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방을 어색하리만치 오래간만에 문을
두드려본다.
무더운 여름, 더위를 느낄 틈도 없이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외로운 몸부림이 끊임없이 진행되었다.
아침마다 회사 건물을 들어서려고 할 때의 그 긴장감, 조금씩 익혀져 가기는 하지만 아직도 낯선
인사와 이곳에서의 매너로 나의 뇌를 다시 한번 재
정돈하고 문을 여는 떨림의 아침은 여전하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함께 일하는 한국인 동료들이 있었기에 일이나 언어면에서 서로 도와가며 세밀한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었지만 다른 주로 이사를 가거나 한국으로 돌아갔기에 이제는
정말 혼자가 되었다.
일하는 동료들이 대부분 20-30대에다 영어와 스페니쉬를 자유롭게 쓰는 친구들이어서 나의 화통
하지 못한 성격상의 위축과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특히나 우리 문화와는 많이 다르게
서로 편하게 이름을 부르고 자신의 생각과 농담도
나이나 위치에 상관없이, 서슴없이 건네는 곳이기에
나의 몸에 축적된 습관과 자유롭지 못한
언어라는 장벽 앞에 더더욱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 낙심을 거듭하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너무나 불편한 자리가 싫어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나만이 아닌 우리 아이들과 다른 동료들을 생각하며 꾹 참고 하루에도 몇 번씩의 오르락
내리락하는 감정선에 시달릴 때, 남편은 내게 말했다.
“그냥, 내 자신의 부족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 버리라”라고.
“이제 당신은 처음 배우는 것이기에 0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니까 차근차근 오르면 되고,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이 무가치한 것이 아니라 나중에 뒤돌아
보았을 때 당신을 탄탄하게 세워가며 더욱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거야”라고.
오히려 복잡했던 내 머릿속이 정리가 되는 듯했다.
지금의 내 모습은 과거의 결과물이며 그런 나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나의 자존심이 아직도 살아서 틀을
깨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는 오히려
나를 오픈했다.
친해진 어린 동료에게 “너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줄 테니 이곳에서 쓰는
영어를 가르쳐 달라 “고 부탁을 했다.
젊은 친구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는 K팝과 K드라마를 통해 좋은 이미지가 전해져 있었고,
자신의 부모님도 이민을 왔는데 오로지 지금까지
사용했던 자신들의 언어만 고집하는데 배우고자 하는
너의 열정이 맘에 든다며 틈나는 대로 조리기구의
이름부터 일상생활 속의 표현들을 가르쳐주고
말해보게 했다.
똑같은 상호나 가게 이름들의 발음들이 완전히 다르게 들렸고 R, L, W발음들은 항상 못 알아듣고는 한참 스낵을 설명하는데 ‘뭐, 뱀을 먹었다고?, 쌀(rice)을 얘기하는데 ’ 머리에 벌레(lice)를 얘기‘하면서 한바탕
웃고 떠들며 많은 대화는 할 수 없어도 못 말리는
친구사이가 되어 갔다.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언어를 빨리 습득하고 적응을 잘하는 젊고 똘망한 친구도 미래의 전문성을
함께 준비하자고 얘기하면서 이곳에 왔으니 편하고
친숙한 언어만 선호하지 말고 모든 환경을 많이 접해보고 집에서 끊임없이 영상의 도움을 많이 받아보라는 자신의 경험을 얘기해 줬다.
가는 곳곳마다 성조기가 펄럭이고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행사에 그 한 밤중에도 자신들의 국가에
모두가 일어나서 온 전심을 다하는 대단한 자부심의 나라에 눈물겨운 서러움을 호소하는 소수 민족들이
그래도 도전하고 함께 나아가는 이 현장에 나도 어떤 그림을 그려 나갈지 알지 못하지만
그분의 부르심과 사명 앞에 할 일이 있음을 믿고
특히나 마음이
쓰이는 우리 후대와 청년들이 더 많은 기회와
도전의 장이 펼쳐질 수
있도록 마음을 간절히 담아본다.
이제는 아무리 그 질긴 무더위도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내어 줘야 할 때 내가, 그리고 우리 가족과
이웃들이 자신들의 현장에서 다시금 일어나고
살아나고 꿈을 꾸는 시간표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