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신발을 위한 글

낡아서 꼭 깊은 것은 아니어도

by writernoh

실제로 보면 정말 반 고흐의 습작시 스케치처럼 낡디 낡은 잠수함이었다.


뒷굽도 닳아 이젠 좀 버려도 되지! 싶은 그것.

12월 31일을 계기로 헤어질 것인가. 노노우~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두고 신발장에 고이 고이 간직할 이유가 생겼다.


들어봄 직한 고전적 음악가의 소나타도 아닌 고작 냄새나는 신발에 대한 사색적 이야기.

끈기가 없거나 대단한 것을 기대하신다면 여기에서 멈추셔도 좋습니다. 제 글은 졸작입니다. 난감함이 들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벌써 5년쯤 됐다.

"나 발이 안 맞아서!" 하며 누군가 던진 말,

"혹시 너 신을래? 너 신발 무지 커야 한다며? 이거 진짜 가죽이야."

가죽이라서보다, 잠수함 같은 비주얼이 압도적이라 신고 다니며 누굴 헤칠지도 몰라 싶은 부담스러운 저걸, 일단 신어보니 쑥~들어가서 맞아들였다. 바로 절차탁마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이게 겨울에 두꺼운 산악 양말을 신어도 불편하지 않고 걷다가 어디 부딪혀도 충격이 덜 해서 제갈길 가는 이의 발걸음에 부담되지 않는 쓸모가 있었다. 한두 해 신었더니 너무 늘어나 진짜 가죽임은 알겠는데, 더 늘어나 커졌으니 혹시나 싶어 깔창을 끼웠다. 발바닥 느낌이 아늑했다. 하지만 가죽의 자체 증식은 멈추지 않아 이걸 어쩐다 싶어 가만 보니 발등에 벨트를 조일 수 있었다. 한 번도 뚫린 적 없는 새초롬한 구멍에 고리를 끼워 조여 신으니 헐떡거리지도 않고 착용감이 더 좋아졌다.


어쩌다 마주친

"어머, 아직도 그걸 신어?" 하는 원주인의 알아봄에 민망함보다 내심 찐한 친밀감? 편안함 고마움, 뭐 이런 감정의 산이 밀려왔다. 그래서 정말 낡은 신에 길들여지게 되었다.




신발장에 제법 많은 신이 있었다. 그것도 몇 번 신지도 않은 신. 방문을 하다 보면 뒤축이 닳아있는 것은 실례라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어 직업상 이미지를 위해 유난히 빠르게 오른쪽 축이 닳을 때마다 하나씩 사들였는데 정작 갈수록 느는 발의 치수 때문인지 발의 수난사 때문인지 더 이상 그들을 신을 기회가 없었다. 심지어 웨딩슈즈와 신혼여행 가긴 전 인사할 때 딱 한번 신은 힐까지도 그 이쁨을 뒤로한 채 세월 속에 신발장 신세였다. 설사 연예인 정도는 아니지만 점점 불편해지는 신들의 자리가 부담스럽게 된 어느 날 새롭게 맞이한 사이즈 큰 것 몇 개를 제외하고 결국 모두 기부해 버렸다. 포대에 넣어 실려간 그들은 누군가의 발이 되어주겠지.

그 후 신발장에는 구두류는 희박하고 운동화, 단화 심지어 효도화 까지! 주류였는데 그나마 운동화마저 발을 배반하고 방치되어 있다. 그간 발이 겪을 수 있는 수난과 그로 인한 깁스 기간의 사연들은 생략하고.. 점차 변형되어가는 삶의 모습인양.. 갈고 닦이어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래서 존재하는 지금의 그 허울을 혼자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다. 왜 구두장인들은 아직도 한국인의 발 사이즈의 진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전족처럼 작은 신발들만 만들고 있는가! 개미허리 치수의 옷만 만든다는 패션의 상업의도 처럼 작은 발이 아름다워 자기 제품이 이쁘다는 평을 듣고 싶은 것일까. 각설.



그러다가 작년 초가을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났다가 어둠 속에 벽 모서리에 발을 부딪쳤는데 그 통증이 제법 심각했다. 보통은 시간이 지나거나 쎄쎄~하고 붙들고 비비고 나면 제법 사라져야 하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 칼같이 날카로운 통증은 이거 예삿일 아니다 싶었다.

날이 밝아 병원에 가니 당장 수술을 해야 한대서 바로 두 주간 병원 신세를 졌다. 그 한방에 발가락이 절단난 것이었다. 보름 후 빨리 걸어야 했기에 반깁스를 딛고 다닌다고

"이 환자 역대 최강이네! 말 무지 안 들어."

소리를 들으며 두 달을 목발을 짚었다. 몇 번째 발가락이 부러지는 경험을 하고나니, 못된 자신감이 생겨 너무 빨리 열심히 노력한 탓에 빨리 아물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때 박은 심을 아직 꺼내지 않았다. 의사 말이

"몇 개월 후에 빼고 싶으면 빼고! "였다. 후유증 때문인지 근 일 년간 부어있던 발이 지금은 가라앉기도 했고 또 입원하기 귀찮아서 그냥 살기로 했다. 가끔 자석이 와서 붙으려나 하는 의문이 생기긴 했다. 그러나 누군가

"야, 그냥 철을 몸속에 넣지는 않겠지. 녹슬지 않게끔 처리한 거고 티타늄 같은 거, 그러니 자력은 없지!"

아, 그렇구나. 영화 같은 일은 없겠네.


그 발로 올초 미리 예정되어있던 항일 독립운동 답사 일정을 강행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내가 더 잘 알아야 일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신념에 포기할 수 없었다. 코로나가 창궐됐는 줄 모르던 지난 1월 초 광저우, 난징, 상해에 다녀왔다.(내가 돌아온 날부터 바로 국내에는 코로나 이슈가 되어 오이 밭에서 갓끈 아닌 신발끈 맨 마음으로 상당히 불편한 시절을 보냈다.)

거길 가면서도 잠수함을 싸들고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깐 하며 짐을 불렸다. 아직 목발 놓은 지 얼마 안 되긴 했는데 역시 잘 가져간 게 되었다. 유명 관광지가 아닌 도보코스로 산속 무관학교를 찾아다니는 등의 코스로 치장된 답사는 인생 기념비적 여정이 되었다.


윤봉길의사 유적지 훙커우 공원에서 활약한 잠수함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상해의 밤, 화려함을 뒤로 드디어 신발이 말을 걸었다.

"나 수명이 다 됐소."하고 장렬한 의미를 보내며 발바닥에 스멀스멀 물이 스며들고 있었다. 화려한 21세기 도심과 참으로 대비되는 내 발바닥 속 비밀... 남모를 고충 속에 유난히 많이 걷던 그날, 한발 한발 물이 흐르던 일은 추억이 되었다. 숙소에서 밤새 말리며.

"넌 장렬했어." 이제 돌아가면 버려도 되겠다고 여기고 신발장 안에 넣어 둔 것이 아직 남아서 다시 한 해를 보내게 되었다.





가을부터 다시 잠수함을 꺼내 신고 다녔다. 그러다가 지난주 문득 그냥 걷다가 수제화 구두방을 발견하고 새 신을 신었다. 새 신을 신은 발을 보며 말수 없는 주인 할아버지가

"보기보다 작네."그러신다. 같이 있던 이도

"어? 너 발이 그렇게 작은지 몰랐다!" 아, 그간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낡고 큰 스케일만 보았구나.




사람들은 인간의 껍데기만 보지 그 안 까지는 모르는구나. 침소봉대 별거 아닌 깨달음이 상기되는 일이었다. 그날 하루 종일 새신을 신고 뽐내고 다녔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잠수함을 꺼냈다. 새 신이 신고식 하느라 작년에 부러졌던 네 번째 발가락이 붓고 물집이 잡혔다. 방구석에 앉아 내내 물집이 터지기를 바라다가 지난 주말부터 잠수함을 신고 돌아다녔다. 잠수함은 그 일(물집이 있어 터지질지언정 걸으리)도 해냈다.


며칠 후 상처는 딱지가 지고 아직 잠수함의 도움으로 소소한 걸음을 걷고 있다. 새 신은 조만간 다시 시도해 보련다. 그래도 왼발은 아주 아늑하기에 점차 익숙해지겠지. 다시 잠수함을 신고 다니는데 왜 이리 만족스러운지, 굳이 버릴 필요는 없겠더라. 반미니멀리스트가 되더라도 잠수함과 인연은 좀 더 느긋이 이어보자.




오늘 아침 어떤 브런치 글을 읽으며 화들짝 놀랐다. 왜들 그렇게 신변적인 이야기만 쓰고 수준이 떨어지는 것을 게시하냐는 어느 작가님의 글과 그에 달린 수없이 동의하는 댓글들을 보며 허탈했다. 왜? 타인의 감정 속에 풍덩 빠져들기는 했고? 그의 에스프리든 넋두리든 그가 쓰고 싶어 쓴 글을 사랑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누군가의 쓰고 싶은 욕망일 뿐인데 그것을 폄하하는 그 글에서 글쓰는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왜들 그리 함부로 생각할까. 개인의 창작지대를 어떤 기준으로 있다없다 논하려들까! 그래서 마침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내가 나이들면서 대부분 그렇듯 좀 유해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화가 날 때는, 위와 같을 때처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그 표정들을 마주할 때이다. 자기가 필요할 때는 언제든 훅 들어와 가까운 사이처럼 굴다가 원하는 뭔가를 이루거나 생각과 달랐을 때 간 다보고 싹 가시는 관계의 니즈들을 가진 얼굴들. 그러고 나서 다시 잠수 타듯 손절하는 표정들. 그러고 또다시 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 친절한 이가 되어

"우리 친했죠!"하고 들러리로 만드는 깃털처럼 가벼운 웃음들. 아무 때나 포커페이스를 하며 영혼 없는 입가에 띄우는 차가움.

사회생활 잘하는 것을 돋보이며 화려한 화장과 몸의 액션을 들여 꾸며대는 겉모습 속에 누가 아니랄까 봐 그의 본질이 보이는 순간, 스스로가 너무도 우매하여 인간을 또 믿었구나 하며 나는 인간을 너무 사랑해~하며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글쓰는 이가 타인의 글에 대하여도 그래야 하는 걸까? 비평이 아닌 비난은 말지어다.

자주 듣는 말이

인간이 원래 그래! 하길래 그런가 보다 했으나 조금 더 진득하니 바라봐 주지 못하는 경솔함이 큰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주위의 왜곡된 파장을 만들어 내는데, 그는 착각의 화장을 지우며 무슨 생각을 할까. 사실 알고 싶지 않다. 나도 내 착각에 빠지겠다.




어젯밤 이제 연말이라는 자족에 휩쓸려 초등 때부터 이어온 친구랑 모처럼 한밤의 통화를 했다. 그간 왜 톡만 하고 전화 한 통 안 했을까 싶을 정도로 참 오랜만이다.

"잘 지내지? 우리 1월에는 만나게 되면 좋겠다." 오래된 친절함. 이렇게 편히 대화 나눌 친구가 있음에 기뻤고 감사하며. 그래서 내 낡은 신발의 쓸모와 그 존재감에 대해 투시를 하며 사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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