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바꾸는 힘이 있는 교류

강화유니버스와 시부야대학 교류에서 발견한 지구적장소감(2)

by 듣는연구소

이 글은 강화도의 청년들이 운영하는 <강화유니버스>커뮤니티를 오래 지켜본 연구자가

로컬 커뮤니티 간 국제교류에 대해 탐구하는 마음으로 쓴 참여관찰 노트입니다. 편안한 이해를 위해, 앞선 글을 읽고 이어서 읽기를 권합니다.

강화유니버스 : 강화도를 기반으로, 새로운 로컬을 만드는 11가지 지향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커뮤니티이자 장소

시부야대학 : 도쿄 시부야에서, 지역 곳곳을 배움터로 삼는 비영리 교육 단체


이전 글 읽고 오기: 왜 어떤 로컬 커뮤니티는 국제 교류를 할까 (1)



2026년 3월 21일

이번 시부야대학 방문에서 얻은 단서


시부야 횡단보도

시부야는 바쁘고, 빠르고, 빽빽하고, 비쌌다(후에 AI를 통해 시부야와 도쿄의 부동산 가격, 인근 도시와 도시 위상 등을 알아본 바). 주말, 일본 연휴 기간이었던 스크램블 교차로는 정말이지 아이돌 공연장 밖에서 경험하게 되는 엄청난 인파였다. 서울보다 더한 ‘메가 시티’임을 실감했다.


그러한 시부야에서, 시부야 대학을 통해 소개받고 경험한 장소는 느리고, 무료고, 관계가 보이는 곳들이었다. 나는 “비싼 부동산에서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라는 질문이 연신 들었는데 예를 들어, 고스기유 목욕탕*, 료테이산초**, 이자카야에서 본 예술가의 퍼포먼스 조차도 돈이 안 될 것 같은 일들이 ‘보존’ 되거나 ‘창작’되고 그게 소비되는 장면이라는 점에서 신기했다.


*고스기유 목욕탕: 하라주쿠 한복판 대형 쇼핑몰 지하에 있는 커뮤니티 지향 목욕탕. 목욕탕은 작은데, 대기하는 공간은 동네 주민을 포함해 누구나 와서 쉬어갈 수 있는 오픈 공간이 형성되어 있다. 마치 신촌 현대백화점 지하에 젊은이, 동네 주민 누구나 쉬어가는 널찍한 공간이 있는 목욕탕이 있다고나 할까?
**료테이산초: 80년 된, 시부야에 유일하게 남은 ‘료테이(전통 공연 주점)’.
이자카야에서 본 퍼포먼스. : 저녁 먹으러 간 이자카야 술집에서, 갑자기 우연히 어떤 예술가의 퍼포먼스를 구경하였다.


좌: 고스기유 목욕탕 / 중: 모텔촌 가운데에 남아있는 80년 된 료테이 / 우: 이자카야에서 예술가의 깜짝 퍼포먼스


같은 시부야, 다양한 장소성

이튿날 첫 일정은 시부야 땅 밑에 흐르는 복개천을 따라 시부야와 하라주쿠 인근의 이야기를 시부야대학 스태프에게 들으면서 가는 투어였다(에어비앤비로 신청 가능). 복개천은 메이지신궁 안에 있는 '기요마사의 우물'에서 시작하여 하라주쿠와 오모테산도, 시부야 땅밑으로 흘러가 마지막에 보이는 하천과 합류한다고 한다.


시부야에서 조부 때부터 3대째 살고 계신 켄지 씨의 리드를 따라 하라주쿠 문화를 형성한 70년대 아티스트의 레지던스, 오모테산도 거리 등을 걸었다. 켄지 씨가 졸업한 초등학교도 지나고, 여전히 성업 중인 켄지 씨의 동네 친구 상점도 지나오면서 단지 쇼핑과 사진 찍기 좋은 번화한 관광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동네이고, 1990년대 유행하던 ‘하라주쿠 패션’을 입었던 내 친구들이 떠오르면서, 나에게도 영향을 준 그 J 컬쳐의 원류였다는 관계감도 느끼며, 오늘날 변화하고 있는 이 거리에 대해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또, 다음 날은 시부야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안자이 상과 함께 동네 산책을 했다. 그녀가 매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길을 우리가 함께 천천히 걷고, 골목의 작은 떡집에서 떡을 사먹기도 하고, 동네 체육관 한 켠에서 주민들이 자원봉사로 운영하는 주말 흙 놀이터에 가보기도 했다. 이처럼 지역 애착을 가진 시부야대학 스탭들을 통해 소개받은 이 장소는 관광객으로서 경험과 전혀 다른 장소성을 갖고 있었다.


시부야대학 사람들과 함께 한 시부야에서 그 분들이 부여한 장소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시부야라는 곳은 누군가에게는 일터로써, 관광지로써, 삶터로써, 혹은 성공을 상징하는 곳으로써 다양한 의미를 갖는 장소일 것이다. 우리를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동선을 짜고, 소개할 곳을 논의하고 고르는 과정에서 시부야대학 분들에게 새롭게 발견, 형성, 공유되었을 장소감도 있었을 것 같다. 평소에 시부야대학이 ‘시부야답다’고 생각한 장소, ‘시부야대학의 지향’을 닮은 장소, 우리와 소통을 통해 발견한 장소도 있을 것 같다.



같은 맥락에서, 나도 이곳에서 하나의 장소감을 형성하는 행위를 의도치 않게 하게 되었다.


두번째 날 일정을 시작하면서 메이지신궁 북쪽에서 정문으로 숲길을 다같이 걸어왔다. 메이지신궁에 가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궁금했지만, 그냥 오전에 숲길을 걷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전국에서 메이지 천황에게 진상한 술통과, 신궁과 숲을 조성하기 위해 당시 전국에서 자원하여 나무를 식재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조선에는 굉장한 아픔을 주었던 메이지천황 시절의 역사가 이곳의 역사에는 무척 자랑스러운 것이구나를 실감했다. 마치 한국 현대사박물관에 ‘외화를 위한 역군’으로 베트남 파병 역사가 소개되어 있는 것을 베트남 방문객이 본다면,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느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메이지신궁 정문에서 다 같이 단체사진을 찍었다. 저만치 노점에 욱일기가 붙어있는 것이 보였다. 과거 만이 아니라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일들. 평화에 대한 다른 관점. 나와 무관하지 않은 정치. 진행되고 있는 전쟁.. 이 스쳐지나갔다. 이곳에서 신궁을 배경으로 예쁜 사진을 찍으며 케이 문화만을 얘기하고 가면 이 교류가 얕은 경험으로 남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단체사진을 찍고, 바로 일정이 시작되었다. 진심을 다해 지역의 여러 이야기를 해 주고자 하는 켄지상과 투어 일행들에게 곧 몰입하였다.


그날 오후, 당일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회고’ 시간이 되었다. 내 순서가 돌아올 때까지, 같은 장소에 대한 다른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할 것인가, 아니 말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고민했다. 잠시섬이 ‘안심’ 할 수 있는 곳이라지만 과연 시부야대학 참여자들에게까지 이 이야기가 안심하며 들릴까? 갈등 끝에 ‘모두가 모두에게서 배운다’라는 시부야대학의 슬로건을 믿고, 나의 복잡한 감정을 털어놨다.


내 차례가 지나간 후, 케이지 상이 자신도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고 하였고, 메구미 상은 (본인에게 재일교포 친구가 있어서 그 마음을 잘 알고 있다고) 일본인에게 종전기념일이 한국인에게 광복절이며 서로 국적을 넘어 사람대 사람으로 만나고 싶다는 의미를 담아 한국어로 그 자리에서 시를 써서 화답하였다. 한국인 이소 님이 도시 공원으로서 메이지신궁이 가치있게 느껴졌다고 얘기해주었다.


그날 밤 나는 AI에게 평범한 일본인 입장에서 나의 이야기가 어떻게 느껴졌을지 물었는데, 일본의 2-30대는 메이지신궁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 접한 적이 없어 어리둥절 할 수 있으며 그저 산책하기 좋은 숲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답변을 읽었다.


2026년 4월 11일


한국에 돌아온 후, 시부야대학의 유키 상(대표)에게 메시지를 받았다. 나의 회고를 듣고 메이지신궁 방문에 대해 신중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시부야대학 스탭들이 깊이 논의하였으며 이후 이 장소에 대해 학습하기로 하였다고. 강화유니버스 운영자 파도와 유마담도, 양측 스탭 회의를 통해 서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교류를 하게 되었며 나에게 이러한 기회를 열어주어서 고맙다고 하였다.


4월 11일 교류에 참여했던 이들이 강화도에서 회고 모임을 했다. 각자가 자기의 교류 경험을 사진이나 글, 영상 등으로 한차례 소화해서, 공유했다. (나도 이 브런치 글을 공유했다.) 나의 메이지신궁 회고를 비롯해, 각자에게 있었던 여러가지 사건과 자극들이 타인의 경험에 영향을 주고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시부야대학과 강화유니버스 교류에서 나와 참여자들은 시부야라는 ‘원주민의 장소’에 대해 ‘정해진 이야기’를 ‘듣고 오는’ 여행자가 아니라, 각자 동시다발적 상호작용을 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장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 이미지는 정말 ’네트워크‘ 가 시부야 위에 덧씌워 만들어지는 새로운 장소 같았다.


시부야대학 스탭들은 강화유니버스와 교류할 때 그 참여자들이 수동적이지 않고 시간을 함께 만들려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점(잠시섬에서 늘 그렇게 했듯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교류 이후, 시부야대학은 커뮤니티의 힘을 믿고 그 방향으로 활동을 전개해나가기로 했다고 한다. 강화유니버스는 바쁜 시부야에서 경험을 통해, 일상에서 잠시 서는 것이 국적을 떠나 이 시대 사람들에게 필요함을 더욱 느꼈다고, 잠시 서는 것을 이벤트가 아닌 일상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이처럼 잠시섬과 시부야대학 스태프, 그리고 참여자 각각이 ‘나는 어떤 세계에 살고싶은가’에 대해서 각자의 성찰을 가져갔겠지. 잠시섬이 넓히려는 장소감은 이런 것일까 생각했다. 강화유니버스는 그게 가능한 해외 파트너들과 연결망을 확장하는구나라고 짐작했다.


사실 모든 장소는 만남의 장소이다. 장소를 경계 지어진 지역으로 생각하는 대신 사회적 관계와 이해의 네트워크가 접합되는 지점으로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적 관계와 경험과 이해는 우리가 그 시점에서 장소라고 정의한 곳보다 훨씬 더 큰 스케일에서 구성된다. 그것이 길거리이든, 지역이든, 심지어 대륙이든 말이다. 이는 결국 외부 지향적인, 더 넓은 세계와의 연계를 의식하는, 글로벌과 로컬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통합하는 그러한 장소감을 허용한다.

- 도린 매시, 2015, ‘지구적 장소감’. 공간,장소,젠더. 278-279pp.



- 듣는연구소 우성희 연구원

매거진의 이전글왜 어떤 로컬 커뮤니티는 국제 교류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