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생기면서 친구가 없어졌다.
그리고 아주 작고 어린 친구가 새로 생겼다. 이 친구는 나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먹는 것부터 자는 것 심지어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제 만 3살이 되어가는 시점에 되어서야 “사람”에 가까워지고 있다. 여전히 많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줘야 한다.
동요 부르기, 애니메이션보기, 동화책 보기, 퍼즐 맞추기, 낱말카드놀이, 블록 쌓기 등등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되었다. 그러다 ‘한 번씩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하는 모먼트가 생기는데, 그럴 때면 MBTI F성향인 아빠는 아이의 기특함에 살짝 눈물이 고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한글과 알파벳을 동시에 공부하고 있는데, 노출이 많아서인지 금세 따라 한다. 아이들은 직관적으로 외워버린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것이 맞는 것 같다. 하루 지나면 휘발되는 나의 기억력에 대비하여 부러울 따름이다.
그래도 한 편으로는 여전히 실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친구들과 맥주 한 잔 가볍게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즐겁지 않아서는 아니지만, 친구와 대화하면서 채워지는 부분은 다른 영역이 채워줄 수 없는 고유의 영역이 문자 그대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그런 시간에 대한 갈증이 더 고파진다. 가끔 아내의 배려로 회사에서 저녁을 먹고 가거나, 회식이 있는 경우에 마실 수 있는 술이지만, 그것은 엄연히 다르다. 업무이기 때문일까.
그래서인지 40-50대 차부장님들이 회사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기 많은 이유가 그 틈을 매우려고 했는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회사와 가정에서의 그 빈 마음의 공간을 친구로 해결할 수 없어, 회사 후배와 공유하고 싶었던 마음이었을까 추측해 본다. 그래서 본인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후배가 이뻐 보이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제야 이해가 되는 김 차장님)
그래서 육아를 하는 부부간에 ”개인시간확보“에 대한 배려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육아를 한쪽에서 전담하는 부부, 맞벌이를 하는 부부, 조부모의 도움이 되는 경우와 아닌 경우 다양한 환경에서 육아를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각자에게 시간을 선사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백일만에 휴가를 나가는 신병의 마음으로 나만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에서 버팀의 원동력이 될 테니, 개개인의 시간은 꼭 마련해 주자.
래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