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림읽기

스탕달 신드롬

귀족 정치에 대한 저항의 상징_베아트리체 첸치

by marco

스탕달 신드롬


" 역사적으로 유명한 미술품을 감상한 사람들 가운데 순간적으로 가슴이 뛰거나 정신적 일체감, 격렬한 흥분이나 감흥, 우울증, 현기증, 전신마비 등 각종 분열 증세를 느끼는 현상 "


스탕달 신드롬은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이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그로체 성당에서 귀도 레니의 <베아트리체 첸치>의 작품을 보고 황홀경에 빠진 경험에서 유래되었다.



귀도레니_베아트리체 첸치.jpg 귀도 레니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


베아트리체 첸치


1599년 9월 11일 아침 8시 로마


산탄첼로 광장에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광장에는 막 사형집행을 당해 사지가 찢긴 남자의 시신과 머리가 잘려 피가 뿜어대는 한 여인, 그리고 시퍼런 칼날을 자랑하는 핏빛 단두대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검은 천 가운을 입은 아름다운 16세 소녀 "베아트리체 첸치"가 마지막 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단두 대위의 세 남녀는 무슨 죄로 산탄첼로 다리 위에서 운명을 달리하고 왜 그들을 귀족정치의 저항이라 생각하고 안타까워하고 있을까?


프란체스코 첸치는 로마 백작으로 불같은 성격, 비도덕적인 행동으로 이미 로마에서 유명인이었다. 가족을 학대하고 괴롭히는 아버지를 신고한 딸 베아트리체를 겁탈했고, 그녀를 그녀의 계모 루크레지아와 함께 시골에 있는 라페트렐라 성으로 보냈다. 모진 학대와 겁탈은 라페트렐라 성에도 이어졌고 그녀의 가족들은 아버지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1598년 프란체스코가 성에 머무는 동안 그녀의 오빠 지아코모와 어린 이복 남동생 베르나르도, 그리고 계모 루크레지아는 프란체스코를 망치로 때려 죽인 후, 시신을 발코니에서 던져 사고로 위장한다. 첸치 집안의 가족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로마인들은 프란체스코의 죽음을 사고로 믿지 않았고 결국 교황의 치안대에 의해 음모가 밝혀져 사형을 선고받는다. 살인의 동기를 잘 알고 있는 로마인들은 판결에 항의했지만 교황 클레멘트 8세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단두대 칼날의 새빨간 핏물이 씻겨져 나가고 베아트리체의 형이 집행된다. 사형 집행관은 최대한 시간을 끌며 교황의 자비를 기다리지만 칼날은 그녀의 머리를 날려 단두대 옆으로 굴러 떨어뜨린다.


수 많은 로마 군중들 사이, 이 장면을 유심히 지켜본 세 사람이 있었으니 유일하게 처벌을 면한 베아트리체의 어린 남동생 '베르나르도', 그녀의 미모에 마음을 빼앗긴 '귀도 레니' 그리고 그녀의 처형 장면을 날카롭게 관찰한 '카라바조'였다.


그녀의 남동생은 사형은 면했으나 가족의 처형 장면을 직접 보아야만 했고 다시 감옥으로 갔으며 첸치 집안의 재산은 교황의 재산으로 몰 수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사형 집행 장면에 영감을 받은 귀도 레니는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을, 카라바조는 <홀로페르네스를 목 베는 유딧>을 남겼다.


아직도 매년 그녀의 처형일 전 날, 로마의 산탄첼로 다리 위로 그녀가 자신의 머리를 손에 들고 돌아다닌다고 하니 9월 10일 밤은 산탄첼로 다리에는 가지 않기로 하자.


엘리자베타 시라니_베아트리체 첸치.jpg 엘리자베타 시라니 <터번을 쓴 여인>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 모사작

엘리자베타 사라니는 자신의 스승인 귀도 레니의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 모작인 <터번을 쓴 여인>을 그렸으며 후새에는 엘자베타 시라니의 모작이 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루브르 박물관' 에 소장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