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하거나 필요하지 않거나
요즘 적잖이 눈에 보이는 콘텐츠가 있다. ‘남 탓 하는 법’을 말하는 영상이나 글들. 이것도 내 마음에 걸려서 눈에 더 밟힐 것이다. 여러 이유로 남 탓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뇌는 힘든 상황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무마하기 위해 남 탓을 하며 에너지를 아끼는 방향으로 디자인되어있다. 하나하나 감당하기에 생존의 위협을 느끼거나 지나치게 에너지가 소진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 탓은 문제가 아니라 내 정신건강을 지키려는 방어수단에 가깝다. 그러나 사회에서 요구되는 소위 ‘일잘러’의 역량 중 남 탓을 하지 않는 것이 꽤나 비중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남 탓을 하는 게 낫고,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남 탓은 유해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작은 물건을 다루는 것부터, 내가 맡은 역할, 일, 내 주변을 구성하는 모든 것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다루고 행동해 왔다. 누가 보면 지나칠 정도로 ‘왜 저렇게 까지 해? 피곤하게’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누구든 나를 아는 사람이면 나를 통해 책임감이라는 걸 느끼게끔 어디서든 그것이 드러났다.
잠시 그렇지 않게 살아온 때도 있었다. ‘쟤는 뭐가 되려고 저래’하는 걱정 섞인 말을 듣던 시기다. 지나고 나니 그저 중2병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성인이 된 후로는 누구나 원치 않는 역할이 생긴다. 어떠한 대가를 위해서 그 원치 않는 역할을 자처해야 할 상황이 반드시 찾아온다. 대체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해야 하는 생존이 걸린 일들이다. 여기서도 나는 내 태도를 정할 수 있다. 여러 가치를 포기하고 오롯이 생존만을 목표로 돈을 번다는 행위에만 집중할 수도 있고, 좀 더 고차원적인 가치를 품고자 주어진 것 이상의 것들을 보고 느끼며 실천할 수도 있다. 개인차가 있다. 나는 항상 후자에 가까운 것을 선택했다. 조금 더 양보하고, 이해하고, 이유가 있는 일로 만드는 것을 택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단순하지만은 않은 뇌구조 때문이다. 나에게는 그런 일들이 어렵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다만 늘 외부의 시선에서는 그 평이 갈렸다.
책임감이 높은 사람들은 남 탓을 잘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문제 해결에 힘쓰고 되게끔 만드는 게 그들의 디폴트 행동 패턴이다. 나 역시 그런 편에 속한다. 누군가가 일을 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거나 진행이 더뎌질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그냥 해버린다. 그러다 보면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고, 자신이 관리자이거나 관리자가 방임할 때 문제는 커진다. 이럴 땐 주어진 역할을 하지 않은 사람을 탓해도 괜찮다. 물론 합의된 역할이거나 누가 봐도 당연한 책임이 있는 일일 때 가능하다.
반대로 내가 타인을 믿지 못하거나 책임질 일을 굳이 찾아서 등에 업을 때 또는 애초에 책임 질 생각이 없을 때 남 탓을 하기 시작하면, 피해의식이 싹트고 게으르다거나 이기적이라는 평판이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결국은 이 모든 게 관계의 설정에서 오는 피해 갈 수 없는 사회적 고리라는 걸 뜻한다.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없듯이, DNA에 새겨진 생명의 본질로써 인간은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위협으로 인식되는 행위는 개인의 자아를 지키는 것과 사회적 자아를 지키도록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 ‘나’만 생각해서도 안되고, ‘사회 속의 나’만 생각해서도 생존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의 자아, 위치, 역할 등의 바운더리를 잘 설정하고 그에 맞게 대응해야지만 남 탓도 지능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그래, 삶이 쉬울 리가 있나. 수천 년간 이어진 인간의 역사도 이런 과정을 통해 지금처럼 복잡한 연결고리를 갖게 된 것인데, 현존하는 작은 존재인 나는 이 거대한 시스템에 존재하는 일부이니 이해하고 행동한다면 크게 나쁠 일은 없을 것이다. 내 바운더리를 명확히 알고 있다면, 내 탓이든 남 탓이든 내가 생존하는데 필요한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다.
*오늘의 남 탓 : 하필 이런 복잡한 세상에 태어나다니, 살기 힘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