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를 가로지른 어색한 순간, 침묵보다 나은 것을 찾지는 못했지만 입을 열어야 했던 것은 용기이고 그것이 그녀 앞에 놓인 사람에 대한 예의라 여겼다. 또 말하는 게 그녀가 잘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기 때문에 번번이 침묵을 가르는 몫은 그녀의 것이었다. 물론 불필요한 말로 어색함을 만드는 건 그녀로서도 원하는 바가 아니다.
오늘도 하나의 침묵을 갈라보려 한다.
인류의 문명이 막 깨어나 얼마 안 되었을 오래전 선각자 피타고라스는
문명의 초반기에 태어나 이치를 깨닫고 문리를 튼 사람이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위와 같이 조언했지만, 누군가에게는 어리숙한 말이 최선이었으리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의 수학적 정의들이야 말로 진검 철학 일지는 모르나 그녀는 그 맛을 모르니 얼마나 슬픈가!ㅠㅠ 수학책에서나 봤던 피타고라스가 철학자로서 생각도 깊었다 하니, 우와 역시 진리의 철학은 같은 곳에 궁극점이 있는 거로구나 싶었다.
그녀는 나름의 기억 때문에 수가 누구나의 인생의 진리는 아니니까 수가 안되면 다른 것을 품고 살자 이렇게 마음먹은 일인이다.
피타고라스가 수만 가지고 고민한 게 아니라 이런 철학에도 조예가 깊었다는 것이 그녀에겐 미쳐 포용하지 못한 아쉬움이다.수학만 잘했을 거라 여기다니…….
그녀의 어린 시절, 만난 스승 몇 분의 영향일까
모진 이해의 어려움 속에 수학에 도전은 했으나
궁극을 아는 것은 포기하고 말았다. 참으로 수학적 사고를 깨우치지 못한 그녀에게 미련한 사람이란 자괴감마저 들게 하셨다. 그녀는 교육시스템이 만든 수포자였고 수학은 때로 괴로움까지 얹어 도피하는 항목이 되었다.
학창 시절 당시 그 유명했던 수학의 정석을 그녀도 구입하긴 했다. 늘 수학 1의 집합만을 기억하는 그녀. 집합 문제 부분만큼은 시커멓게 공부하고 시험에 나온 문제는 다 맞혔다. 그러나 그 이상의 득점은 한계였다. 집합 등 앞 단원의 비중은 가벼운 것이었으니…….
그때는 수포자의 의미가 그녀의 발목을 잡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골치 아픈 수학보다 마음이 끌리는 것은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나 동주의 별 헤는 밤 같은 시를 더 좋아했고, 살로메의 우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를 읽고 충격을 받으며 소설 속에 깨달음을 얻고 철학도 하고 고뇌하고 아파하며 청소년기의 갈등을 풀어나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피 선생과 그 무리들이 닦아놓은 수학은 깨내고 싶지 않은 바윗돌이었다.
도원결의나 한 듯 올해 안에 합격하자. 해놓고 공무원 시험을 쳤으나 수학에서 40점 과락을 면치 못하고 슬그머니 빠져나왔던 그때 그녀만 홀로
백수로 남을 수 없어 진로를 바꾸기도 했다. 수학에 관한 것이 청년시절의 아픔만 부끄럽게 숨겨져 있는 게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쭉 심지어 애써 피할수록 수학은 그녀의 삶에 컴플랙스로 종종 다가왔다.
이제는 수학을 안 해도 되는 위치에 있지만, 아이가 수학학원을 다녀도 영 힘들어하니 다 자신 탓인 거 같아 원죄의 죄책감마저 든다.
실은 수포자가 되기 전 그녀의 적성검사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이과 성향이 높게 나왔었다. 세상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당시 고2 때부터는 문이과 반이 나뉘었고 이과가 좁은 문인 탓에 더 인기 있던 시절, 1학년 담임은 선택 기준을 적성검사 성향 결과를 우선으로 판단했다. 몇 안 되는 이과 성향자를 호명하여 자리에 일으키시고는 이 중에 문과로 자원해서 갈 사람! 을 물으셨다.
유일하게 그녀만 손을 들었고 그녀의 이과 포기로 티오가 생긴 아이는 상당히 고마워했다. 그녀는 당연 문과반을 선택했고 뿌듯한 마음까지 챙기며 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이후로 그녀가 수학 성적만 좋았어도 서울대를 갔어! 하고 한창때 어설픈 뻥을 친 적도 있다.
고3. 1학기 때, 담임이셨던 이창원 선생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넌 이제부터 아예 수학은 하지 마! 차라리 딴 과목 하도록! 이렇게 명령하셨다. 그 말을 듣고 차라리 잘 됐다 싶어 시간을 다른 과목에 투자했다. 잘한 것 같다. 대신 대입 시험에서 양심적인 수학시험 결과에, 어쩜 찍은 것은 다 틀렸는지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했다.
수학에 대한 두려움은 사실 더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아주 오래전 유년시절, 그녀 4남매는 밭둑에 나란히 서서 동전 던지기 놀이를 했다. 그때는 동전 백 원이면 수지맞는 군것질을 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그런데 아직 문방구조차 가 본 적 없는 유년의 그녀는 방구석에 있던 그 동그란 걸 외면했다. 수나 적혀있고 별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으로 여겨지 않은 때, 배나무 밭 둑에 서서 던져서 제일 멀리 나가는 사람이 이기는 건 줄로 알고 하나, 둘, 셋 멀리 던지고 즐거워하며 언니 오빠가 하는 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성장하며 종종 그때 그 돈은 아직도 거기 있을까? 언니 오빠는 그걸 주우러 다시 갔을까? 희미하게 기억나곤 하는 그 일은 그녀가 수를 귀찮아했음이 드러나는 증거이기도 하다.
7살 학교에 가서 다른 아이와 마찬가지로 수수깡을 묶음으로 쌓기를 했다. 시험을 봤는데 100점을 받고 엄마한테 보여준 기억도 있는데 그 이후 산수 백점은 그녀에게 보기 힘든 점수였다.
수학의 씨앗이 마르도록 몸서리치는 그녀의 흑역사는 국민학교 2학년 때부터일 것이다.
산수책에 온도계 읽기가 나왔다. 그때 그녀는 자신의 뺨을 때린 담임 이상도라는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니까. 그녀와 몇몇의 아이들은 칠판 앞에 나와 선생님 코앞에서 온도계의 눈금을 읽어야 했다. 아, 그때 그녀는 발표 때 손드는 것도 두려워 고개 숙였고 시켜도 목소리 안 들리는 작고 소심한 아이였다.
그날 빨간 줄이 가리킨 눈금은 26도였다. 모기소리처럼 그녀 소리가 작았는지 담임은 자꾸 다시 읽으라 했다. 너무 미안한 듯이 당시 8살이던 그녀는 제차 26도라 말하며 심지어 자신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선생님께 미안한 마음마저 학습되어 부끄러운 미소까지 지어가며 '26도여'라 했건만, 갑자기 날아든 거대한 손바닥은 그녀를 교단 옆 구석에 있는 선생님 책상까지 얼떨결에 뛰어가게 했다. 화끈하고 묵직한 두려움이 눈물 한 방울마저 거두어들였고, 그녀는 산수 바보가 되었다. 선생님의 짜증이 두려워 그러고 나선 제자리로 와서 심지어 웃는 표정을 해야 했다. 부끄러움이 뒤통수를 달구었다. 그날이 아직도 생생한 만큼 그녀에게 2학년 이상도라는 이름은 두려운 것이 되어 남았고 산수는 너무 어려운 것이 되었다. 눈금 읽기에 추락한 자존심은 산수 시간만 되면 그녀를 떨게 했다.
4학년 때 둘째 삼촌이 장가들던 날, 아버지는 부조금을 맡으셨고 결혼식이 끝나자 외갓집에 돌아와 주판으로 계산을 하셨다. 그러면서 종이에 쓰인 금액을 그녀에게 다시 한번 검산하라 하셨다.
아버지 저는 그거 하면 안 돼요. 난 산수를 못하니까.
그녀는 나이 어린 사촌동생에게 계산을 맡기고 조용히 기다렸다. 그 순간 계산을 방해하지 않도록 숨죽이며 절대 겸손의 시간이 흐르고 그 계산을 해내는 사촌에게 경외심을 느꼈다.
6학년이던 어느 날 왜 그랬는지 그녀는 또 자리에서 불려 일어나 있었고 아마도 산수 시험 결과가 좋지 못했나 보다고 생각했다. 세워 놓은 아이들에게 넌 꿈이 뭐냐고 한 사람씩 묻는데, 그녀 차례가 되었을 때 그녀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어떤 학교 선생님이 될 거냐 되묻던 무서운 선생님 앞에 그녀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될 거라 했다. 그런데 담임 이인희 선생님은 껄껄 웃으시는데 그건 냉소였다. 너 같은 애가 선생 됐다가는 애들 산수 성적 다 망치겠다! 그 말에 그녀는 교사 되기는 글렀다 싶었다. 그런 마음을 품었던 것조차 죄스러웠다. 나중에 깨달은 일이지만 그날 일어선 아이들은 성적 때문에 일어선 게 아니었다. 심지어 그날 일어선 후 부모님이 학교에 다녀간 여정구라는 아이는 그 이후 선생님의 총애 학생에 성적우수자가 되었다. 그 애는 어쩜 그리 빨리 성적이 올랐을까? 부모님이 찾아온다는 것은 성적이 오르는데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당시 그녀는 한 번도 부모님이 찾아오지 않는 아이 중에 하나였다. 그날 일어선 채로 많이 울었다. 왜 울었을까. 정말 그녀가 아이들을 망칠까 봐 울었을까. 그녀는 엄마가 오시기를 바라지 않았고 이 일을 알릴 생각조차 안 했다.수치스러움을 느낀 날이었다.
중학생이 되어 그녀의 조용한 정체감은 극에 달했으나 그것은 겉모습뿐이었다. 실은 남몰래 꿈꾸는 소녀소녀 한 감성이 꿈틀꿈틀 피어나고 있었다. 한국 근현대문학책을 빌려 읽었고 틈날 때 남몰래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렸다.
이춘삼 국어 선생님이 재미있으셨다. 내 이름이 왜 춘삼인고 하니 봄을 세 번 맞으라고 춘삼이다. 그렇게 구구절절 어머니가 이름 지어주신 얘기가 그녀는 재미있었다. 나이 든 선생님이 무섭기도 했지만 실제 약산 밑에 있던 중학교의 3월. 봄은 연분홍 진달래로 아름다웠고 풀잎은 초록의 에너지를 한껏 발산했다. 마침 춘삼 선생님은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멋들어지게 읊으셨다.
물론 그 해 그 달은 그녀에게 있어 가장 비극적인 시기이기도 했지만 아픔을 겪은 만큼 고독과 절망 속에 어떤 사고가 꿈틀 거리기도 했다. 가까운 이와 영원히 이별을 하고 땅에다 고개를 박고 다닌 적도 있지만 시간은 흘러 여름이 오고 그녀는 조용한 아이로 입속에 성숙을 담고 지냈다.
2학년이 되었고 착하고 순하신 중년의 수학 선생님께서는, 니들 뒤에서 자는 애들 나중에 어른되어 후회할 거예요. 난 책임 안 져요. 하며 경고를 하셨는데 그때는 그 말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수학보다는 영어가 재미있었다. 영어는 자습서만 보아도 알아듣는데 수학은 아무리 보아도 영 풀리지 않았다. 영어 선생님께서 자기는 이티라며 잉글리시 티쳐! 지금은 상당히 썰렁하겠지만 그 카리스마가 그땐 재미있었고 이티는 꽤 인기 있었다. 수학 선생님은 쫌 재미있으면 안 되는 걸까!
고등학생이 되자 보충수업을 상중하로 나누었고 수학만 하반이었다.처음으로 선생님에게 편지란 것을 썼다.
노부기 수학 선생님!
저는 이상하게 선생님이 좋은데 수학은 잘 못해요. 수학을 잘하고 싶어요!
선생님이 착해 보여서 편지를 썼는데 그 이후 선생님께서 그녀게 친절히 대해 주시고 문제 풀 때 옆에 와서 보고 계시기도 했으나, 그러나 가망이 없었다. 노부기 선생님에게 그냥 그녀는 착한 학생인 걸로 남았다.
스스로 공부를 해보겠다고 배다리 헌 책방을 뒤져 수학의 정석을 구입했다. 처음은 정말 열심히 풀었고 이해도 잘 됐으나 단원이 넘어갈수록 진도는 더 나가지 못했다.
결국 수학은 포기하는 게 전략적 선택이었다. 그녀가 수학을 다른 과목만큼 시간 투자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시점에서 그녀 인생에 미적분은 여기까지라 정리했고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다.
이제 그녀의 아이가 수학 문제를 보고 앉아 있는데...
한없이 보고 풀고는 앉아 있다. 어제 수학상담을 받는데 아무래도 이대로는 어렵다는 말에 마음이 철렁했다.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데 학원을 옮기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래서 피타고라스 선생님이 발견하신 그 증명들을 이해하지 못한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이 유전된 것 같아 그게 한숨짓게 한다.
수를 종교로 승화시킨 철학자 피타고라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플라톤에게 영향을 끼침.
그는 리라 현의 울림소리에서 수학을 찾아냈고 음악을 수의 개념으로 이해하여 음향학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러면서 우주의 조화를 윤회와 연결시켜 자연의 이치를 윤회를 통해 설명했다.
-아테네 학당 중에서-
그녀가 고대 그리스에서 태어났다면 수를 배척하는 학파를 만들어냈을까? 자연현상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오늘도 구름을 보며 명상에 잠겼다. 그리고 조금은 그녀를 불안에 떨게 했던 순간들이 안타까웠다. 폭력적인 교사의 손바닥이 얼마나 한 아이의 인생을 좌우하는지 그들은 알았을까!
하나 더, 왜 우리 사회는 여전히 수학 점수로 사람을 기준 지으려 할까. 국영수만이 최선인 입시제도의 치열한 경쟁을 벗어나는 길은 정녕 없을까. 수학은 못 해도 봉사상은 자주 받는 그녀의 아이의 미래는 봉사보다 수학학원을 가는 시간에 에너지를 쏟도록 그렇게 타협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