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산 게이 <헝거 hunger>를 읽고 나서
1. 스무 살 이야기
스무 살 초 겨울 내가 이제 막 수능을 본 후의 일이다. 건강해지고 싶어서 집 근처 수영장을 등록해서 수영을 다니기 시작했다. 중간에 한번 강사가 바뀌었는데 새로운 강사가 오고 나서 이 주쯤 지났을까. 강습 도중에 강사가 나에게 수영장 안내 데스크에 들러 내 전화번호를 남기라고 말을 하였다. 연애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웬 성인 남자가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할까, 왜 그러지,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건가'하며 오만 상상을 다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강습을 하면서 어떠한 인간적인 교감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내게 관심이 있다는 느낌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 상상 저 상상을 하느라 그날은 옷을 갈아입고 데스크 근처에서 한참 서성거리다가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다음 날이었나, 밤에 집으로 전화가 왔다.(그때는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엄마가 전화를 받았고 나에게 바꿔 주었다. 수영강사였다. 그는 왜 연락처를 두고 가지 않았느냐고 웃으면서 나에게 말을 했고 나는 무어라 대답을 얼버무렸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내 심장은 엄청 쿵쾅대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수영장에 다시는 가지 않았다.
그 사람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운동을 그만두는 것도, 수영장에 낸 돈이 남아있는데 가지 않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을 알았지만 갈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후로 계속 가슴이 쿵쾅댔다. 동네를 걸어 다닐 때마다 이 사람이 나를 쳐다보고 웃고 있으면 어떡하나, 도서관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으면 어떡하나, 왜 수영장 안 오냐고 하면 난 무어라 말해야 하나 등등 수많은 생각에 계속 무서웠다. 그 사람의 웃음소리가 계속 비웃음과 낄낄거림으로 상상되었다. 주위를 경계하며 걷던 거리의 풍경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아, 내가 강간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강간당한 사람의 마음을 조금은 알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강간 피해자들은 이 글을 보면 코웃음을 칠지 모른다. 당연히 정말로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일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그냥 아기 같았던 나도 그저 전화 한 통에 이렇게 무서웠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2. 말할 수 있는가.
록산 게이의 헝거를 친구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몇 친구들은 록산 게이가 글 읽는 내내 너무 답답했다고 했다.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은 맞고, 그녀의 고통이 너무도 슬프지만, 그녀 인생 내내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안쓰럽고 답답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 록산이 가족들에게 말했더라면, 대학생 때라도 말했더라면 좋지 않았겠느냐고. 자존감이 낮고 자존심이 세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고. 그녀가 가족에게 말하지 못했던 건 (그녀는 자신의 가족이 완벽했다고 말하지만) '진짜' 완벽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아니냐고.
나는 가족들에게 말하지 못한 록산이 이해가 간다. 나는 나이만 스무 살 먹었지 세상 경험도 아는 것도 없었다. 연애는 당연히 해본 적이 없고 썸도 타본 적이 없는. 지금 같아서는 '뭐래.' 하면서 한 번에 무시해버릴 웬 남자의 말도 당시에는 거의 '사귀자는 건가, 그래. 사귀어야겠다, 사람들은 이렇게 사귀는 건가?'까지 생각을 하는 그야말로 순진 무구의 결정체였다. 무슨 헛소리냐고, 사귀자는 거냐고, 날 좋아하냐고 물어볼 용기는 절대 내지 못했다. 할 말도 못 하는 쑥스러움이 지나치게 많던 아기였다. 그 사람은 아마 한번 친해져 보려고 연락처를 물었던 것 같다. 그저 그뿐이었는데도 나는 심장이 심하게 쿵쾅거렸고 몇 달간 너무나 공포스러웠다. 하물며 그때의 나보다 훨씬 더 어렸던 록산은 어땠으랴. 끔찍한 일에 대해 그녀가 담담하게 말하고는 있지만 록산이 느꼈을 이해 안 감, 쿵쾅거림,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세상이 펼쳐진 것에 대한 그녀의 심정을 조금은 알겠다. 그리고 그 공포심을 가족들에게 말하지 못한 것도. 나도 엄마에게 그 전화의 내용과 그 이후의 내 심정에 대해 말을 전혀 못 했으니까.
3. 공포는 어디서부터 오는가.
무언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공포스러운 것 같다. 자전거를 배우기 전에도 "그냥 앞만 보면 돼."라는 말보다 "브레이크는 이렇게, 내리막에서는 이렇게, 돌발상황들에서는 이렇게 하면 된다."라고 알려주면 공포심이 줄어든다. 성관계도 그렇다. 성관계는 이렇게 하는 것이고, 이런 식으로 만질 수 있으며, 만지기 전에는 서로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것. 동의를 구하기 전후에는 서로 친밀한 교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성관계는 맥락에 따라 즐거울 수 있다는 것. 현실에는 즐겁지 않은 성관계도 많고, 설사 그런 관계를 했더라도 괜찮다는 것. 그리고 동의 없이 폭력을 당했다면 그것은 너의 잘못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 등에 대해 아이들은 알아야 한다. 록산 게이가 나중에 읽었다가 위안이 조금 되었다는 성교육 책, 그리고 비슷한 고통을 겪은 온라인 커뮤니티 사람들의 말들처럼 말이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많다는 건 언제나 위로가 되니까. '혼자' 이런 일을 겪은 것 같을 때 가장 공포스러우니까.
4. 일상에 대하여
나는 일상에 통증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일 년 내내 아토피가 있어서 손발이 상처로 따갑고 지난가을부터 류머티즘 관절염이 심해져 약을 안 먹으려고 버티다가 결국 매일 진통제를 먹고 있다. 아토피는 표면적인 상처라 그나마 견딜 만 한데 관절염은 일상적인 움직임이 잘 안 돼서 더욱 화가 나는 질병이다. 특히 요즘은 앉아있을 때 고관절, 무릎, 엉덩이의 통증이 심하다. 가끔 장거리로 여행을 갈 때 차를 타면 1시간 이상부터는 너무나도 괴롭다. (지난번 퇴근길 운전을 할 때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그래서 록산이 말하는 의자 고통에 깊이 공감이 갔다. 고통에도 공감이 갔지만, 장소와 환경을 미리 살피는 그것에 더욱 공감이 갔다. 나도 먼 곳으로의 여행을 피한다. 에너제틱하게 움직이는 것은 미리 주저하는 편이다. 그녀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수다하고 싶지만, 사람들과 만날 레스토랑의 의자를 미리 이미지 검색을 하고 확인하며 만남을 주저한단다. 남들은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친구들을 만나고 움직이는 일상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나, 록산 게이, 노인, 장애인, 그리고 수많은 소수자들이 그러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하고 집안일을 하고 울고 웃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잘 움직이지 못한다. 너무나 커서, 너무나 작아서, 관절이 아파서, 장애가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잘 움직일 수 있지만 일상을 잘 살아내지 못한다. 세상이 너무 우울해서, 차별을 받아서, 폭력적인 시선을 받아서. 일상을 빼앗겨보면 소중함이 더 강해진다. 햇빛에 반짝이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 새벽을 깨우는 새들, 빨래를 말리는 시간, 사랑하는 사람들과 안전한 공간에서 나로서 살아가는 모든 순간들의 '일상' 말이다.
록산 게이의 '애프터'가 '비포'의 일상처럼 다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극복하기 어렵다. 록산 게이가 자존심이 세고 자존감이 낮아서가 아니라, 록산 게이의 부모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마도 ‘세상의 시선' 때문이다. 그리고 애초부터 세상이 괜찮았다면 그녀가 ‘극복’할 필요도 없었겠지. 세상이 성폭력에 좀 더 진지했다면? 세상이 비만과 외모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면?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세상이었다면?
5. 사람들의 눈빛에 대하여
그녀의 아픔이 그녀를 평생 따라다니고 있다는 말이 참 마음이 아프다. 아직도 그때의 소리, 느낌, '힘'들이 느껴진다고 하니 그 새끼들은 정말 죽일 놈이다. 죽일 놈들이 자기가 한 짓의 무게를 알고는 있을까. 그리고 수없이 2차 가해를 만들고 있는 세상도 죽일 놈이다. 아직도 김지은 씨를 탓하는 직장동료에게 소리 지르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된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데... 바꾸고 싶은데...
록산 게이는 다시 big과 fat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는 남성들이 함부로 자기를 짓밟지 못하게 하려고 폭식하여 일부러 몸을 크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의 인생이 다이어트 시도와 좌절로 반복되어왔다고. 이것은 마치 여덟 살 난 내 아이가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진심으로 도둑과 맞서 싸우겠다고 하는 것 같다. ‘내 몸을 크게 만들면 아무도 나를 못 건드리겠지.’는 ‘내 나뭇가지를 휘두르면 아무도 나를 못 건드리겠지’처럼 정말 어렸던 록산의 발상 같아서 귀엽기도 하지만 동시에 또 너무도 짠하다.
6. 우리는 자유로운가.
이제 마스크를 벗는다고 한다. 나의 오래된 립스틱을 버리고 새로 화장품을 사고 싶어서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계속 살지 말지 고민을 했다. '탈코르셋 해야 하는데'와 '립스틱 사고 싶다'의 욕망 사이에서 계속되는 내적 갈등. 내 스스로 패션에 대한 욕구도 있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솔직히 있다. 나에게도 헝거가 남아있는 걸까. 나 스스로로 만족하고 헝거 하지 않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데 아직도 사람들의 눈빛에 배가 고픈 걸까, 나도.
내 욕망의 허기짐을 보면 나는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나를 더 자유롭게 해방시켜야 한다. 록산 게이도 있는 그 자체로, 나도 있는 그 자체로, 모든 소수자들도 있는 그 자체로. 배고프지 않고 배부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