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의 본질은 할 일이 아니다.
GTD는 프로젝트를 행동 단위 = 할 일로 나누라고 조언합니다.
이러한 GTD에 익숙해지고 나면 우리는 처음 도끼를 손에 쥔 소년처럼 모든 것이 쪼갤 것으로 보입니다.
모든 프로젝트를 할 일로 잘게 쪼개는 작업에 몰입합니다.
이렇게 일을 잘게 나누면 일단 마음은 편해요.
내가 뭘 해야 할지 더 고민 안 해도 된다는 안심이 들거든요.
겨울 전 장작을 잔뜩 만든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고, 내가 잔뜩 만든 '할 일 리스트'는 절반 이상이 쓸모없어 짐을 깨닫게 됩니다.
썩어버린 장작더미 같은 할 일리스트를 보며 허탈해지죠.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창고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미 버릇이 된 쪼개기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잔뜩 만들어진 할 일을 뜯어고치고 다시 생긴 일들을 쪼개게 되죠.
하지만 이렇게 뜯어고치고, 쓸모없는 할 일을 버리고, 다시 쪼개는 것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포기하게 됩니다.
결국 내 행동리스트는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어지고, 쓸모없는 할 일 잔뜩 쌓여가게 됩니다.
짐만 되는 거죠.
어느덧 거대한 괴물처럼 쌓여버린, 하지만 나에게 쓸모없는 할 일리스트에 파묻혀 우리는 압도당하게 됩니다.
그러고 고민합니다.
'GTD로 해도 안되네?'
GTD에서 어이없이 퍼지는 부분이 이런 부분이죠. '신뢰'해야 할 공간이 '괴물'로 변하는 순간.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우리가 '할 일'에 대해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할 일을 보통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당연하죠. 이름이 '할 일'이니까요.
하지만, 조금 깊게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할 일이라고 부르는 일을 다 해야 할까요?
'할 일'의 정체를 계속 추적해 보면 우리가 '할 일'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체를 깨닫게 됩니다.
할 일은 사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프로젝트 완료를 위해 현재 지식을 토대로 만든 예측이자, 가이드라인. 일종의 참고자료일 뿐이죠.
데이비드 앨런 역시 당장 눈앞의 일이 아닌 먼 미래의 할 일들을 '참고 자료'로 설정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노스트라다무스 같은 예언자가 아닌 이상 결코 미래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미래의 예측인 '할 일'은 100이면 100 틀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할 일리스트를 신뢰하기 위해서는 이 '예측'이 언제든 바뀔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친구도 그렇지만 믿을 수 있는 존재란, 무조건 믿고 따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친구가 다단계 하자거나, 보증을 서 달라고 한다면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무조건 OK 할 것은 아니잖아요?
믿을 수 있는 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고, 능동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 올라가는 산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지도를 보고, 날씨를 검색해 완벽한 계획을 세우더라도 지도에 있던 길이 끊어져 있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날씨가 바뀌기도 합니다.
돌을 밟고 미끄러져 다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처럼 처음 하는 프로젝트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떤 사건사고가 터질지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이럴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할 일을 빡빡히 만드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결국 모든 계획은 틀어질 테고, 수많은 실패로 스트레스만 쌓이게 됩니다.
틀어지면 틀어지는 대로 일정을 수정하기를 반복하다 퍼지게 됩니다.
GTD에서 프로젝트를 할 일로 나눌 때 주의해야 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프로젝트를 할 일로 나누라고 했다고 해서 무작정 나누지 마세요.
당장 1~2일 정도의 할 일. 눈앞에 보이는 부분만 할 일로 만들고, 나머지는 놔두어야 합니다.
대신, 꼭 짚고 가야 하는 작은 목표 지점(서브 프로젝트)만 설정해 두고, 참고만 하세요.
책을 쓰게 된다면, 출판사 계약 → 집필 → 보완 → 출간 정도.
프로그램 개발이라면, 기능 제작 과정을 모조리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꼭 필요한 기능들만 설정해 두세요.
나머지는 할 일이 명확해질 때까지 놔둡니다.
하다 보면, 이 중간 목표조차 바뀔 때가 많습니다.
만약 할 일로 쪼개두었다면 매번 100~200개의 할 일 리스트를 폐기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거예요.
기억합시다. 어차피 최종 목표 이외에는 모두 바뀝니다.
처음 올라가는 산이 아니라, 늘 가던 공원을 간다고 생각합시다.
위험도 적고, 예측할 것도 딱히 없습니다.
내가 생각하던 그 위치에 벤치가 있겠지요.
이처럼 늘 비슷하게 진행되는 프로젝트.
예를 들어 집 안 청소나, 미팅 등 자주 비슷한 패턴일 경우는 더 빡빡하게 계획을 세워도 좋습니다. 틀어질 일이 적으니까요.
이럴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프로세스 일부를 놓치는 것입니다.
놓치지 않도록 프로세스를 체크리스트로 만들어두는 것이 좋습니다.
예측이 틀어지고, 상황이 틀어지는 경우는 2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될 줄 알 았는데, 안 되는 경우입니다.
주로 혼자 책임지고 일할 때, 프리랜서들에게 종종 일어나는 일이죠.
프로그램 짤 때도 일어납니다. 결코 원하는 대로 안되더라고요.
둘째는 외부 상황과 최종 목표가 바뀌었을 경우입니다.
주로 회사에서 다른 사람과 일 할 때 무조건 일어납니다.
나는 일 잘하고 있는데, 갑자기 일정을 1주일 당겨서 통보한다던가, 해야 할 일이 늘어난다던가..
해서 줬더니 추가 수정요청이 왔을 때 등등...
이럴 때는 무작정 하던 일을 계속하는 대신, 목표를 다시 확인하세요.
상황과 목표가 바뀌면, 그로 인해 새로 생기고, 제거해야 할 중간 목표들이 생깁니다.
이러한 파악이 되지 않으면, 실컷 일만 하고 아무런 성과를 얻을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황이 바뀌면, 달리지 마세요. 잠시 멈춰서 상황을 살펴보고, 최종 목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확인하세요.
앞서 말 했듯, 할 일은 꼭 지켜야 할 우주 법칙 같은 게 아니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자 참고자료일 뿐입니다.
그림으로 치면, 펜 선을 긋고 난 후 지워야 할 스케치 같은 거죠.
중요한 것은 목표입니다.
목표 지점에 더 빨리,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지름길을 찾았다면,
기존의 정규 루트 - 가이드라인은 불필요합니다.
반면 가려던 길이 끊어져 있다면 절벽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목표로 가는 우회로를 찾아야죠.
중요한 것은 목표 지점이 어디인지,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도착할지 매번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