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나도 돌릴 수 있다면,
어느 때로 돌아갈까?
수 없이 생각해 본 말이다.
크리스마스 연휴라고 배달 음식을 시키기도 했고 선물 받은 쿠폰으로 케이크도 사 먹었다.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시간들 속에 텔레비전을 켜는 일이 가장 많았다. 무엇보다 올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도시를 한 바퀴 걸었던 기억으로 추억될 것이다.
의외로 순순히 따라 나와주는 청소년 두 명은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라는 명분보다, 자기들도 코로나 칩거가 지치고 지쳐 모 한 번쯤은 이렇게 동행하는 것이 당연한 듯 여유 있게 '동네 한 바퀴'라는 말에 속아 몇 킬로를 순회했다. 시작은 사람들이 많지 않을 동네 어귀 산 공원이었다. 일단 가 보니 아이들과 나는 처음 오는 곳도 아니어서 기억의 어딘가를 더듬으며 '그때 이곳에'를 연달아 공유하며 '그때는 그랬지.' '그래서 그랬잖아.'라는 대화를 연발했다. 크면서 이런 동행과는 너무도 거리를 두고 살게 되다니! 모처럼 잘됐다. 함께 호흡하니 즐거웠다.
산 언덕에서 저 너머 다른 동네를 바라보며 높이 솟은 크레인들 사이 우리가 이사할 동네도 바라보았다.
"아마도 내후년 이 시간, 어쩌면 저곳에 있을지 몰라!"
"오늘도 거기에 가 있어 보자."
"마음대로!"
하며 모두 동의하여 생각보다 먼 거리를 걷게 되었다.
그래서 산을 내려가 그 공사 현장 동네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가며 골목골목 지름길을 발견해내고 미처 몰랐던 이웃 동네를 탐색하며 신나게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아이와 손을 맞잡기도 하고 남편과 팔짱을 끼기도 하고 횡단보도를 몇 개나 건너 건너 산 위에서 보았던 지점을 향해 걸었다.
요즘 그곳으로 향하는 것은 저절로 하나의 추억이 쌓이는 유희 같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큰 진보 없는 남편과 나의 삶 속 하나의 이정표였다. 그곳을 위해 부금을 갚고 미래를 설계한다. 저녁을 먹고 나면
"산책 갈까?"
하고 남편과 둘이서 운동삼아 걸으며 가끔 둘러보기도 했다. 공사장 건너편 정거장 벤치에 앉아 층이 하나하나 올라가는 것을 보며, 내심 창틀이 끼어진 우리 층을 보고 잠깐씩 환상에 젖기도 했다.
"저곳이 우리 인생 마지막 집이겠지?"
"아마도!"
건너편 정거장 벤치에 앉아 잠시 바라보다가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나 공사장 주위를 한 바퀴 돌고 지금 사는 집으로 돌아오면 두 시간 정도 걸렸다. 그 거리를 걸으며 오래된 구도심의 낡은 거리, 상점과 집들을 구경삼아 오래오래 눈에 담아오곤 했다. 몇 년 후면 모두 아파트촌으로 바뀔 곳이다. 그곳을 모처럼 크리스마스날 아이들과 함께 걸었다.
워낙 걷기를 좋아하는 부부가 크리스마스 연휴를 이렇게 가족과 걸으며 보내는 것도 시국 때문에 제한된 운동이었으나 덕분에 어쩌면 미처 느끼지 못할 일상의 그리움이었을지 모른다. 정말 너무도 소소해서 이게 무슨 이야깃거리가 될까 싶을 정도로 작지만 소중한 그리움이 오늘도 이렇게 쌓인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게 얼마나 축복인지!
내가 청소년이던 시절 나는 다른 모습으로 거리를 걸었던 적이 있다. 자주 혼자였고 온통 땅만 보고 걸었다. 옆집 아줌마가 우리 집에 귀띔해 줄 정도로 저절로 숙인 고개가 그때는 나를 대변하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힘없이 걸었다.
'이렇게 보도블록을 눈감고 10발짝만 가면, 그곳에 서 계실지도 몰라.'
가방을 멘 채 무언가에 부딪칠지도 모를 인도를 눈감고 걸으며, 떨리는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떼어 본 적 있는가. 아니면 그런 아이를 본 적은? 아! 잠시 후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정말 치사하리만큼 인정머리 없게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 왜 기적이라는 게 나에게도 일어나면 안 되는 걸까? 응? 나도 그 신의 혜택을 누려도 될 만큼 착한 아이는 될 텐데.... 버스에서 내리면 손을 흔들어 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뿌옇게 간직한 채 나의 청소년기는 외로움의 시간 속에서 땅끝만 바라보며 서서히 성장했다. 이후의 일들을 말해 무엇하랴.
그러던 내가 10년, 20년, 30년 언제 그 세월이 다 지나갔지? 정말 뇌 속 도파민이 과다 분출되어 복잡하게 꼬여 기억을 못 하는 것처럼 갈수록 빨라지는 나이의 시속을 절감하며 오늘이 된 것이다. 그새 나는 이제 없으면 안 될 동반자와 건강하게 커 주는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언젠가 정말 인내심이 폭발했다. 내겐 왜 이런 시간을 주셨냐며 화가 치밀어 오른 날이 있었다. 그래서 하늘에 주먹다짐하며 내 깐에는 신에게 맡겨놓은 듯 강제로 약속이라도 받아 내야겠다 싶었다. 뭐 이렇게 어려울 수가 있냐고, 내 언덕을 다 불러가시면 어떡하냐고, 그럴 거면 진짜 내게 내 어머니가 못다 살고 간 시간을 달라고! 살다 보니 그렇게 미쳐갈 때도 있었다. 그때 진짜 주신 걸까? 그때 객기 어린 생각처럼 그러면 아직 내게는 유예기간이 좀 남았으니 아직 마냥 마냥 이 시간을 즐겨도 될까?
하지만 내 속 진실도 사실은 그건 다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고 신의 섭리는 내 생각과 다를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신이 원망스럽지만 두려웠다.
이런 자기 최면 시도 탓인지 나는 어떤 시간이 되면, 쉽게 데자뷔를 느끼고 이것 어디선가 언제 본 듯한 상황인데 나 시간을 중복으로 겪는가 싶어 스스로 헷갈림 속에 시간을 방황을 하는 때도 있다. 뭐 단순 치매의 그림자일 수도 있겠으나 진짜라면 오히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니까! 시간이란 참 옛날 어떤 시조처럼 동짓달 허리 베여다가 임계실 때 쓰면 좋겠건만!
그 기술은 아직 인류의 과제이지 아마도...
그런데 이게 종종 영화 속에서는 재현된다.
크리스마스라고 한 일이 가족과 걷기라지만 나는 참 흡족하게 지냈으며 구도심, 거기에서도 변두리에서 느끼는 한산함과 함께라는 만족은 산타와 상관없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래도 밤이 되자 다시 적적해진 나는 성탄 영화를 서핑하며 혼자 크리스마스 시즌을 만끽했다. 다시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성탄 영화에 빠지다니, 역시 시즌은 그 기분을 내야 더 즐거워지는 면도 있었다.
그러다가 찾아낸 것이 '어바웃 타임'이다. 기막힌 타이밍이지 않은가!
이 영화는 성탄 영화도 아닌데 마구 검색을 하다 보니 내게 뚝 떨어졌다! 이런 걸 운명이라 한다.
출처-다음영화 이미지
주인공 팀의 시크한 어머니 메리 여사는 보면 볼수록 나와 싱크로율이 높아졌다. 이건 개인적 취향이라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녀는 상황을 명확하게 판단하여 이성의 명령을 정확히 준수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차가운 여인 같으나 사실 상당히 신뢰감 깊고 정이 많은 어머니였다. 정작 주인공은 어머니 메리가 아니라 팀이 런던 생활을 하며 한눈에 반하게 되는 출판사 직원 메리였다. 전형적인 직업에 수줍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그녀는 자유분방하고 열정적인 매력이 있었다. 한눈에 반한 그녀와 가까워지기 위해 팀은 얼마 전 알게 된 자신의 비밀-시간여행-을 사용하게 된다. 그걸 이용해 가까스로 그녀와 사랑에 빠지다니, 그래서 이 지점에서 난 좀 불안했다. 이러한 사랑이 견고하게 유지될 수 있을까.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 팀은 너무도 선하고 책임감 강한 캐릭터였다. 그리고 매순간 성실하게 메리에게 최선을 다한다. 풋풋한 로맨스에 점점 영화에 빠져든다. 하지만 영화 관전 포인트는 이 로맨스가 아니다. 그가 자신의 가문 남자들의 마법 시간여행을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은 날 이후 자신의 운명을 번복하면서 되돌린 시간의 가치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출처-다음 영화 이미지
내가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단지 과거가 너무 훌륭해 버리고 싶지 않아서가 아닌 것처럼, 인간은 대부분 과거 어느 순간 머물고 싶던 한 지점이 영원한 향수로 존재하고 때론 너무나 간절히 그때를 그리워하기에 선택지가 있다면 가고 싶은 염원이 존재한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할까?
그러고 싶은 마음은 가득 차지만 그로 인해 바뀔 운명에 대해서는 감당할 수 있는가. 물론, 개인의 흑역사는 지우는 게 트라우마 치유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시간여행은 어쩌면 스스로도 역행하는 순리의 배반 아닐까? 불가능에 대한 신기루일 뿐...
그렇지만 그리운 사람과의 시간은 너무도 간절한 것이라 어린 시절 나 자신도 되돌려 가 보려 했던 것 아닌가. 거리에서의 기대했던 마법은 비현실인 것을 알면서도.
혹 그리운 그들을 다시 만난다면 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을까? 영화에서 처럼 다시 그 시간을 살고 살아온 지점으로 다시 되돌아오면 미래의 삶이 그냥 이어질까? 여전히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 보면 진짜로 과거로 갈 자신은 없는가 보다.
이미 내가 지나온 시간 속에 그려진 내 삶이 힘듦도 많았지만 다시 지나쳐오기 어려울 것 같다. 영화처럼 벌어질 일을 알면서 천연덕스럽게 그대로 살아낼 자신도 없는 것이다. 또 무언가 바뀔지 모른다면, 나는 지금의 내 소중한 가족을 포기할 수 없거니와 다시 삶을 살아낼 자신도 없다. 아, 내가 이런 용렬한 자인 줄 몰랐다.
오늘도 길을 걷다 문득 생각나는 과거가 있어 병에 걸려있다 여겼으면서 막상 돌아갈 자신은 없다, 그저 가슴 한쪽 마지막 그날 이후 뚫린 구멍 속에 깊은 한숨과 그리움 조각만 모아둘 뿐이다. 진정 과거를 벗어나 현재를 충실히 살고 싶다. 아프지만 언젠가 내 삶이 다 하고 영원의 운명의 고리에서 그분들은 꼭 다시 뵙고 싶다...
시간은 그런 것 같다. 회한이 쌓이고 내 손이 나날이 달라지고 하나 둘 삐꺽거리는 신호에 우울해지는 게 현실이지만, 다시 돌아갈 자신이 없다. 하지만 가끔 사무쳐오는 일들은?
시간의 몫이다. 그걸 추억이라고 하는 것이다. 길을 걷다 본 조명가게의 트리의 별 모양을 보고 갑자기 쑥 치밀어 오른 함께 별을 달며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던 기억, 내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고 그걸 만들어 준 아버지가 있었다는 것. 호랑이 같던 아버지도 기억 속에 묻혔던 아기자기한 손길이 있었고 그렇게 젊은 아버지를 다시 느끼며 가슴 아려오나 이걸 슬픔이 아니라 추억이라 하자 여기며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는 이 시간들. 시간의 선물이다. 이 시간에 대하여 함께 묻어 나오는 수많은 기억조차 앞으로 가야 할 시간들을 위해 가슴속 아련함으로 묻는 게 인생이었다는 것을 복기해 본다.
뭔가 짜릿해야 하고 뭔가 꼭 특별하지 않아도 순간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낀다는 것. 그냥 걷기만 해도 즐거울 수 있는 마법 같은 현재의 모습, 또 까먹지 말고 지금을 누리는 것. 팀은 언제든 시간을 돌려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도 있지만 이제 과거 여행은 포기한다. 순간의 최선을 그리며 가슴속 추억을 담으며 그렇게 미래를 살아간다.
그래야 한다는 걸 몇몇은? 아니 많은 이가 알고 있다는 것. 나도 아파하며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시국에 걷기의 시간도 최선이었다는 것! 이건 모두의 이야기이다. 어바웃 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