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을 지나오는 중입니다

‘극복의 서사’를 가진 사람이 갖는 힘

by 레이지썬데이

주변에도, 여러 매체에서도 예전에 비해 부쩍 2~3년 사이 공황장애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자랑은 아니지만, 숨길 일도 아니다. 다만 사회적으로 공황을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더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신경계 문제로 보기보다 마음의 문제, 그러니까 조절가능한 관리의 영역으로 보는 시선 때문에 아픈 사람들이 더 상처를 받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황은 마치 개기월식처럼, 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잠시 그림자에 가려진 시간일 뿐이다.




나는 이번이 처음 겪는 공황이 아니었다. 4년 전에도 공황이 찾아온 적 있다. 나도 내가 그럴 줄 몰랐다. 당시에 그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해서(왜냐면 난 진짜 강한 사람이라고 믿고 살아왔기 때문에) 몸의 반응이 오고 나서야, 그것도 여러 차례 반복되고 나서야 공황장애라는 걸 알았다. 처음엔 몸이 안 좋아서 건강이슈로 생각했다. 피검사도 해보고 갑상선 초음파도 보고 심장내과까지 가볼 뻔했다가, 설마 정신과적 이슈인가 싶어서 뒤늦게서야 정신의학과를 찾았다.


처음 듣는 설명들, 먹어야 할 약, 한정되는 생활패턴이 쉽지 않았다. 이해해보려 했지만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도 매달릴게 필요했다. 좋아하는걸 더 많이, 깊게 해 보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가 가는 횟수를 늘리고, 거의 4-5개월 주말을 반납하면서 TTC(요가지도자) 수료과정을 등록했다. 진짜 열심히 공부하고 움직여가며 몸의 변화를 따라갔다. 다행히 큰 부작용 없이 약과 상담치료가 잘 진행됐고, 요가를 하면서 건강 지표도 많이 올라가서 약 6개월 만에 빠르게 안정기에 접어들어 진료를 종료했다. 의사 선생님도 호전 속도가 빨랐던 게 개인의 의지와 필요한 방법을 스스로 잘 찾아서 가능했다고, 고생했다며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그러고는 몇 년간 잊고 지냈다.




그리고 4년 후. 평소처럼 야근하고(?) 운동까지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에서 계속해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 오늘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나. 운동 끝나고 시간이 꽤 됐는데도 왜 이렇게 쿨다운이 안되지?’라는 생각을 하는 찰나에 스치듯 다시 생각났다. ‘설마… 이거 그건가. 갑자기? 지금? 왜?’. 마음이 급해질 때쯤, 마침 목적지 역에 도착해서 바로 지하철에서 내렸다.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계단을 올라가면서부터 과호흡이 오기 시작했다. 겨우 난간을 잡고 다 올라가서, 바로 앞 건물 화단에 걸터앉았다. 무서웠다.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큰일 났어. 나 4년 전 그거. 다시 도진 거 같아. 근데 왜 지금… 죽겠어. 지금 지하철 역 앞인데, 집이 금방인데…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겠어.. 나 어떻게 해?… 말… 힘들어… 숨이 차… 어떻게 해…?”
남자친구는 몇 마디 안정을 찾을 수 있는 말들을 해주며,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지게 일상적인 이야기로 화재를 돌려보기도 했다. 고마움과 동시에 미안하게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난 그걸 들을 수 없었다. 당장 와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이미 밤 12시가 넘었고 오기까지 40분이라는 시간을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걸어서 3분 거리라 너무 가까워서 당장 택시를 잡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다니던 짧은 거리를, 한 시간이 지나도록 가지 못하고 겨우 진정이 되고 나서야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4년 전 겪었던 신체 반응보다 훨씬 강해서 다시 한번 놀랐다. 지체할 수 없어서 다음날 바로 예약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서 예약을 해두고 제정신이 아닌 채로 겨우 잠이 들었다.




다시 이 악마 같은 녀석과의 여정이 시작됐다. 그때 터득한 방법이 있었으니, 이번에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마음을 단단히 먹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런데, 이 녀석도 내성이 있나? 그때와 같은 방법으로는 먹히지 않았다. 계속해서 신경계를 안정시켜 보려고 약물 치료, 상담, 호흡요법, 요가, 산책 등 생각나는 건 다 해봤는데 생각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약 부작용까지 동반됐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때도 있었고, 오히려 더 불규칙하게 공황발작이 와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모든 행동에 공황이 발목을 잡고 있었고, 나는 너무 그 겁에 질려 잡아먹힌 상태가 되었다. 약을 7번을 바꾸었는데도 이 악마는 세력을 넓혀가며 나를 더 괴롭혔다. 지하철에서 버스, 영화관, 길거리, 심지어 제일 안전해야 할 집에서까지 공황발작이 왔다. 당연히 누구를 만날 수도 없었다. 점점 내가 설 수 있는 땅이 좁아짐을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 할 때는 이 증상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남들이 보는 나는 너무나 멀쩡했다. 하지만 나는 일에서 이 스트레스가 시작됐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마지막 선택지인 퇴사를 선택했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인생이 망가질 것 같은 위기에 쉼표를 찍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후 3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병원도 옮기고, 좀 더 정밀한 검사들을 받았다. 신경계가 무너져있었다. 쉬는 중인데도 부교감 역전 상태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쉬는 것도 잘 쉬어본 사람이 안다고, 내가 쉬는 패턴을 곰곰이 들여다보자 문제가 보였다. 가만히 그냥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걸 발견했다. 의식적으로 멍 때리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카드 한 장만 들고 카페에 가서 커피’만’ 마시기, 생각이 많아지면 무작정 노트와 펜을 꺼내서 생각 다 꺼내놓기. 그렇게 생각 그대로 적어가며 부끄럽고 싫은 것들까지 다 드러나게 적나라하게 써 내려가다 보니 조금씩 해소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두 번째 악마는 요가가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 정화해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을 핑계로 쌓아두고 읽지 못한 책들을 하나씩 꺼내어 읽기로 했다. 책에 밑줄도 긋고 하이라이트도 하며 떠오르는 생각이나 질문들을 적고 답해보며 깊게 파보다 보니, 책을 매개로 나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것에 반응을 하는지 알게 됐다. 글쓰기가 잘 먹힌다는 게 확인이 되었으니, 좀 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모닝 페이지로 눈 뜨자마자 아무거나 써보자. 처음에는 자꾸 할 일 리스트를 쓰는 나를 발견했는데, 일주일 단위로 쓴 것을 다시 회고하면서 쓰는 방향을 잡아나갔다. 떠오르는 잡상을 꺼내고, 오늘의 기분이나 하고 싶은 일, 유치하지만 뭔가 떠오른 가능성을 열린 마음으로 마구 썼다. 그리고 수면 패턴도 관찰하기 위해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도 기록했다. 그리고 눈 떴을 때의 기분과, 하루를 다 보내고 난 뒤의 기분도 간단한 기호로 표시했다.

잡생각이 많아지면 읽던 책을 꺼내 냅다 표시해 둔 아무 곳이나 펼쳐서 필사를 했다. 손이 아플 때까지 쓸 때도 있었다.

떠오르는 생각들은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최대한 손글씨로 썼다. 디지털 프로덕트 사용을 최대한 줄였다.

잠들기 전에는 하루를 돌아보며 5~6줄 정도의 간단한 하루 일기를 적었다.

어느새 몇 권의 노트가 되었고, 이 네 가지 기록의 축을 계속 유지했다.

3개월 후, 내가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보며 회고를 했다. 기간별로 가장 많이 쓴 키워드를 취합했다. 확실히 단어들이 점차 회복의 언어로 전환되어 있는 것을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축축했던 이불을 잘 빨아서 햇빛에 널어 말려놓은 듯 보송보송해져 있었다. 스스로와 대화하며 나를 더 잘 알게 된 큰 수확도 있었다. 손으로 기록하는 힘을 다시 느끼며, 이 과정을 잘 수행한 나 스스로에게 감사했다.


이 3개월의 기록 여정 중간에 제주도 여행을 끼워 넣었다. 퇴사 선물로 이쯤이면 괜찮아져 있을 거란 생각에 예약을 해두었지만, 예상과 달리 당장이라도 취소하고 싶은 생각이 출발 직전까지 들었다. 그래도 지금이어야 의미가 있을 거란 생각에, 괜찮을 거라는 자기 확신을 거의 주술사처럼 외며 나 홀로 7일간의 제주여행을 떠났다. 혼자라는 상황이 두려움을 더 크게 만들 뻔했지만, 결국 나와 더 가까워지는 여행이 되었고, 제주라는 자연 속에서 변화무쌍한 날씨를 겪으며 통제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그 순간순간을 잘 지낼 수 있는지 힌트도 많이 얻게 됐다. 그리고 자연이 주는 그 치유력에도 또 한 번 놀랐다.




공황장애는 애써 노력하면 이겨낼 수 있는 병은 아니다. 다시 겪고 싶지 않다고 해서 특별히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도 않다. 하지만 내가 어느 정도 의지가 있다면, 조금 헤매더라도 의료의 도움과 함께 또 다른 나의 강인함을 얻고,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다는 자기 신뢰를 다시금 얻을 수 있게 해 준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공황장애 때문에 힘들어한다면 나의 이 마지막 말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공황을 겪은 사람은 나약한 사람이 아니며,
그 경험을 지나온 사람은 이미 하나의 ‘극복의 서사’를 가진 사람이다.
잃어버렸던 자신의 존재를 되찾고, 나를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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