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라라 Jun 05. 2023

힘들어도 정갈하게

그리고 다 같이


  아이가 여덟 살이 되니 집안일에 서서히 참여를 시켜야 할 것만 같다. 학교에서 1인 1역을 배우고 와서 "나도 집에서 1인 1역 할래!"라고 말해주니, 땡큐다. 집안일 중 무얼 할까 고민하다 식사 때 수저, 젓가락 놓기를 하기로 했다.

 


 드디어 기대에 찬 식사시간! "1인 1역 해야지~."라고 말해본다. 하지만 아이는 대답하지 않고 놀이에 빠져 있다. 몇 번 더 말해도 대답이 없다. 안 들리는 거냐. 들었는 데 대답을 안 하는 거냐. 들은 척이라도 해라. 내 마음속에서는 열이 나지만 애써 감정을 누르며 다시 말한다. "1인 1역 해야지. 응?" 한다. 잠시 후 아이는 (이제야 들은 건지, 불쌍해서 대답을 해 주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수저, 젓가락을 놓으러 온다. 서랍에서 수저 꺼내기는 성공이다. 하지만 식탁에 젓가락을 휘리릭 던지다시피 놓고 간다. "삐뚤어진 수저, 젓가락은 소용이 없다, 다시 예쁘게 놓아라."를 수차례 반복해서 말한다. 그래도 역시 무반응이다. "다음부터는 좀 더 예쁘게 놓자."라고 말하고 애써 넘긴다.



  수저와 젓가락을 고쳐 바르게 놓다가 문뜩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 던지다시피 젓가락을 놓은 최초의 범인은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아이 키우며 매번 집밥을 해 먹이는 것이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그랬다. 본인의 엉클어진 수저 젓가락은 본인이 다시 고쳐 놓아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그랬다. 요리도 힘든데 내가 밥상 차리는 것까지 다 해야 하나라는 억울한 마음이 있었나 보다.  아, 아이가 저렇게 비뚤게 놓고 가는 건 나 때문이었구나. 난 정갈함이 아니라 비뚜름을 가르쳤구나.



   집안의 정돈된 모습은 아이가 배운다. 발도르프 교육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부모가 집을 청소하고 정돈하는 모습은 아이에게 좋은 교육이 된단다. 군대에서처럼 칼각으로 정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집, 거리, 학교에서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는 공간은 우리에게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안정감을 준다. 아직 개지 않은 빨래 '산'보다 옷들이 잘 개어있는 모습으로, 싱크대에 수북이 쌓여있는 그릇들이 아니라 잘 말라 정리된 깨끗한 그릇들에서, 현관의 흐트러진 신발들이 아니라 짝 맞추어 가지런히 놓여있는 모습에서, 바닥에 밟을 곳이 없는 것이 아니라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는 모습에서. 후하, 아이를 잘 키우려면 정말 할 일이 많구나.




  그런데 나더러 지금 밥도 하고 장도 보고 청소도 하고 정리까지 다 하라고? 갑자기 화가 난다. 안 하고 싶다. 하지만 화가 나는 이유를 곰곰이 잘 생각해 보면 두 가지가 뒤섞여 있다. 가족 내에서 집안일을 분담해야 하는 문제와, 아이가 정돈됨을 배우는 문제다. 집안일 분배가 서로 잘 되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에게 안정감을 가르치지 않을 것인가? 그러고 싶은 부모는 몇 안 될 거다. 다만 사는 게 체력적으로 달리니 정갈함을 선물하지 못하는 마음에 미안해서 화가 나는 걸 테지. 처음부터 매일 정돈하려고 하면 너무 힘드니 서서히 횟수를 늘려 나가 봐야겠다. 꼭 엄마 혼자 정리하는 게 아니라 우리 가족 다 같이. 그러다 보면 아이도 언젠가 정리 정돈의 힘을 알게 되겠지. 그리고 한 명의 '투명한 노동'이 아니라 온 가족 구성원이 다 같이 정갈함을 만들어가는 경험을 하다 보면 윈윈이 될 테다. 지금 이 순간 내 주변 물건들도 어질러져 있지만, 내 마음부터 정갈하게. 흠흠.

작가의 이전글 그녀의 시간에 경의를 표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