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공부시간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의 삶 1

by writernoh

오늘도 새벽잠을 벗어났다. 어제 도착한 자료책은 깔끔하고 가볍게 책상 위에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손대지 않은 이전의 것들이 새큰하게 손길을 기다리고 있으나 이것부터 책장을 넘기자. 이러고 분석에 들어가는데...

어제 끝낸 책 위에 마침 우주인의 형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

피곤에 쓸려 잠시 눈을 붙인다며 램프를 켜고 잠든 것이었다. 밤새 이 방의 우주를 즐기라고.

3시쯤의 새벽에 눈을 뜬 자는 그 때문에 더 빨리 사고에 몰입할 수 있었는데 그 때문에 비친 주위의 모습이

옛날을 회상하게 했다.




문득 아주 오래전 지금 빛과 같은 그날 밤 나는 다락방에 혼자였다. 램프 빛에 의존하여 그 빛마저 밖으로 세어나갈까 봐 의자에 앉은 채 스탠드를 책상 밑으로 내리고 몸도 수구리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굳이 그런 자세일 필요는 없었는데...

내가 주방장 소임을 맡고 가계부 정리가 안되어 특별 허가 하에 10시 이후 불을 켜고 끝나지 않은 일과를 혼자 이어가던 중이었다.

학생이던 나의 우주는 수도자의 삶을 선택해 지고지순한 영성의 세계에 순응하고 싶었다.

수도자의 삶을 선택하고 새로운 공동체에 소속된 나는 가나다순으로 소임이 주어졌는데

그런데 가자마자 주방장이었다! 이게 나에게 참 복병이었다. 주방 살림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 맡겨진 너무 큰 소임이었다. 단지 식단표를 짜는 게 아니라 알뜰하게 식비를 사용하는 부담이 첫 번째 고난으로 다가왔다. 맡겨진 것은 어떻게든 해보자는 주위의 어린 수도자의 과묵함은 언뜻 교만함으로 비추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여태껏 모르는 것을 일일이 물어가며 성장하지 않았다.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든 나 혼자 해결하며 버텨왔던 삶이다. 그러니 그 시절 주변에서는 알아서 척척 해낼 것이라 여겼는지 몰라도 나는 상당히 물속에 오리발을 동동 구르고 울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저 도움을 청할 줄 몰랐고 어떻게든 바위를 들쳐 올려야 한다는 사고의 어리숙한 아이였을 뿐이다.


규칙은 이미 모든 불은 소등하고 완전한 침묵 속에 잠이 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장보고 난 후 계산이 맞지 않아 불안한 나는 이대로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수도원 꼭대기 다락방에서 가계부를 정리하는데 ...토포러처럼 세속을 끊고 주어진 삶 속에 동면하듯 살고자 했건만... 몇 달 전만 해도 세속의 공부에 몰두해 있던 나를 발견하고 말았다. 그 많은 영단어와 지식을 쌓으며 얼마나 밤을 지새웠던가. 합격의 기쁨을 조촐히 맞으며 잠시의 봄날을 누리던 내가 그 모든 것을 접고 여기 들어앉았다.

어쩌면 오지 않을 삶이건만, 이러고 밤새 책을 들여다보고 장꺼리 물건 계산이 아니라 그때처럼 새로운 지식을 쌓아가는 나를 상상하며 책만 보며 사는 삶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보았다.

(그 때문이었을까. 지금도 밤낮 주말도 없이 책의 내용을 다듬는 게 업이 되어 버린 것이다! ㅋㅋ)

당시 생각조차 나의 것이 아닌 소임대로 순명해야 하는 도구로서의 삶이 다른 사회적 상상력을 띄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감지한 것이다. 그때는 그게 불순한 생각이라 얼른 떨쳐버리고 다시 고요한 공생활의 호수에 몸을 담가야 한다고 나를 다그쳤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생각의 발로는 순수한 영과 자그마한 우주를 가진 이에게 무척 도발적 상상이던 것이다.



어느 날 단지 내 생각과 다른 공동체의 모습을 보며 굳건히 설 수 없다 여기며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아마 침묵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어린 마음에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다. 타인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가족주의가 얼마나 공동체를 위협하는지 나로서는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그런 이유로 스스로 문을 열고 그곳을 떠나 돌아간 가족은 얼마나 냉혹하고 아팠는가.

그때 이미 나를

출가시켰던 부모님은 나하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기가 또 부담이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나는 그저 어린 아이였을 뿐인데 박차고 나오니 가족에 붙여 달라고 애쓰는 형국이었으니 나의 20대는 왜 그렇게 비참하다고 말하는지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새벽 어스름 불빛에 다시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그때가 잠시 떠올라 적는다는 것이 이것저것 과거를

소환해 버렸다. 다시 업으로 돌아갈 시간. 해뜨기 전에.

To be 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