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 기술은 듣기로부터
남들보다 항상 더 많이 듣는 사람이었다.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고 온갖 소음에 시달렸다. 그래서 노래도, 자극적인 소리도 끊었다. 사람들과의 대화도 필요한 만큼만 했다. 오랫동안 독서목록에 있던 책 <아티스트 웨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시간>을 꺼내어 스르륵 읽었다. 그녀의 말대로, 잘 듣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었으며 소음(듣지 않아야 할 것)을 걸러내는 것은 더 큰 집중력을 요했고 잘 들리지 않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사람은 말을 할 때 고유의 태도, 생각, 말투 등에서 느껴지는 기류가 있다. 주로 꾸미지 않은 상태로 진정성 있게 보일 때 그 매력은 진가를 발휘한다. 다만 어색한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말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상대의 말과 행동을 정보로 받아들이고, 무의식적으로 상대에 대해 판단하기 시작한다. 생존의 본능. 그래서 우리는 종종 말을 할 때 방어적이게 된다. 긴장이 풀리고 진짜 내 모습을 보이는 데까지 시간이 걸린다. 계속 대화를 해나가면서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온다면 좋은 관계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반면 대화를 할수록 경계가 풀리기는커녕 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과는 어떤 계기로 관계가 정리되기도 하고, 점진적으로 멀어지기도 한다.
나와 다른 (마음의) 언어를 쓰는 사람을 만난 적 있다. 일상을 나눌 단어도, 생활 패턴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매우 달랐다. 그래도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이어갔다. 그러다 문제가 발생했다. 조언을 구한 적 없는 일에 대해 갑자기 조언을 하기 시작했다. 순간 ‘어, 뭐지, 이 사람? 자신의 잣대로 나를 판단하고 솔루션을 강요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하는 그 상황이 나는 이미 제삼자를 바라보는 ‘장면’처럼 바뀌면서 대화 안에 머물지 못하고 대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진짜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면, 조금 더 들어보자. 내가 생각하지 못한 해결책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마음과, ‘당장 중단시켜야 해. 내가 이 말을 듣고 있을 이유가 없어. 나를 충분히 고려해서 하는 말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나를 갈등하게 만들었다.
한 번은 더 들어보기로 결정하고 듣다가 대화를 적당히 마무리하며 집에 오는 길에 그 사람이 미워지는 마음이 들었다. 다른 한 번은 대화를 멈추고 명확히 내 생각을 전달한 후 다른 주제로 대화하다가 집에 오는 길에는 혹시나 내가 무례해 보이진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며칠을 생각해 봤다. 어떤 방법이 더 옳은 결정이었을까? 나를 불편하게 한 두 개의 다른 결정과 감정은 나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며칠이 지나 마음을 정리해 보니 ‘불편해도 나의 감정을 말하고 존중을 구하는 것’이 불편했지만 덜 후회로 남았다.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에게 말을 얹기 전에 한번 더 나 자신에게 묻는다. ‘지금 나는 이 말을 듣길 원하는가?’
전달의 방식은 더 고민하고 연습해봐야겠지만, 무의식적으로 상대가 나의 선을 넘어올 때 나를 지키기 위해 명확히 의사를 전달하고 존중을 요청할 때 다음 관계로 다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대화가 관계를 건강하게 지속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는 것도 다시 한번 느꼈다. 나도 상대에게 좋은 듣기(경청)와 존중을 가져야겠다는 마음도 다시 정리됐다.
‘청하지 않은 충고만큼 대화를 빠르게 망가뜨리는 것도 없다.’고 줄리아는 말한다. 이런 일은 쉽게 곳곳에서 발생한다. 충고를 기반한 대화는 듣는 이로 하여금 무능력감, 자기 의심, 반항심을 일으킨다. 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상대에게 내가 겪은 불편함을 똑같이 준 적은 없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적어도 나로 인해 그런 일이 반복되지는 않았으면, 그리고 조금 더 잘 듣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