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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프화가 Jun 19. 2019

종료에 관한 단상

일이 중간에 끊겨 짜증이 난 경험과 그 원인.

" 나 한살림 가야 하는데...이제 슬슬 오픈시간 다되어 간다"

아내의 한마디에 작업흐름이 끊기고 말았다. 불쑥 짜증이 난다. 작업중인데...

하지만.

"응 알았어. 잠시만...."

허둥지둥 하던 작업을 놓고 옷을 갈아입는다.

속옷바람으로 집에서 일하는 반백수이자, 아내님을 상관으로 모시는 슬픈 남성의 움직임이다.

카트를 끌고 한살림으로 쭐래쭐래 가는 도중에도 머릿속은 작업하던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한살림에 도착해서도 머릿속은 풀던 문제로 가득하다.

아내가 이것저것 내밀어본다.


"당근봐, 당근~~~하하하하 크기가 제각각이야~"

"하하하 그러네~"

"어떤 걸 살까?"

"아무꺼나~"


"감자가 왜이리 양이 적지?"

"글쎄? 그냥 그렇게 보이는거 아냐? 옆에 저울에 재봐'

"아, 2키로 안되네."

옆에 점원분이 당황했는지 거든다.

"아, 이거 다른 분이 살짝씩 낱개로 가져가서 계산하셔서 그래요. 밑에껀 괜찮아요."

"재밌는 분들이 많아요~"

"하하하하, 그러네요"


적당히..적당히.. 대답하는 스킬만 늘었다.


"아, 안심이 없네. 카레 하려고 했는데."

"안심 내일 들어와요"

"그럼 내일 다시 와야겠다."

"응? 내일 또 와야 돼? 코스트코는?"


어째어째 사서 돌아가는 길에도 머릿속은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평소 주변을 둘러보며 한마디씩 했지만, 오늘은 조용히 머리로만 생각한다.

아내가 한마디씩 던지지만, 적당히 대답하는 스킬로 대응한다.


"이제 내일 코스트코 가서 새우랑 사면 되겠다."

"하아...내일도 마트로구나......"


아차했다.

"...."

아. 끝내 짜증을 내고 말았나보다.

아내가 조심스레 이야기한다.


"그낭 오늘 코스트코까지 다녀올까? 자기 시간 너무 뺏기나보다."

"응...뭐"


이상하다. 문제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분명 지금 생각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집에 도착해서 작업해도 되는데....... 나는 왜 짜증이 난 걸까.


왜 아내와의 소중한 시간에 일을 끼워넣은걸까? 난 더 어른이 안되는걸까?


집에 돌아와 일을 진행하다가 점심시간이 다되어간다는 걸 깨달았다.

나머지는 패스트파이브에 가서 마무리해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작업창들을 하나하나 끄면서 깨달았다.


'아, 일이 머릿속에서 안떠난게 이것때문이었구나.'


문제는 간단했다. 나는 나에게 아무런 종료메세지를 주지 않고, 한살림을 쭐래쭐래 따라갔던 것이다.

나에게 있어 종료메세지란, '그래 좀있다가 하자'라는 생각 자체가 아니었다.

작업하던 VSCODE를 끄는 행동. 열려져있던 토탈커멘더의 탭들을 하나하나 닫는 행동. 그 뒤로 남은 깨끗한 바탕화면이 바로 종료메세지였던 것이다.


종료하자. 머리로만 말고 행동으로.


이렇게 하루 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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