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마이 부모님

낙화-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by writernoh

생밤을 얻었다.

시댁 뒤뜰에 열린 밤을

지난 추석 때 어머니가 까서 가져오셨다.

오호라! 드디어 어머니의 모습도 내게

익숙한 기억의 모습처럼 다가오는 날이 있구나.


내가 헤어 나오지 못하는 흔적의 한 켠에

절대적으로 자리하는

아버지의 것 중 하나가 생밤 같은 것이었다.

친절에 메마른 사람에게는

이런 것 하나하나가 별 것이 아닌게 아니다.




내 어린 기억 속에

엄마는 늘 병약하셨고

아버지는 엄한 호랑이셨다. 그런데 그 호랑이도 어찌 보면 힘듦이 사람을 그렇게 포장해 놓은

또 다른 모습일 뿐이었다.

13년을 갖은 수발에도 병을 이기지 못한

아내를 떠나보내며

병원에 대한 환멸까지 갖게 되었고

해서 나름의 노력으로

침술까지 배우셨던 아버지는 우리 집 주치의였다.

-나 또한 최근 그러하듯이

약이나 의사에 대한 신뢰가 점점 떨어져 가는 중이다.-

아버지는 의사도 못 고치겠다고 포기하는 병을 어떻게든 고쳐보려 하였고 외할머니는 굿판을 벌이고 싶어 하기도 했다.

끝내 건강했던 딸이 저물자

사위를 원망하던 외할머니의 모습에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으나

외할머니도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그렇게 아픈 아내를 두고 매일 6시면 칼퇴근을 했던 아버지는, 어린아이들과 집살림을 같이 하며

쌀 씻는 법에서 본인도 잘 모르던 조리기구 사용법까지 함께 익히게 하셨다.


어느 날은 전기코드가 달린 냄비를 들고 오셨다. 그때 제품 이름이 파티 쿠커였는데

이것저것 재료를 넣으셨다.

우리도 파티한다!

하시며 지금의 백 파더처럼 -요리 예능 원조는 울 아버지였다는!-둘러앉은 남매들은 뭔가 텔레비전에서 보던 상상 속에 그 맛을 맛보길 기대하며

숟가락을 들고 방바닥 요리를 고대했다.

그때 우리들 중에는 맛있고 없고를 탓할 수 있는 아이가 아무도 없었다. 마음속에서는 기대했던 환상의 맛이 깨지기도 했으나

젊은 아버지가 만들어내는 정체성 없지만 정성껏 만들어 놓은 분량의 음식을 4남매가 먹고 자랐다. 엄마는 방 한쪽에 누워계시며 동참하거나

가끔 기운을 차렸을 때 우리와 함께 방구석 파티를 즐기셨다. 그게 나의 가장 행복한 기억이 되어 힘의 원천이 되고 있다.


그 시절 플러스알파의 음식 에너지는 더 있었다.

아버지는 가끔 추운 계절 밤이 되면

고구마를 본인 특유의 맥가이버 칼로 신문지에 깎아주시며

내복만 입고 둘러앉은 우리에게 도란도란 먹이셨다. 큰 고구마 껍질이 세로로 벗겨지고 다른 손에 먼저 벤 조각을 쥔 채, 그렇게 그 자리에서 뚝뚝 잘라 이건 동훈이 꺼, 이건 효숙이 꺼 그리고 이건... 하며 내 차례까지 되어 아버지 한쪽 손에 잡힌 고구마 한쪽을 내 손에 쥐면

그날 밤 나는 그 한쪽의 날고구마가 참 시원하고 맛있었다.

가끔 언니가 고구마 한 솥을 찌어 놓는데

난 그 날고구마가 더 먹고 싶었다. 그러나 날고구마는 저녁에 아버지가 있어야 했다.

무나 밤도 그런 종류였다.

그때는 무가 그렇게 맛나는데 요즘 가끔 반찬 하다 생무를 먹고 싶은 욕구가 생길 때가 있어

네모나게 썰어 먹으면 소나기의 소녀의 대사처럼, 맵고 지리기만 하다.

아버지는 손수 그걸 깎아 간식으로 먹이셨다.

아마 그 시절 다른 부모님도 그러하시지 않았을까 그런 음식을 먹으며 내 유년의 기억은 튼튼해져 갔다.



양약을 먹으면 머리도 아프고 배도 아픈데

통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가끔 의사가 따듯하게 말이라도 해주면, 그런 때는 좀 믿음이 생기기도 한다. 대학병원 같은 큰 병원은 나를 해부 실험대에 올려만 놓았지

그 무시무시한 통속에 몇 시간을 돌리고도

내가 왜 아픈지를 모른단다.

약봉지만 늘어난다.




기억이 나를 치료한다.

아이들 어렸을 때도

아부지 하고 찾아가 여기저기 아프다 말하면 손주랑 방을 구르며 놀다가도

딸의 종아리며 어깨를 손으로 비벼주고 지압하며 기를 부어주던 아버지의 손길이면

지금도 거뜬할 것 같은데

이젠 안 되는 걸

기억의 흔적이라도 향유하여 좀 살아나 보고 싶은

의지가 생기는 것은

아직 나는 때가 아니어서인가 보다.



나에게는 아직 강렬한 삶의 의지가 가득한 모양이다.

어릴 때 아프면 약보다도

문질러 주시거나

곁에서 함께 해주셨던 여운으로

그리움의 손길이 내겐 약이 되었던 것이다.


눈다락지가 나서

그걸 째어 빼내겠다는

아버지의 손앞에 두려워 울던 나였지만

아프면 다시 아버지를 찾는 나


생밤을 까주시던 손길이 문득 떠올라

지금 당장 그걸 먹고 나면 기운이 나지 않을까

추석 때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것을 찾아냈다.



얼었다가 녹은 생밤은 종이 씹는 맛이 난다.

을씨년스럽게 저물어가는 한 해

뭔가 토해낼 것이 남았는데

그러지 못해 부대끼는 위의 메스꺼움처럼

이마 끝에 열감까지 더해 뜨거워지는 안면의 충격과 함께

뭘 기대했는지 자꾸 입에 넣어대다가

그러고야 눈물이 났다.


혼자 앓는 계절 앓이가 깊어

잊었던 달팽이 껍질 속으로 파고드는 건지도 모른다.

이 계절도 금세 지나겠지만 지금 난 고통스럽다.




너무 고통스러워 몸을 떠는 것을 오한이라 하던가?


30여년 전 그 밤에 부르르 몸을 떨며

막내인 나도 알아보지 못했던 젊은 엄마에게

울며 '그렇게 고통스러우신가요?' 마음으로 감당하지 못해 신을 찾았던 나.

그땐 당신께서 그녀의 고통을 거두어 가라는 것이었는데 그녀의 삶을 거두어 가실 줄은 도저히 알 수 없는 나이였다.


두고두고 세월을 버티며 견디어 왔던 것은

그때의 어린 기도의 목소리가

내 엄마를 데려갔다는 원망에

신, 당신은 그녀의 짧은 생애를 내놓아라!

그렇게 못하면 그녀의 못다 한 나머지 삶을 내게 내놓아라

하며 하늘을 노려보며 원망했다.

적어도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나이 들어 내게 통증이 올 때마다

당신 이미 내 엄마의 삶을 너무 일찍 거두어 가지 않았던가, 해서 내겐 당신에게 요구할 지분이 있는 거다. 이런 신과의 딜을 펼치며

아픔을 견디어 왔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이유 없이 스며드는 아픔의 시간이 너무 잦고 길어지다 보면

주변의 잡다한 덤비는 인상들은 개의치도 않게 되며 오로지 그때의 절실했던 기도가 떠오른다.





5년 전 어느 날 오전 내내 두절된 아버지의 흔적을 불안하게 찾아 헤매던 날

너무 더운 여름 한 복판에 어린 딸아이의 손목을 잡고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며

문을 잠그고 어디에 가셨을까

참으로 조용한 현관앞을 잊을 수가 없다.


그날따라 촉이 예민해져

이상한 두려움 반 설마반으로 그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주변을 돌며 기다리다가

아이에게 빙수를 시켜주고 한 술 뜨려는 순간

전화가 왔다.

ㅎ병원 응급실이라고...

사고였다.

어떡해 어떡해 울 아버지 어떡해

부들부들 떨며 응급실에 들어서는데

진짜 내가 아는 내 아버지가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드러누워 눈을 꼭 감고 계셨다.

그 험난한 모습들이 가득한 응급실에 어린 딸아이가 구석에 혼자 서 있는 것을 어쩌지 못하고

당장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하라는 의료진에게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일주일간 중환자실에 사투를 하던 아버지의 상태를 의사는 기적이라 했다.

살 수가 없는 상태인데 생명이 유지되고 있다 했다.

집에서 병원을 오가며 택시기사에게 하지 않아도 되는 울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내 정신을 찾지 못하고

매일 면회시간 부활을 기다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의사는, 모르겠냐고 한다.

그는 환자의 상태를

자식분들이 아무리 그러셔도

누워있는 분의 고통이 보이지 않느냐고

어쩌면 더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는지도

모른다 했다.

손을 주무르면 내 손을 힘주어 잡아준다고 말했으나 의미 없는 일이라 했다.

그날 차가워진 발을 주무르며

그렇게 고통스러우신 거냐고, 나 때문에 고통을 내려놓지 못하는 거냐고 마음으로 물었다.

이승에서는 이미 떠나야 할 시간이었냐고

물었고 그럼 당신의 엄청난 고통을 나는 원하지 않는다 했다.

그날 아버지는 떠나셨고

그 후로 엄청난 죄스러움에

내게 찾아오는 고통의 시간마다

내 안에 숨겨진 부모님을 마주하게 된다.


갑작스레 맞이한 이별이라 아직 못다 한 말이 남겨져 있다. 살아있는 한 평생을 그것에 대한 집착에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이유 없이 통증이 찾아와 오래 머물 때마다

그때의 순간이 나를 딜레마에 빠지게 하고

혹시 나의 때인가 생각하게 한다.



이번에는 진통제의 효과마저 제때에 나타나지 않자 독기가 생겨난다.

오라~오라~

고래뱃속 요나처럼 나는 신의 뜻을 거절하고 싶다만, 네가 정작 오겠으면 오던가!

여태껏 뭐 나좋을대로 되어왔던가!


그렇게 절대자에게 성질을 내고 나면

어느새 나는 니느웨 언저리로 뱉어져 있는 것이었다. 지금은 찬란한 아침 태양마저 누리고 있으니

나의 유예기간이 생겨나 있는 것이로다.

감사하다는 말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신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