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 외전 '유디트'
외전의 원어 apokrypha는 〈숨겨진 것〉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고대교회에서는 이단적 내용으로 배제되어서 숨겨져야 할 서적이라는 의미로 가리키는 경우가 많으며, 구약 외전은 거의 『70인 역 성서』에 있어서 헤브라이어에 포함되지 않았던 구약성서 문서와 일치한다. 유디트서는 그리스어로 BC 2세기부터 AD 1세기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비록 실제 역사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긴 하지만 실제 상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어려움을 겪었던 이스라엘의 백성들에게 힘이 돼주기 위해 만들어진 역사와 전설에 관한 내용이다.
기원전 6세
이스라엘 산악도시 베툴리아
화려하게 치장한 아름다운 여인이 늦은 밤 도성을 나선다. 어두운 숲 속에서도 그녀의 눈빛은 결의에 찬 사명감으로 빛나고 있어다. 어두운 숲을 지나 그녀가 향한 곳은 홀로페르네스 장군이 이끄는 아시리아 군의 초소였다. 많은 군인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고 홀로페르네스 또한 그녀를 보고 품에 넣고 싶어 했다.
아시리아 왕국
기원전 25세기부터 6세기까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가장 강성한 왕국으로 흉폭한 정복전쟁을 펼쳤다. 항복한 적의 가죽을 걸어 놓기도 했으며 왕 외의 다른 모든 신들을 믿지 못하게 하였다. 결국 넓어진 영토를 주체를 못하고 분열되고 만다.
아시리아 왕국의 흉폭한 정복 정책으로 분열되고 세워진 신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은 계속해서 홀로페르네스를 앞 장세 워 정복 정책을 이어간다.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길목의 위치한 베툴리아를 정복하기 위해 홀로페르네스는 외곽에 진지를 구축하고 수원지를 점령해 베툴리아 스스로 무너지기를 기다렸다. 한 달 정도가 지날 무렵, 베툴리아의 저수지는 바닥을 들어내고 베툴리아 내부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베툴리아의 한 과부로 스스로 베툴리아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 이 과부는 3년 전 병으로 잃은 남편의 재산을 물려받아 부유했으며,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경건한 생활로 평판이 좋은 "유디트"였다.
유디트는 뛰어난 미모와 언변으로 느부갓네살왕을 찬양하고 홀페르네스를 칭송하며 신임을 얻었고 홀로페르네스도 유디트에게 매혹당했다. 유티트를 탐하고 싶어 했던 홀로페르네스는 연회에 그녀를 초청했고 천막에는 술에 곯아떨어진 홀로페르네스와 유디트와 단둘만 남게 되었다. 그녀는 곯아떨어진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칼로 두 번 내리쳤고 검붉은 피는 그를 휘감고 있는 흰 담요에 흩뿌졌다.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는 바닥에 나뒹굴고 그녀는 시녀를 불러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가지고 다시 베툴리아로 돌아갔다.
베아트리체의 교수형 집행 장면을 유심히 관찰한 카라바조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딧>의 목을 치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표현했으며 유디트는 두려운 표정이지만 두 팔은 단호한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 장면은 각 시대의 여러 예술가들에 의해 그려졌으며 다양한 얼굴, 표정, 모습으로 표현되져왔다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는 베툴리아 성밖에 걸리고 아시리아 군은 도망쳤으며 유디트는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으로 칭송되고 105세까지 지조를 지키며 살아갔다.
유디트는 겸손, 정숙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이와 반면 그녀의 아름다움을 이용한 미인계로 인해 살로메와 더불어 팜므파탈의 이미지로도 표현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