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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Sep 25. 2022

미혼이라는 외딴섬

혼자 떠난 제주여행

나는 기혼 주의자가 아니지만 작정한 비혼 주의자 또한 아니다. 이것도 저것도 뭣도 아닌 게 아니라 때마침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결혼을 하는 것이고 아무래도 글렀다 싶으면 못하는 거라 생각하고 있다. 물론 현재의 내 나이까지 미혼인 건 인생 시나리오에 없던 일이지만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고 나이는 기대보다 빨리 먹었다. 결혼이나 출산을 갈망한 적이 없다 보니 지금 이대로의 삶에 꽤 만족하고 있다. 간혹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청첩장을 받고 씁쓸해할 때도 친구의 결혼이 저렇게까지 우울할 일인가 싶어 공감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런데 작년을 기점으로 아주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의 연이은 결혼과 출산 릴레이는 느긋했던 나에게마저 조급함을 줬다. 취향이 척척 맞아서 함께 여행 가고 공연 보며 일상을 채워주던 친구들이 몇 개월 차이로 줄줄이 결혼했고 결혼 후에도 간간히 만나던 친구들조차 신기하게도 비슷한 시기에 엄마가 됐다. 눈 감았다 뜨니 미혼이란 외딴섬에 혼자 버려진 기분이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없다. 주말마다 약속이 꽉 차 있던 내 일상은 어느덧 같이 놀 사람이 없는 심심한 주말로 변했고 팬데믹까지 겁쳐 혼자 남겨진 시간은 점점 더 늘어났다.


인생은 결국 혼자라더니 아, 지독하게 혼자구나. 혼자 점심을 먹고 싶어서 거짓말로 둘러대며 개인 시간을 사수하던 나지만 적어도 그건 사회에서 원하는 나의 위치였다. 내가 이렇게 놀 친구가 없었나 쓸쓸함이 몰려온 순간 친구란 과연 무엇일까 철학적인 질문이 샘솟았다. 결혼, 출산, 육아로 세계가 갈라지는 일, 만나면 끊이지 않던 우리의 대화는 이제 시작할 기회조차 없어졌고 서로의 세계에 충실하다 보니 틈이 자라나 어느새 커다란 간극이 생겼다.


아직은 팬데믹이 완화되지 않았던 작년 봄, 그래도 여행은 가고 싶은데 마음 맞던 친구가 없어서 고민하던 차에 혼자라도 가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여행과 공연만큼은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탓에 여행 시작부터 심심한 마음이 몰려왔다. 그렇게 홀로 떠난 제주도 2박 3일 여행에서 봤던 장면이 영화 속 한 씬처럼 마음에 남아있다. 여행 둘째 날의 첫 목적지인 '비밀의 숲'은 워낙 인기가 많아 사람이 몰리지 않는 시간을 노리다 보니 아주 이른 시간에 나서야 했다. 일찍부터 움직였더니 하루가 길었고 여유롭게 저녁까지 먹었는데도 숙소에 도착하니 해가 지지 않고 사방이 환했다. 숙소 이름은 '하도리 오길 잘했어'. 틈만 나면 여행을 다녔음에도 여전히 겁이 많아 여성 전용 숙소라는 점을 높이 샀다. 다 좋았는데 주변이 너무 조용해서 심심했다. 동행이 있었다면 함께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이 금방 갔을 텐데 혼자 온 여행에서는 숙소에 들어가도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동네라도 한 바퀴 돌자고 나갔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소란스러운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고 고요했다.


굳이 돌고 돌아 저기 멀리까지 나가서 편의점을 지나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목에 무척 예뻐 보이는 다른 숙소가 있었다. 야외 공간에는 아빠로 보이는 남성이 열심히 고기를 굽고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상추쌈과 반찬을 식탁으로 옮기며 저녁 준비에 한창이었다.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두 아들을 달래며 저녁 짓는 모습은 혼자 거리를 떠도는 내 모습과 대비가 되어 더욱 소란스럽게 보였다. 하필 지겹게 시간이 안 가던 그 찰나에 보인 풍경은 마치 "야 이래도 결혼을 안 할래? 그렇게 평생 혼자서 심심하게 늙어 죽으려고?" 말을 거는 듯했다. 지금보다 10살, 20살을 더 먹게 되어 똑같은 풍경을 만난다면 나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많이 후회하며 외롭다고 생각할까? 거리낄 거 없이 혼자서 자유로운 내 모습에 만족하며 결혼 안 하길 잘했다고 안도할까?


그날 숙소에 들어가 한참을 누워 '결혼'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들은 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걸까? 대체 어떤 계기로 어떤 이유로 대단한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인생의 모든 선택이 그러하듯 내가 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우선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들 하지만 결혼과 출산만큼은 그런 마음으로 시도하기에 너무나 큰 과업이다. 나는 여전히 두렵기에 누구라도 답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하고 내가 만드는 것인데 과연 누가 답을 줄 수 있을까. 답을 찾지 못한 채 이렇게 또 한 해가 끝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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