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샘의 회복일지-다시 내가 되는 길에서(최현희)를 읽고
책을 받은 후 아주 한참 동안 열어볼 수 없었다. 책 표지가 너무 마음에 들었고 많이 기다린 책이었지만 첫 장을 열기가 두려웠다. 한참만에 연 책은 하루 안에 모두 읽을 수 있었다.
그녀와의 만남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몇 년 전 한 강의실에서였다. 인권, 평화, 성평등에 관한 주제로 평일 밤에 열리는 강의였다. 그녀의 '사건'이 벌어지고 일 년도 안 되었던 시점 정도로 기억이 된다. 당시는 강남역 살해사건, 할리우드와 국내의 미투 등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였다. 세상이 왜 이런가, 아니 너희 나라도 그랬니 하면서 매일 좌절스럽고 어이가 없었다. 강의를 하는 그녀는 마치 절망스러운 세상과 맞서 싸우고 있는 용사 같았다. 또 나와는 완전 차원이 다른 부류의 사람, 마치 연예인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책을 읽으니 그때는 그녀가 바스러지고 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녀는 닷페이스 영상에서 봤던 것보다 십에서 이십 킬로그램 이상은 빠져 보였다.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눈빛은 부드럽고 힘이 있었다. 청중의 말에 미소 지으며 귀 기울이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으면서 여유까지 있다니, 더욱더 그녀가 대단해 보였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독서 모임에서 정기적으로 그녀를 만나게 될 수 있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참 기뻤다. 내가 이런 사람과 만남을 가질 수 있다니. 평일 밤 서울 시내를 왕복 세 시간 동안 초보운전으로 벌벌 떨면서도 갈 만했다. 모임에서 만나는 그녀는 그때그때마다 건강이나 컨디션이 들쭉 날쭉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 특유의 유쾌함과 다정함, 경쾌함이 나를 안심시켰다.
고통과 회복 중인 시간들
우리는 아직도 매일 크고 작은 사건들, 차별들 속에서 상처를 받으며 살아간다. 뉴스에서 그리고 일상에서도 불쑥불쑥 차별들이 튀어나온다. 예전의 나는 하나하나 모두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달라졌다. 예전만큼 분개하여 지쳐 쓰러지지 않는다. 내 면역력은 그런 나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의 고통만 감내하며 살기에도 벅찼다. 그 핑계로 나는 어느 정도는 무뎌졌다.
무뎌진 것은 나에게 한 줌의 죄책감도 갖게 한다. 시위 현장에서 머릿수가 제일 중요함을 알지만 거리를 나가지 못하고 기부만 하거나 마음속으로 응원만 보낸다. 온라인 서명하기에는 열심히 참여한다. 그녀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나의 시간은 어떠한가. 나는 그녀만큼 고통받지는 않은 것 같아서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걸 아는데 그런 고통을 겪게 만든 세상이 나쁜 건데,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자꾸 든다. 그러지 마요라고 외치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지나친 죄책감은 연대를 약하게 만듦을 알지만, 그래도 미안하다.
이 책은 회복의 완성에 관한 책이 아니다. 그녀도 말하고 있듯 회복의 '과정'에 관한, 그리고 지난한 시간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 과정은 오르락내리락하였고 나는 그것을 지레짐작만 할 뿐이다. 그리고 나도 언제인지 모르지만 겪어왔던 분노와 슬픔, 좌절과 무기력을 조금은 공감한다. 다만 참 고마운 건 책 내내 유쾌하고 따뜻한 그녀다.
그녀의 수많은 불면의 밤과 수많은 약을 먹으며 힘들었을 그녀의 몸을 내가 모두 헤아리지는 못할 것이다. 감히 어찌 다 알 수 있으랴. 그녀의 시간들에 조심스럽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이제 이 책의 제목처럼 그녀가 '다시 내가 되는 길에서' 즐겁고 건강하게 잘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러니까 세상아, 이제 좀 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