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서 빠져나간 모래알로 다시 모래성 짓기
어렸을 땐 혼자 있는 시간이 적었다. 가족과, 친구와, 사회생활 이후로는 동료들과 시간을 늘 보냈다. 그래도 내가 혼자 있을 시간을 보내는 걸 잊지 않았다. 대중교통에서, 내 방에서, 공원 벤치에서, 아무도 오지 않은 작업실이나 회사에서 나 홀로 있는 시간을 꽤 잘 보냈다. 늘 적을 무언가를 가지고 다니면서 쏟아져 나오는 생각을 적거나 새로 알게 된 것들을 기록했고, 나를 돌아보며 정체 모를 감정에 대해서도 스스로 묻고 깊이 파헤치기도 했다. 그 행위는 매체를 옮겨 다니며 스마트폰, 노트북, 태블릿 등에서도 이어졌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시간에 쫓긴다는 이유로, 돈 버는 일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조금씩 글이 짧아지고 빈도가 줄어들더니 점차 '기억해야 하는 것'들의 메모만 넘쳐났다. 일정을 관리하고, 할 일을 분배하고, 빠뜨리면 안 되는 의무를 적어나가며 '나'없는 '나의 할 일' 리스트로 변해갔다. 그러면서 나는 소진되기 시작했다. 사유하며 발견하며 연결하며 생의 감각을 뛰어놀던 내가 유령처럼 사라졌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듯 달려가던 내가, 이 부재를 깨닫고 벽에 쾅 부딪치며 사고를 내고서야 멈춰 섰다. 그리고 이제야, 다시 혼자의 시간을 체감하며 하나씩 채워나가고 있다.
요즘 많은 것을 혼자 한다. 어딜 가도, 무얼 해도 혼자다. 굳이 누군가를 찾지 않는다. 가끔씩 사람의 온기가 필요한 생존본능이 발동하면 그럴 때 잠깐 연결된다. 나 없이는 안 돌아갈 것 같던 공포로 가득 찬 세상에서, 나 없이 잘 돌아가는 평온한 세상을 마주한다. 극심한 근시를 갖고 멀리 보지 못하던 내게 안경을 씌워준 것처럼 저 멀리 있는 세상도 보이기 시작했다. 저 아래 심연 깊은 곳에, 좁고 어둡기만 할 것 같은 그곳에 넓고 밝은 세상이 있었다. 마음껏 '아니'라는 말도 해보고 마음껏 소리도 질러보며 점점 더 넓게 세상을 깨고 나가기 시작했다.
모호했던 것들이 뚜렷해지기 시작하고, 깨진 결정들이 다시 화학반응을 하듯 점차 구조를 이어가기 시작하며 경계가 생기고 상을 만들어냈다. 하나씩 의미를 만들고, 덧붙이고, 잇고, 연결해 보니 점점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를 조립해 가는 시간이 나에게 너무 필요했음을 온몸으로 깨닫는다.
이 여정이 어디까지,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나를 탐구하고 나에게 쓰는 시간을 절대로 아끼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는다. 이렇게 힘겹게 조각 모으기를 하지 않도록, 조각이 나더라도 다시 조립할 수 있도록.
혼자 있는 시간이 허용될 때 나는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나의 근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