈니랜드에 갔을 때였다. 일본어도 영어도 중학교 교과서 수준이던 나는,


"아메리카노 플리즈~."


이거 하나 간신히 꺼내보았다. 그러나 카페 여사님은 상당히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런 메뉴는 없다는 거였다.


"그럼 오리지널 커피 플리즈~."


라고 주문을 하니 따듯한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이거 아메리카노 맞는데 왜 없다 그랬지?'

아메리카노는 일본말은 아니었다. (오늘 카페 사장님 말에 의하면 커피 촌놈의 말이라나~)


그때부터 나는 그건 한국에만 있는 말로 생각했다.

그런데 영 헷갈리는 것은 가끔 전문커피점에 갔을 때

어디는 원산지 커피빈 이름으로 메뉴를 써 놓고, 따로 아메리카노라 써 놓은 것이다. 정확히 몰랐으나 알 필요 없을 거 같아 굳이 찾아보지 않은 개념이었는데 문득 오늘 여유로운 모양이다. 그걸 둘 다 잘 모른다는 이유로 바로 확인 들어갔다.

덕분에 볕 좋은 가을 오전 카페에서 조각 케이크와 커피를 즐기며 실컷 웃을 수 있었다.




내 옆에 그는 그만의 스타일이 있는 사람이다.

내가 카푸치노를 마실 때 같이 카푸치노를 마셔서

그걸 좋아하는지 알았는데 자기는 커피 안 좋아한단다. 그냥 따라한 거 이게 그의 스타일이다.

오늘 내가 에티오피아를 선택하니 그럼 자기는 다른 대륙으로 간다고 온두라스를 시킨단다.

음... 좀 민망했다. 굳이 그런 농담을 하다니!

실은 오래전 만날 때부터 나름

자기 방식의 코미디를 해대는 그 옆에서 다들 허탈해하는 중에 나만 웃곤 했다. 나야 상당히 깊은 독해력을 지녔으므로~~~ 웃어준다만…….


그는 입에 대면 바로 맛을 알 수 없는 시큼털털 하면서 뒷맛 묘하나 왠지 한 번 더 입이 가고 또 있다 보면 설탕 좀 넣어야겠다 싶은 그런 아메리카노 같은 사람이다.


라떼나 카푸치노 좋아하는 나는 시큼한 원두도 가끔 마신다.

향이 너무 좋아서 취하고 싶을 때도 있다.


아메리카노는 스타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