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멕시코 전원의 모습을 이해하기 좋은 책입니다. 책속 주택과 식생활을 가늠해 보자면 제법 티타의 집안은 나름 전통있고 어느 정도 규모를 가진 살림을 하는 저택이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기에 마마엘레나의 집념같은 전통의 고수가 소재가 될 수 있었을 테지요.
●티타는 부엌 식탁과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엄청난 눈물 급류에 떠밀려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작가 라우라 에스키벨은 음식과 인간을 하나의 통합체처럼 감정을 이입하여 글을 쓰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읽다보면 음식 환타지에 빠져 너무 쉽게 주인공의 감정을 맛보게 됩니다.
● 그 전제조건이 16쪽,
“냄새는 기억 속의 소리와 향을 전하며 과거의 어떤 시간을 떠오르게 하는 특성을 지녔다.”
라고 시작합니다. 그러니 이 책을 읽을 때에는 애정라인에 집착하는 것보다 달마다 그 음식을 만들어야 했던 전통의 비법 고수자의 애환을 함께 떠올려 보는 게 훨씬 깊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순종적이고 온순할 것만 같은 막내 딸 티타는 태어나면서 눈물바다였던 것이 양파 때문만이 아니라 바로 엄마 마마 엘레나의 삶의 방식 때문이었습니다.
딸 셋을 낳았고 그 중 막내는 자신의 노후를 위한 돌봄의 의무를 안겼습니다. 그것도 평생 독신으로 개인의 욕망과는 상관없이 어머니만을 위해야 하는 삶으로 정해버렸습니다.
●티타는 나차의 도움으로 요리를 배우고 삶의 애환을 그 요리를 통해 풀어냅니다. 나차 역시 마마 엘레나 때문에 결혼도 못하고 이 집안의 요리사 역할을 하며 나이든 가족이나 다름없는 하녀였습니다. 티나는 엄마보다 나차에게 정신적으로 더 의지하며 자신의 역할을 숙명처럼 받아들입니다.
● 언니 헤르트루디스는 일찍이 이런 집안의 가풍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욕망앞에 발가벗고 이 집을 뛰쳐나갑니다. 후에 혁명전사가 되어 돌아옵니다.
● 또다른 언니 로사우라는 동생 티타에게 청혼한 페트로와 대신 결혼을 합니다. 딸들의 인생이 마마엘레나의 삶의 방식으로 좌우되고 있었지요.
●페트로는 1년 전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티타에게 홀딱 반해놓고는 그녀의 언니와 결혼하면 그것이 평생 티타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만 것이었지요. 페트로의 순진한 착각은 두 여인에게 모두 상처를 줍니다. 이때 페트로가 차라리 티타의 손목을 붙들고 헤르트루디스처럼 이 집을 박차고 나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나 페트로는 그러지 못합니다.
●로사우라 역시 동생이 사랑한 사람인 것을 알면서도 겉으로는 정당하게 그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습니다. 하지만 그때문인지 엄마로서의 행복은 느끼지 못하고 병과 고독에 휩싸여 질투의 열병만 안고 살게 됩니다.
● 세 청년들의 인생이 어그러져 보이는 가운데 티타는 늘 눈물을 머금고 나차에게 전수받은 능력으로 이 집안 대소사 연회 요리를 책임집니다. 그 요리에서 묻어나는 결과가 조심조심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게 되었던 것이지요.
● 마마 엘레나는 로사우라의 결혼 당시
“네가 마치 무슨 희생이라도 당한 것처럼 굴어서 언니의 결혼식을 망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다.”
고 엄포를 놓습니다. 티타는 어머니의 경고를 기억하며 닭을 거세할 준비를 합니다. 바로 스스로의 사랑에 대한 거세를 준비한 것이지요.
수탉의 고환을 잡고 거의 기절할 뻔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데도 마마 엘레나는 “왜이렇게 벌벌 떨어!” 소리칩니다. 티타는 이렇게 자기 운명에 반항하지 않고 억지로 스며듭니다.
●티타가 문제가 있다고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수탉이 아닌 자기를 거세시켜야 사랑하는 남자를 언니와 결혼시키는 최소한의 명분이 선다고 저항하고 싶지만 바로 마마 엘레나의 거친 손바닥으로 뺨을 맞고 현실을 거세당합니다. 뺨을 맞은 티타는 죽은 수탉이 버려져 있던 땅바닥에 나뒹굴면서 자신의 운명을 거세당한 것입니다.
●나차와 티타는 자신들이 빼앗긴 행복만큼 슬픔으로 로사우라의 결혼식을 준비합니다.
과거의 엘레나는요리사 나차도 결혼할 수 없게 나차의 애인을 멀리 쫓아 버렸습니다. 나차도 아무 불평없이 오랫동안 남의 결혼식을 보며 살아왔습니다. 자신의 딸과 같은 티타의 운명을 보며 나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주변 사람들을 가차없이 도구로 만들어 버리는 엄청난 엘레나의 추진력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페트로와 로사우라의 아기 로베르토의 세례식을 위해 아몬드와 참깨를 넣은 칠면조 몰레를 준비하면서 티타는 요리의 정치를 합니다. 몰레로 아이의 세례식을 성공적을 이끄는 것이 그녀가 이모이자 유모이며 심적 엄마의 역할을 다 하는 것, 대리만족 이상의 기쁨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성대한 세례식을 보며 지신의 집념과 격식이 깨질 것을 두려워한 마마 엘레나는 티타보다 한 수 위에 있기에 딸에게 양육의 기쁨마저 허락하지 않습니다.
●페트로와 로사우라를 멀리 보냈고, 아이를 타타만큼 잘 보살피지 못했던 로사우라는 결국 그곳에서 아이를 잃게 됩니다. 이때 티타는 거의 실성하게 되고, 드디어 마마엘레나의 거친 손바닥에서 벗어나 각성할 기회를 얻습니다.
●불꽃
124쪽. 존의 말.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 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다시 말해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자신의 불씨를 지펴 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영혼은 육체에서 달아나 자신을 살찌워줄 양식을 찾아
홀로 칠흑같이 어두운 곳을 헤매게 됩니다.
남겨 두고 온 차갑고 힘없는 육체만이
그 양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말입니다.”
●티타에게 기회가 영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가족의 주치의 존은 티타에게 반하게 됩니다. 존이야 말로 인간의 외면만 보는 것이 아닌 내면까지 통팔할 줄 아는 심안의 소유자였지요. 그는 조카 로베르트를 친자식처럼 젖을 먹여 키웠던 티타가 아기의 죽음으로 상처입은 티타가 절망에 빠졌을 때 그녀에게 다시 불꽃을 줍니다. 이제껏 누구도 –나차 외에-티타를 티타답게 여겨주지 않았는데 존은 충격으로 자아를 잃어가는 그녀의 영혼을 치유해 줍니다.
이상적인 배우자란 이런 역할이겠지요. 그러나 존의 청혼에도 불구 티타의 운명은 다시 눈물을 한가득 안고 성냥의 불꽃을 요리 속에 잠재웁니다.
의지와 기력을 상실했던 티나는 첸차가 가져다준 영혼의 소꼬리 수프를 먹고 조금씩 마음을 회복합니다.
●11월, 칠레 고추를 곁들인 테스쿠식 굵은 강낭콩 요리를 준비하며 티타는 페트로의 둘째 아기 에스페란사를 키웁니다. 그런데 어느날 에스페란사의 정성들인 기저귀를- 표백을 하고 수를 놓은- 말리고 있을 때 마당에서는 닭들의 싸움이 벌어집니다. 티타의 새 희망은 모두 핏자국이 튀겼고 티타는 존과의 결혼을 망설입니다.
●세월이 지나 티나는 다시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합니다. 드디어 이 결혼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조카 에스페란사와 존의 아들 알렉스의 결혼식입니다.
■●우리들의 소감●■
►억압되고 왜곡된 사랑이다.
►세뇌가 무섭구나. 이기적인 페트로에게 화가 난다.
►요리가 삶인 여인의 살기 위한 몸부림을 맛으로 승화하는 것을 보았다. 죽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것. 맛있다는 게 슬프다. 희미한 내 사랑을 더듬어 보았다.
►책장을 넘기며 흘러나오는 요리향이 흥미로웠다.
►티타의 기분에 따라 체하기도 하고 맛이 맛이 달라지는 소설. 남이에 대한 관심이 생긴다.
►엄마가 딸을 이렇게 대할 수 있나 안타깝다. 다시 내 딸을 생각해 본다.
►요리에 관심이 많았는데 멕시코 특유의 요리가 흥미롭다. 엘레나는 자신의 부정 때문에 막내 딸에게 더욱 완고했다. 페트로는 티타가 더 사랑한 것이다.
►막내딸을 희생시키는 나쁜 관습에 분노한다. 원제목 부글부글 끓는 핫초코. 식욕과 성욕에 대한 이야기
▻조카를 사랑하는 모습에서 그 남자의 분신이라 여긴 것이다. 도넛을 튀기면서 느끼는 부글부글 끓는 기름처럼 뜨거운 페트로와의 사랑도 관습을 팽개치지 못한다.
▻수구꼴통들의 1910년 시대가 보인다. 가부장적 논리에서 수많은 왜곡의 모습이 존재한다. 여인보다 부엌에서 일해야 했던 삶, 하지만 이들 노동계급에서 참된 인격을 가진 지도자가 배출되는 것이다.
▻편견에서 벗어나는 인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존의 인디언 할머니 ‘새벽빛’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그녀를 완성시키고 불꽃을 피우도록 그녀의 남편 즉 존의 할아버지의 역할이 지대하다.
헤르트루디스처럼 발가벗고 뛰쳐나갈 용기가 있다면 자신의 불꽃을 지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녀의 발가벗음이 인간 안에 있는 어떤 편견에서도 해방되어야 할 전투사로서의 탈바꿈일 수 있다.
▻페드로의 사랑법은 잔인한 슬픔을 준 것이다.
❖잘못된 관습으로 억압된 고리는 깨어나야 한다.
❖티타에게 느끼는 동질감에도 불구, 그렇게 살지는 못할 것 같다.
❖시행착오를 통해 분별력을 얻는다.
❖마음이 풍성해진다.
❝이상 5월의 토론 후기였습니다. 이번에는 책이 열정적이었던 만큼 후끈한 웃음과 함께 훅훅 터지는 개인사의 재미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운 여름으로 가는 중이라 그런지 조금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달은 [죽음의 미학]입니다. 심오한 소설이지 않을까 싶은데 모임날을 기대하며 한달을 살아봅니다. 모두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